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클레이즈도 비슷한 논리를 폈다. 이 은행은 2026년 1월 말 이미 ASML에 대한 투자 의견을 ‘비중 확대’로 상향하고 목표주가를 1,500유로로 제시한 바 있다 . 6월에 목표주가를 1,900유로로 다시 올린 것은 생산 능력 확대가 계획대로 진행될 뿐만 아니라 가속화되고 있다는 확신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핵심 협력사인 독일의 자이스(Zeiss) 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제조 병목현상을 해소하고 있다는 점이 이러한 확신을 뒷받침한다
.
여기서 핵심은 ASML의 매출이 장비 판매 대수에 단순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로저 다센 CFO는 늘어나는 설치 기반 장비에 대한 고수익 서비스 및 업그레이드 계약이 장비 출하량과는 별개로 복리 효과(Compounding Tailwinds)를 제공한다고 강조해 왔다 . 이러한 설치 기반 매출 구조 때문에 ASML은 일반 장비 공급업체보다 경기 순환의 영향을 덜 받는 모습을 보인다.
ASML 경영진의 공식 목표는 저(低)-NA EUV 장비 출하량을 2026년 최소 60대(2025년 대비 25% 증가), 2027년에는 최소 80대로 잡는 것이다 . 하지만 애널리스트들은 이미 더 높은 숫자를 예상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026년 EUV 출하량 전망치를 기존 61대에서 64대로 올렸다. 이는 SK하이닉스의 D램 수요가 앞당겨지면서 3대가 추가로 반영된 결과다. 2027년 전망치 역시 77대에서 81대로 상향 조정했으며, 이로 인해 2027년 예상 매출을 시장 전망치(Consensus)인 442억 유로보다 약 6% 높은 470억 유로로 제시했다 .
다른 투자은행들도 비슷한 행보다. 모건스탠리는 앞서 2027년 EUV 장비 수요가 80대에 달해 매출이 약 468억 유로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 반면 UBS는 2027년 저-NA EUV 출하량을 75대로 다소 보수적으로 예측했다. 같은 해 출시될 차세대 EUV F 플랫폼이 현재의 E 모델보다 13~18% 높은 생산 처리량(Throughput) 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에, 웨이퍼 수요를 맞추기 위해 필요한 장비 대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
EUV 생산 능력 확장의 핵심 열쇠는 공급망, 그중에서도 자이스가 쥐고 있다. 공급망 조사에 따르면, 자이스는 2027년까지 EUV 광학 시스템 생산 능력을 전년 대비 20~25% 늘리고, 더 고가인 침지(Immersion) DUV 광학 시스템은 40~50% 확대할 계획이다 . 자이스의 증산 없이는 ASML의 출하 목표는 실현 불가능하다. 자이스의 증산 계획이 가시화되면서 ASML의 전망도 더욱 실행 가능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ASML 경영진은 2026년 매출 중간값을 기존 약 365억 유로에서 380억 유로로 4%가량 상향 조정했다 . 360억~400억 유로의 범위는 EUV 장비의 예상보다 빠른 성장과 비(非) EUV 부문의 긍정적 전망이 동시에 반영된 결과다.
2027년에 대한 시장 전망치는 약 442억 유로지만,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이를 크게 웃도는 470억 유로를 점치고 있다 . 이 격차는 단순히 EUV 출하 대수가 늘어나서가 아니라, 설치 기반 관리 매출이 현재 시장 예측 모델보다 훨씬 빠르게 복리로 증가할 것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
이러한 매출 성장은 물량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평균판매가격(ASP) 상승, 고수익 EUV 장비 중심의 제품 구성 변화, 확대된 설치 장비 기반에서 발생하는 반복적인 서비스 계약 등 다양한 수익 레버가 존재한다. 덕분에 장비 출하 대수가 일시적으로 흔들리더라도 매출 성장세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
ASML은 최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EUV 리소그래피(Lithography) 장비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TSMC, 삼성전자, 인텔,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전 세계 모든 주요 반도체 제조사가 AI 칩을 생산하려면 반드시 ASML의 장비를 거쳐야 한다. 이 독보적인 지위 덕분에 ASML은 2026년 내내 반도체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 최고의 선택지로 꼽혀 왔다.
번스타인(Bernstein)은 ASML을 2026년 유럽 반도체 종목 중 최선호주(Top Pick) 로 선정하며, D램 업사이클, 견고한 로직 수요, 주가 조정을 거친 매력적인 밸류에이션을 그 이유로 들었다 . 뱅크오브아메리카 역시 ASML을 AI 인프라 구축의 “핵심 기여자(Critical Enabler)”라고 명명하며, ‘2026년 유망 25개 종목’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 경쟁사들이 AI 인프라 확장 경쟁을 벌일수록 ‘반도체 장비 업계의 슈퍼 을(乙)’인 ASML의 수혜는 더욱 커지는 구조다.
월가의 전체적인 투자 의견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5년 말 기준으로 ASML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 27명 중 4명은 ‘매수’(Strong Buy), 16명은 ‘매수’(Buy), 7명은 ‘보유’(Hold) 의견을 제시하며 ‘중간 정도의 매수(Moderate Buy)’ 신호를 보냈다 . 평균 목표주가 역시 올해 잇따른 상향 조정으로 과거보다 훨씬 높아진 상태다.
단기적으로 강력한 상승 모멘텀이 확인됐지만, 중기적인 구조적 리스크도 분명히 존재한다. ASML의 다음 주력 성장 동력인 High-NA EUV 장비는 TSMC의 배치 일정을 기준으로 볼 때 2028년까지 의미 있는 양산 규모에 도달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이로 인해 2027년에서 2028년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에는 ASML의 실적과 주가가 경쟁 장비 업체 대비 상대적으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러한 병목 현상은 수요 부족 때문이 아니다. 고객사들은 이미 장비를 원하고 있다. 문제는 ASML 내부의 High-NA 시스템 생산 능력에 있다. 이 역시 공급사의 준비 상황에 달려 있어 아직 제약이 크다 . 지금 당장은 저-NA EUV의 물량 확대에 열광하고 있지만, 2027년 이후를 내다보면 차세대 장비의 양산을 제때 시작할 수 있느냐가 ASML의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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