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위기의 직접적인 촉매는 전 세계 석유 및 가스의 약 5분의 1이 통과하는 좁은 관문,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봉쇄다. 비롤은 이 지역의 분쟁으로 촉발된 이 해협 봉쇄를 두고 '역사상 글로벌 에너지 안보에 대한 최대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 2026년 3월 처음 나온 그의 이 진단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확고해졌다. 그는 4월 말 싱가포르 CONVERGE LIVE 행사에서 CNBC와의 인터뷰에서 "위기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 비롤은 눈앞의 공급 부족을 넘어 에너지 인프라 피해가 너무 심각해 내일 당장 해협이 다시 열린다고 해도, 손상된 유전과 가스전을 완전히 정상 가동하기까지는 6개월 이상이 소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IEA 수장은 이번 위기가 1970년대 오일 쇼크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그는 해결책을 찾지 못할 경우 북반구가 여름으로 접어드는 7~8월에 세계가 '레드존(red zone)'에 진입할 수 있으며, 이는 항공편 대규모 취소, 연료 배급제, 국가 재정 건전성 악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IEA의 경고는 추상적인 정책 보고서가 아니다. 이는 현재 매우 높은 이해관계가 걸린 정책 논쟁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이다. 치솟는 에너지 비용에 직면한 EU, 미국, 영국 이 세 강대국은 각기 현저히 다른 길을 가고 있다.
EU의 입장은 확고부동하다. EU는 러시아 제재를 전혀 완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체계적으로 더욱 강화해 왔다.
EU는 2025년 10월, 19번째 제재 패키지를 채택했다. 여기에는 역내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전면 금지와 더불어 러시아의 '그림자 함대'를 겨냥한 추가 제재라는 획기적인 조치가 포함되었다 . 이 패키지는 또한 금융, 군산 복합체, 특별 경제 구역도 타깃으로 삼았다
. 이에 앞서 2025년 2월의 16차 제재 패키지는 이미 EU 항구 내 러시아산 원유 임시 보관을 금지하고, 1차 알루미늄 수입까지 막은 바 있다
. EU의 제재 조치는 2025년 12월에 6개월 더 연장되어 2026년 7월까지 효력을 유지한다
. EU의 행보는 끊임없는 제재 강화로, 이는 비롤이 다른 동맹국들에 촉구하는 단호한 태도 그 자체다.
미국은 보다 복잡하고 모순적으로 보이는 중간 지대에 서 있다. 핵심 제재 체계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 제재의 근간인 국가비상사태는 2025년 2월에 1년 연장되었으며 ,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러시아의 유해한 해외 활동에 대한 광범위한 제재 프로그램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 위기는 미국이 일련의 임시 압력 완화 조치를 만들도록 강요했다. 2026년 4월 중순,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 재무장관은 당초 러시아 해상 석유에 대한 30일간의 제재 면제를 갱신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이틀 만에 행정부는 입장을 뒤집고 새로운 면제 조치를 발표했다 . 2026년 5월 19일, 베센트는 세 번째 연속 연장 조치를 발표했다. 이는 이미 유조선에 선적된 러시아산 원유를 어떤 국가든 한 달 더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임시 일반 허가다
.
표면적인 명분은 인도주의와 경제적 고려로, 베센트는 이 면제 조치가 "가장 취약한 국가들이 현재 바다에 묶여있는 러시아산 석유에 임시로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중동 공급 차질을 대체하려는 아시아 국가들이 이 조치의 주요 수혜자였다
. 하지만 이러한 실용적인 단기 해결책은 제재의 선을 사수하라는 비롤의 경고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가장 극적인 이탈은 런던에서 발생했다. 2025년 내내 영국은 대러 제재에 앞장서며, 2025년 4월에는 러시아로의 특정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및 기술 수출을 금지하는 등 광범위한 새로운 수출입 제한 조치를 도입했다 . 영국은 2025년 7월 더 나아가 EU 및 미국과 보조를 맞춰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선을 배럴당 60달러에서 47.60달러로 낮추었다
.
그러나 2026년 5월 20일, 영국 정부는 이러한 기조와 결정적으로 배치되는 새로운 무역 허가를 발표했다. 기업통상부(Department for Business and Trade)가 발표한 이 허가는 영국이 인도나 터키 같은 제3국에서 러시아산 원유로 정제된 항공유와 경유를 구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 허가의 유효 기간은 '무기한(indefinite duration)'이며 주기적으로 검토될 예정이어서, 사실상 호르무즈 위기가 정점에 달한 바로 이 시점에 가공된 러시아 에너지 제품의 주요 무역 경로를 다시 열어준 셈이다 . 이번 조치는 러시아 에너지로의 회귀를 보여주는 서방의 가장 분명한 공식 기록이며, 비롤의 경고가 막고자 했던 바로 그 '엄청난 실수'에 해당한다.
IEA의 경고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냉혹한 선택지를 제시한다. EU는 상당한 경제적 비용을 감수하며 러시아와의 에너지 결별을 심화하기로 했으며, 이는 비롤이 권고하는 노선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미국은 시장 안정화를 위한 임시 조치라며 전술적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한편 영국은 전략적 일관성보다 당장의 에너지 안보를 우선시하며 조용하면서도 실질적인 정책 전환을 실행했다.
비롤의 논지는 단기 계산법이 곧 함정이라는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 위기는 1970년대 이후 가장 극심한 에너지 시험대이다. 하지만 그에게 바로 이 위기야말로 에너지를 무기화하는 신뢰할 수 없는 공급자로부터의 탈피를 가속해야 하는 이유다. 다시 그들에게 달려갈 이유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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