하지만 장례 직후 마을 사람들이 가족을 다시 묘지로 불렀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정착민들이 무덤 앞에 있었고, 무덤을 파내라고 요구했다 . 가족 측은 정착민들이 해당 땅이 인근 정착촌에 속한다고 주장했으며, 가족이 직접 시신을 옮기지 않으면 불도저를 동원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 결국 가족은 아사사의 시신을 다른 공동묘지에 다시 묻었다고 보도됐다
.
로이터 영상 보도를 전한 MarketScreener는 현장 영상의 촬영 위치는 확인했지만 촬영 날짜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 해당 보도는 영상 속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보인다고도 전했다
. 다른 보도 역시 검증된 영상에 사람들이 언덕에서 시신처럼 보이는 물체를 옮기고, 그 뒤로 이스라엘 병력이 걸어가는 장면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따라서 공개된 영상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현장에 있었다는 보도를 뒷받침한다. 다만 그것만으로 누가 무덤을 파내도록 지시했는지까지 확정할 수는 없다. 이 핵심 지점에서 가족의 진술과 이스라엘군의 설명은 엇갈린다 .
이스라엘군은 장례가 군과 조율돼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가족에게 후세인 아사사의 시신을 다시 묻으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 군은 대치 상황 중 정착민들이 ‘해당 지역에서 땅을 파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와 병력을 보냈고, 이스라엘 민간인들로부터 굴착 도구를 압수했으며, 추가 충돌을 막기 위해 현장에 머물렀다고 설명했다
.
유엔 인권사무소는 이 사건을 규탄했다 . 점령된 팔레스타인 지역을 담당하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사무소장 아지트 선게이는 이 일을 “끔찍하다”고 표현하며,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비인간화가 점령지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고 보도됐다
. 다른 보도들은 유엔 측 반응을 “섬뜩하며 팔레스타인인의 비인간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취지로 전했다
.
이 사건을 둘러싸고 일부 언급에서는 지명이 다르게 쓰였다. 그러나 여기 인용된 보도들이 비교적 일관되게 지목한 매장 장소는 제닌 남쪽 아사사 또는 알아사아사 마을이며, 인근 정착촌은 사누르 또는 사누르(Sa-Nur/Sanur)로 설명됐다 . 이 자료들만으로는 타르살라가 사건에 관련된 정착촌이라고 확인되지 않는다.
로이터는 인근 사누르 정착민들에게 논평을 구하려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 또한 복수의 보도는 사누르가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전년에 재건립 승인을 받은 정착촌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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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보도 기록에서 비교적 분명한 것은 범위가 제한적이다. 후세인 아사사의 가족은 정착민들이 무덤을 열고 시신을 옮기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한다. 보도된 영상에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IDF는 재매장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며 사건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고, 유엔은 이 일을 비인간화의 사례로 규탄했다 .
그러나 사누르 정착민들의 입장이 보도에 담기지 않았고, 유통된 영상의 날짜도 독립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최종 지시를 내렸는지, 현장 책임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툼이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