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투자자와 창업자, 기업 임원들이 중국 AI·로봇·전기차·배터리 기업을 찾는 것은 로봇을 구경하거나 로보택시를 타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이들이 사는 것은 짧은 기간에 끝내는 현장 실사(due diligence) 다.
일부 프로그램은 최대 1만5000달러에 이른다. 현지 통역과 기업 접촉, 일정 설계, 여러 산업 클러스터를 엮은 접근권이 함께 제공된다. 맞춤형 기술 투어는 최대 9000달러에 광고된 사례도 있으며, 상하이 리서치 업체 바이관(Baiguan)이 주최한 5일 일정 대표단은 최대 1만5000달러를 받았다고 보도됐다.
1
4
핵심은 ‘중국이 서구를 완전히 앞질렀는가’라는 단정이 아니다. 중국의 강점은 갈수록 하드웨어를 빠르게 사업화하고 대량생산으로 연결하는 역량에서 뚜렷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고부가 기술, 지식재산권, 시장 점유율, 이익의 우위를 자동으로 의미하지는 않는다.
방문객이 실제로 확인하려는 것
공장과 기업 현장을 보면 발표 자료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질문에 답할 수 있다.
- 시제품이 꾸준한 양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 공급업체가 얼마나 촘촘하게 모여 있고, 변경 요구에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는가
- 자동화와 품질 관리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 제품이 잘 연출된 시연인지, 실제로 돌아가는 제조 시스템의 일부인지
- 공급사·고객사·협력사 혹은 경쟁사가 될 기업은 누구인지
몇 일짜리 다도시 일정으로 전기차 공장, 로보택시 체험, 로봇 기업, 스타트업 생태계, 제조 현장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학습과 판단에 필요한 시간을 크게 줄여주기 때문이다.
2
4
베이징·상하이·항저우·선전·허페이를 도는 이유
외국 대표단이 찾는 주요 도시는 베이징, 선전, 상하이, 항저우, 허페이다.
1
각 도시가 보여주는 장면은 다르다. 베이징은 AI와 전기차 쇼케이스, 상하이와 항저우는 대형 기술 플랫폼과 AI·로봇 활동, 허페이는 전기차·배터리 제조, 선전은 부품 조달과 생산 현장에 강점이 있다. 이 동선을 따라가면 소프트웨어·플랫폼 층위와 함께 부품, 금형, 조립, 검사, 물류처럼 하드웨어를 대량 출하하는 데 필요한 물리적 기반을 비교할 수 있다.
커지는 산업관광, 그러나 ‘1만5000달러 투어 시장’의 규모는 미확인
고가의 외국인 임원·투자자 투어는 분명 존재하지만, 참가자 수나 매출을 신뢰성 있게 집계한 공개 자료는 없다. 따라서 이 시장을 훨씬 큰 중국 산업관광 전체 시장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다만 광범위한 산업관광은 성장세다. 중국은 국가급 산업관광 시범기지 142곳을 지정했으며, 현지 관영 매체가 인용한 전망에 따르면 2024~2029년 이 부문은 연평균 약 18%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청여행(Tongcheng Travel) 데이터에서는 2026년 여름 성수기 공장 관련 여행상품 관심이 전년 대비 36% 증가했다.
49
50
51
대중적 수요도 확인된다. 베이징 샤오미 전기차 공장 가이드 투어는 제한된 월간 좌석을 놓고 수만 명이 신청하는 경우가 있다.
52
이 수치는 방문 인프라와 대중 관심의 확대를 보여준다. 하지만 고가의 국제 비즈니스 대표단 시장 규모를 뜻하지는 않는다. 현재 근거로는 이 시장을 성장 중인 틈새시장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유럽이 ‘차이나 쇼크 2.0’을 우려하는 배경
유럽의 걱정은 값싼 소비재 수입에만 있지 않다. ‘차이나 쇼크 2.0’은 중국의 생산능력과 수출 경쟁력이 전기차, 배터리, 기계, 화학, 철강, 풍력 장비 등 유럽이 전략 산업으로 여기는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는 우려를 가리킨다.
17
20
27
유럽의회는 중국의 국가 지원을 받은 과잉생산능력이 인위적으로 낮은 수출 가격을 만들고 유럽 제조업체의 경쟁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17 브루킹스 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의 대EU 수출은 2015년 이후 89% 증가했고, EU의 대중 무역적자는 같은 기간 4배로 늘었다.
18
그래서 유럽 경영진에게 공장 투어는 경쟁 정보 수집의 성격이 강하다. 중국 기업이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지는 이미 상당 부분 드러났다. 더 중요한 질문은 비용, 품질, 제품 개선 속도, 해외 유통을 결합해 유럽 기업의 전통적 강점 분야까지 파고들 수 있는지다.
AI 하드웨어·로봇 창업자가 선전을 주목하는 이유
선전의 경쟁력은 ‘밀도’에 있다. 전자제품 설계, 부품 공급, 시제품 제작, 위탁생산, 조립, 수출 물류가 도시와 주변 지역에 집적돼 있다. CNBC가 인용한 한 경영자는 주변 공급망의 상당 부분이 차로 약 2시간 거리 안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에는 BYD, DJI, 화웨이 같은 기업이 있고, 애플 제조 네트워크와도 오랫동안 연결돼 왔다.
36
로봇 분야의 집적도 특히 중요하다. 선전의 로봇 밸리에는 핵심 로봇 기업 200곳 이상과 관련 공급망 기업 1500곳이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34 부품 공급업체를 만나 부품명세서(BOM)를 수정하고, 제조 가능성을 시험하며, 조립 업체와 협의하는 과정이 한 지역에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자금과 정책도 산업 기반을 뒷받침한다. 스타트업 지놈은 선전이 AI 소프트웨어·하드웨어·피지컬 AI를 겨냥한 13억9000만달러 규모 산업 펀드와, AI·피지컬 로봇 분야 상업화를 위한 2억1500만달러 규모 사모펀드를 출범시켰다고 전했다.
38
물론 해외 창업자에게도 엄격한 공급업체 검증, 품질 관리, 지식재산권 보호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선전은 AI 기반 아이디어가 실제로 생산 가능한 기기로 전환되는 과정을 배우기 좋은 장소로 평가받는다.
제조 역량이 곧 모든 기술 리더십은 아니다
중국의 하드웨어 사업화 역량은 분명한 경쟁 우위다. 그러나 ‘서구를 추월했다’는 말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지부터 구체적으로 따져야 한다.
생산량 우위와 모든 시장에서의 우위는 다르다
전자제품 조립, 전기차 생산, 배터리, 특정 로봇 부품에서의 강세가 모든 고객층·지역·고급 제품군의 우위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시장 점유율은 산업별로 다르며, 생산량은 경쟁력의 한 지표일 뿐이다.
특허 건수와 가치 있는 지식재산권은 다르다
특허 출원 수만으로 가장 상업적으로 중요한 기술을 누가 보유하는지는 알 수 없다. 국제적 가치가 있는 특허, 표준 주도권, 기초 연구, 첨단 반도체 역량, 소프트웨어 생태계, 라이선스 수익, 발명을 보호·수익화하는 능력까지 함께 봐야 한다.
생산 거점과 이익이 쌓이는 곳은 다를 수 있다
한 나라가 생산능력에서 우세해도, 다른 나라 기업들이 고성능 반도체, 운영체제, 산업용 소프트웨어, 클라우드 인프라, 브랜드 유통, 서비스에서 큰 이익을 가져갈 수 있다. 공급망의 중심성은 중요하지만, 기술 스택에서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통제한다는 뜻과는 다르다.
과잉생산능력은 무기이자 위험 요인이다
유럽의 논쟁은 이 양면성을 보여준다. 낮은 가격과 빠른 수출 확대를 가능하게 하는 생산능력은 동시에 수익성 악화, 무역 방어조치, 공공조달 제한, 현지 생산 요건, 투자 심사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유럽 기관과 분석가들은 중국의 과잉생산능력이 전략 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런 우려를 제기해 왔다.
17
18
27
결론: 이들이 돈을 내는 대상은 ‘로봇 쇼’가 아니다
해외 방문객이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이유는 로봇을 감상하거나 로보택시를 체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제품을 어디서 설계하고, 부품을 조달하며, 시제품을 만들고, 빠르게 양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존 가정을 업데이트하기 위해서다.
중국의 기술 투어가 주목받는 이유는 AI, 부품, 공장, 규모의 연결을 눈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연결이 가장 선명한 곳이 선전이다. 다만 현재의 근거가 뒷받침하는 결론은 ‘동서양의 전면적 승패’가 아니다. 중국은 산업 규모화와 하드웨어 상업화에서 매우 강력한 위치에 올랐지만, 지식재산권, 소프트웨어, 첨단 반도체, 글로벌 시장별 경쟁력, 이익의 귀속은 여전히 산업과 분야에 따라 크게 엇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