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폭락을 촉발한 결정적 계기는 분석가들의 잇단 하향 조정이다. 2025년 7월, 골드만삭스는 SK하이닉스를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하며 "HBM(고대역폭 메모리) 경쟁 심화로 2026년 가격이 처음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이 발표 직후 SK하이닉스는 9% 급락했고, 반도체 업종 전반으로 충격이 번졌다 .
이후 2026년 7월 한 달 동안 무려 828건의 보고서가 목표주가를 낮췄다. 이는 상향 조정(약 400건)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 삼성증권, 신한투자증권, BNK투자증권 등 국내 증권사들도 줄줄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낮췄다 .
다만 일부 기관은 반대 의견도 냈다. 골드만삭스는 8월 4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매수 의견을 재확인하며 "비관론이 과도하다"고 평가했고 , 씨티는 "업사이클은 아직 초기 국면"이라며 '매수 타이밍'을 조언했다 . JP모건도 "현 주가수익비율(PER) 3.5~3.6배는 펀더멘털과 괴리돼 있다"고 지적했다 .
AI 인프라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수익성으로 이어질지 의문이 커진 점도 결정적이었다. 2026년 6월 초 브로드컴이 시장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 전망을 내놓으면서 AI 투자 확대에 따른 마진 압박 우려가 불거졌다 . 나스닥은 7월 말 조정장(고점 대비 10% 이상 하락)에 진입했다 .
CNBC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서버에 사용되는 HBM 칩의 세계 최대 공급업체라, AI 지출 기대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분석했다 .
미국 기술주가 큰 폭으로 떨어질 때마다 아시아 시장은 즉각 영향을 받았다. 7월 28일 나스닥 조정, 7월 17일 엔비디아 급락, 7월 16일 신규 매도세 등이 아시아로 번졌다 . 7월 28일 코스피는 장중 10% 폭락해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기도 했다 . 이날 SK하이닉스(-14.65%), 삼성전자(-13%)가 급락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AMD, 인텔, 마이크론까지 끌어내렸다 .
사상 최대 실적도 주가 하락을 막지 못했다. SK하이닉스는 분기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10% 넘게 급락했다 . 삼성전자는 2분기 잠정 영업이익이 1년 전보다 19배 증가한 약 59조 원을 기록했지만, 주가는 6.9% 하락했다 .
한 유럽 비즈니스 매체는 "반도체 주식은 6월 25일 이후 시총 약 1조5000억 달러(약 2000조 원)가 증발했으며, 삼성·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메모리 종목은 고점 대비 20% 넘게 떨어져 **공식 베어마켓(약세장)**에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
8월 1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각각 27~30% 급등하는 '베어마켓 랠리'가 나타났지만, 곧바로 차익 실현과 레버리지 베팅 청산으로 전환되며 하락했다 . 코스피는 8월 1일 18% 폭등한 후, 8월 3일 5.1% 하락했다 . 7월 한 달간 코스피 하락률은 **22.2%**로, 2008년 10월 금융위기 이후 최악이었다 .
8월 7일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SK하이닉스가 HBM과 메모리에 집중된 반면,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시스템반도체, 가전 등 사업 포트폴리오가 더 다양해 충격을 완충했기 때문이다 .
시장 참여자들의 핵심 질문은 '메모리 반도체가 AI 구조적 상승 사이클 내의 일시적 조정에 불과한가, 아니면 사이클의 정점인가'다.
골드만삭스는 8월 7일 보고서에서 "현재 주가는 실제 상황보다 지나치게 비관적인 수준으로 형성돼 있다"며 코스피 12개월 목표 12,000선을 유지했다 . 씨티는 "업사이클 초입에서의 조정"이라고 진단했다 .
하지만 2000조 원 넘는 시총 증발, 사상 최대 규모의 분석 리포트 하향, AI 자본 지출에 대한 지속적인 의문 등은 AI 수요가 현재 밸류에이션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불확실성을 보여준다. 블룸버그는 "한 달 남짓한 기간에 600억 달러가 증발하면서 SK하이닉스는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AI 종목에서 가장 큰 포트폴리오 물음표로 전락했다"고 평가했다 .
결국 이번 폭락은 AI 경제의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조차 중력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