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상황에서 ADX 2차 상장을 추진하는 것은 중동 지역의 기관 투자가 및 국부 펀드 자본에 접근하기 위한 포석이다. 특히 아시아에 집중된 상장사 이미지를 벗어나 투자자 기반을 다각화한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는 다른 글로벌 바이오테크 기업들에게도 ADX를 매력적인 자본 조달 창구로 인식시키는 선례가 될 수 있다.
ADX 상장 검토 소식은 2026년 들어 인실리코의 위상을 극적으로 바꿔놓은 일련의 굵직한 이정표들 중 가장 최근의 것이다. 불과 몇 달 전인 3월, 인실리코는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릴리(Eli Lilly)와 최대 27억 5천만 달러(약 3조 7천억 원) 규모의 글로벌 연구 및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며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 계약으로 릴리는 인실리코의 전임상 경구용 치료제 포트폴리오에 대한 전 세계 독점 라이선스를 확보했으며, 인실리코는 계약금만 1억 1,500만 달러(약 1,600억 원)를 수령하게 된다 . 2023년부터 이어져 온 양사의 파트너십이 결실을 맺은 이 딜은 AI 기반 신약 발굴 분야 역사상 최대 규모 중 하나로 기록됐다.
회사의 내부 파이프라인 역시 꾸준히 성숙하고 있다. 인실리코는 자체 AI 플랫폼 '파마.AI(Pharma.AI)'를 통해 현재까지 총 28개의 전임상 후보물질을 발굴했으며, 이 중 6개는 2025 회계연도에 추가됐다. 섬유증, 종양학, 면역학 등 다양한 질환 영역에서 8개의 프로그램이 임상 개발 단계에 진입해 있다 .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특발성 폐섬유증(IPF) 치료제로 개발 중인 대표 파이프라인 **렌토서팁(Rentosertib, ISM001-055)**이다. 2025년에 발표된 긍정적인 임상 2a상 전체 결과는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게재됐으며, 2026년에는 이 약물의 흡입 제형이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의 임상시험 승인을 받았다. 이로써 인실리코의 AI 플랫폼을 통해 도출된 13번째 프로그램이 임상 단계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뤘다 .
인실리코의 2025년 재무제표는 과도기적 상황을 잘 보여준다. 연간 총 매출은 5,624만 달러(약 760억 원)로 전년 대비 34.5% 감소했는데, 이는 주로 파이프라인 개발 수수료의 감소에 기인한 것이다 . 연간 순손실은 3억 5,200만 달러(약 4,800억 원)로 크게 확대됐지만, 이는 IPO 과정에서 전환우선주의 공정가치를 평가하며 발생한 일회성 비현금 손상차손이 반영된 탓이 크다 .
대규모 적자라는 겉보기와 달리, 실질적인 경영 효율성 지표는 오히려 개선됐다. 연구개발비는 전년 대비 11.4% 감소한 8,140만 달러(약 1,100억 원)로 집행 효율을 높였으며, 신약 발굴 수수료 수익은 314만 달러에서 무려 2,495만 달러로 급증하며 전체적인 매출 감소분을 상당 부분 상쇄했다 .
핵심은 약 4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현금 보유고다. 이 때문에 ADX 상장은 '구명줄'이 아닌, 성장 가속화를 위한 '전략적 심화'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인실리코는 이번 2차 상장을 통해 고성장 기술 및 바이오 기업 유치에 적극적인 아부다비 자본 시장과의 접점을 넓히려는 것이다. 아직 초기 단계이고 직접 상장 방식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지만, 자본 시장에서의 입지를 넓히겠다는 분명한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
인실리코 메디슨은 2026년 한 해를 정체성 전환의 기점으로 삼고 있다. 홍콩 IPO는 공모 시장에서의 첫 검증을, 일라이릴리와의 계약은 AI 플랫폼의 폭발적인 수익화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리고 렌토서팁 등 핵심 자산들의 임상 데이터는 바이오 기업으로서 갖춰야 할 궁극적인 증거를 쌓아가고 있다.
만약 아부다비 상장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여기에 '멀티 거래소 기반의 글로벌 기업'이라는 새로운 레이어가 더해질 전망이다. 단순히 또 하나의 상장사가 아니라, 아시아, 북미, 그리고 중동을 아우르는 차세대 AI 신약 개발의 글로벌 플랫폼으로 도약하겠다는 인실리코의 포부가 현실화되는 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