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기록 행진의 서막은 삼성전자가 열었다. 2026년 5월 6일, 삼성전자 주가는 창사 이래 최대 폭인 15% 이상 폭등하며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어섰다 . 일부 금융 데이터 기준으로는 2월 26일 이미 일시적으로 1조 달러를 터치한 바 있으나
, 이날의 결정적인 주가 랠리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클럽 회원'이 되었다. 아시아에서는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거인 TSMC에 이어 두 번째 쾌거였다.
이들 세 기업의 랠리 뒤에는 공통적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있다. 일반 D램과 달리, HBM은 여러 개의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고 '실리콘 관통 전극(TSV)'으로 연결해 데이터 전송 속도를 극적으로 높이는 동시에 전력 소비는 줄이는 첨단 기술이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HBM은 엔비디아의 H100·H200 GPU, AMD의 MI300 시리즈, 구글과 아마존의 자체 개발 AI 칩 등 가장 앞선 AI 가속기에 사실상 유일하게 탑재 가능한 메모리 솔루션이 되었다 .
문제는 수요 폭증을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HBM 시장 규모가 546억 달러(약 87조 원) 규모로 성장했지만 , 까다로운 제조 공정과 긴 고객사 인증 절차 탓에 생산 능력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모닝스타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약 55%의 점유율로 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약 25%의 점유율로 추격 중이다
. 시장 지배력 덕분에 SK하이닉스는 이번 AI 특수의 최대 수혜주로 떠올랐고, 5월 말까지 주가가 연초 대비 거의 200% 가까이 폭등하는 기염을 토했다
.
HBM 시장 점유율에서는 뒤처졌지만, 삼성전자 역시 AI 메모리 칩 수요 하나만으로 주가가 1년 사이 4배 이상 뛰어올랐다 . 이날 삼성전자의 상승세는 같은 날 SK하이닉스 주가를 10% 이상 끌어올리고, 코스피지수를 사상 최초 7,000 선 위로 밀어 올릴 정도로 파괴력이 컸다
.
이번 '메모리 3사 동시 1조 달러' 달성은 반도체 생태계 내에서 메모리 산업의 위상을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사건이다. AI 시대 이전까지 메모리 칩은 일종의 범용 상품으로 취급받으며 극심한 호황과 불황을 반복했기에, '1조 달러'와 같은 밸류에이션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메모리는 전략적 성장 분야가 되었고, 메모리 기업들은 엔비디아나 TSMC와 같은 로직 반도체 거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이러한 재평가는 단순한 시가총액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미국 외 국가 중 최초로 복수의 1조 달러 반도체 기업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으며, 이는 글로벌 공급망 내 협상력과 국가 기술 정책에까지 거대한 지정학적 함의를 던진다 . 실제로 이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 합계는 코스피 전체의 약 43%를 차지하며, 한국 경제가 AI 메모리 수요에 얼마나 의존하게 되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
그러나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이 현상을 메모리 칩의 '슈퍼 불 마켓(초장기 강세장)'으로 묘사하며, AI 인프라 구축에는 앞으로도 수년이 걸릴 것이고 공급 부족이 높은 가격과 마진을 지속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 반면 신중론자들은 메모리 산업의 가혹한 사이클 역사가 AI 수요 하나만으로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으며, 지금의 밸류에이션은 구조적 변화라기보다 피크 치는 정점의 낙관론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
한 가지 확실한 것은 2026년 5월, 시장은 AI가 메모리 사업에 가져올 파괴적 함의를 완전히 흡수했다는 사실이다. 이제 세 개의 메모리 칩 제조사가 각각 1조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 숫자가 새로운 '마지노선'이 될지, 아니면 일시적인 '천장'이 될지는, 과연 AI 수요가 기업들이 앞다퉈 약속한 공급 능력 확장 속도를 계속 앞지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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