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기조연설은 거창한 비전 제시뿐 아니라, 새로운 PC 프로세서 라인업과 데이터센터 시장 진출이라는 깜짝 발표까지 포괄하는 퀄컴의 제품 쇼케이스이기도 했다.
아몬 CEO가 제시한 비전의 배경에는 컴퓨팅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가 자리하고 있다. 그는 AI의 진화를 세 가지 상호작용 단계로 구분하며, 각 단계마다 AI 모델이 처리하는 기본 데이터 단위인 토큰(Token) 소비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
이러한 3단계로의 전환을 바탕으로 퀄컴은 2030년까지 전 세계 AI 토큰 수요가 40배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구체적으로는 2026년 10초당 약 317억 개의 토큰에서, 2030년에는 같은 시간 내 1조 2,700억 개의 토큰을 처리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 아몬 CEO는 에이전트가 '사람이 아닌 기계의 속도'로 업무를 처리하는 패러다임 자체가 이 엄청난 인프라 도전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
이러한 AI 작업을 기기 자체에서 처리하기 위해 퀄컴은 PC 프로세서 라인업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최상위 모델인 스냅드래곤 X2 엘리트(Elite) 와 그 고성능 버전인 X2 엘리트 익스트림(Extreme) 은 앞서 CES 2026에서 발표된 바 있다. 3세대 오라이온(Oryon) CPU를 기반으로 하는 이 칩들은 전용 NPU(신경망 처리 장치)만으로 최대 80 TOPS(초당 1조 회 연산) 의 AI 성능을 제공하며, CPU와 GPU를 함께 가동하면 100 TOPS 이상의 성능을 낼 수 있다 .
보다 최근에 공개된 스냅드래곤 X2 플러스(Plus) 는 이 엘리트급 AI 성능을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확대하기 위한 제품이다. CES 2026에서 첫선을 보인 이 칩은 6코어와 10코어 모델로 출시되어 중급형 윈도우 노트북 시장을 겨냥하며, 보다 많은 사용자가 AI PC 경험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
컴퓨텍스 직전에는 더욱 공격적인 행보가 공개됐다. 스냅드래곤 C 칩셋은 보급형 AI 노트북을 타겟으로 한다. 학생, 가족, 소규모 사업장을 위한 이 칩은 온디바이스 AI 기능의 진입 장벽을 한층 더 낮추려는 퀄컴의 포석이다 .
기조연설 말미, 아몬 CEO는 애플의 고(故)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키는 "One more thing"과 함께 진정한 깜짝 발표를 내놓았다. 바로 퀄컴 드래곤플라이(Qualcomm Dragonfly) 라는 새 제품 브랜드를 공개하며 AI 데이터센터 시장에 공식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 이는 전력 효율이 높은 모바일 칩 설계 역량을 AI 추론용 서버 인프라까지 확장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퀄컴 측은 드래곤플라이 브랜드를 통해 자사의 제품 포트폴리오가 수 밀리와트(mW) 급 웨어러블 기기부터 수 메가와트(MW) 급 데이터센터에 이르기까지 모든 컴퓨팅 영역을 포괄하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
하지만 이날 발표는 일종의 '예고편'에 그쳤다. 퀄컴은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칩 사양이나 성능 지표, 고객사 파이프라인은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모든 실질적인 제품 및 재무 관련 세부 정보는 6월 24일 뉴욕에서 열릴 '투자자의 날(Investor Day)' 로 공개를 미뤘다 . 이러한 정보 부족은 증시에서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아라'는 격언대로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구체적인 사양을 기대했던 투자자들이 실망 매물을 쏟아내고, 같은 날 경쟁사 엔비디아의 PC 칩 발표로 주목도가 분산되며 퀄컴 주가는 익일 장외 거래에서 7% 가까이 하락했다 .
아몬 CEO는 PC와 서버를 넘어 AI 에이전트가 가져올 변화를 폭넓게 조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