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 등장한 생물학적 데이터센터는 SF 영화 속 ‘인공 뇌 슈퍼컴퓨터’라기보다, 살아 있는 신경세포와 실리콘 전자장치를 결합한 연구용 웨트웨어(wetware) 서버 랙에 가깝다.
싱가포르국립대학교(NUS) 생명과학연구소에 설치된 이 시스템은 Cortical Labs의 생물학적 컴퓨터 CL1 20대로 구성돼 있다. 전체 랙에는 약 1,600만 개의 살아 있는 인간 피질 뉴런이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시스템은 2026년 7월 16일 가동을 시작했고, 8월 6일 민간·학계 관계자 80여 명을 대상으로 공개 시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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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점은 이 장치가 실리콘 칩을 인간의 뇌로 완전히 대체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자회로가 뉴런에 정보를 전달하고, 뉴런의 전기적 반응을 다시 읽어 디지털 시스템으로 돌려보내는 폐쇄형 피드백 구조다.
뉴런 데이터센터는 어떻게 작동하나
각 CL1에는 배양된 뉴런과 실리콘 미세전극 배열이 연결돼 있다. 이 전극은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동시에 세포가 내보내는 전기 신호를 기록한다. Cortical Labs의 biOS 소프트웨어는 실험을 설정하고, 입력 신호를 보내며, 뉴런의 반응을 해석해 외부 컴퓨터 시스템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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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동 과정은 다음과 같다.
- 소프트웨어가 처리할 정보를 전기 자극으로 변환한다.
- 전극이 뉴런 배양체의 특정 영역에 자극을 전달한다.
- 뉴런 네트워크가 전기적 스파이크 패턴으로 반응한다.
- 미세전극 배열이 이 신호를 기록한다.
- 소프트웨어가 반응을 결과값으로 변환하거나 다음 입력을 조정한다.
따라서 실리콘 하드웨어는 제어, 신호 입출력, 기록, 네트워크 연결 같은 기반 기능을 담당하고, 살아 있는 뉴런 네트워크는 주어진 과제에 반응하고 적응하는 역할을 맡는다. 기존 GPU처럼 동일한 연산을 매우 빠르게 반복하는 방식과는 출발점이 다르다.
누가 만들고 운영하나
이 프로젝트에는 세 기관이 참여한다.
- NUS 의과대학 및 NUS 생명과학연구소: 줄기세포에서 유래한 뉴런 배양체를 만들고, 세포 배양·유지와 과학 연구를 담당한다.
- DayOne: 데이터센터 공간과 운영 인프라를 제공한다.
- Cortical Labs: CL1 생물학적 컴퓨터와 뉴런 생명유지 장치, 관련 소프트웨어 스택을 공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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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단순히 대학 연구실에 상용 서버를 가져다 놓은 프로젝트가 아니다. 데이터센터 운영 역량뿐 아니라 살아 있는 세포를 배양하고 관찰하며 영양을 공급하고 교체하는 생물학적 관리 체계가 함께 필요하다.
살아 있는 뉴런은 어떻게 유지되나
실리콘 프로세서와 달리 CL1은 지속적인 생물학적 관리가 필요하다. 장치 내부의 생명유지 시스템은 뉴런 배양체를 최대 약 6개월 동안 생존시키도록 설계됐다. 영양 배지는 정기적으로 보충해야 하며, 싱가포르 설치 사례에서는 약 3일마다 교체되는 것으로 보도됐다. 시간이 지나면 배양체 자체를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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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뉴런 교체는 고장 난 회로 기판을 갈아 끼우는 일과 다르다. 새 세포를 준비하고, 오염을 막는 무균 환경을 유지하며, 배양 상태를 검증해야 한다. 새로 투입된 신경 네트워크가 기존 네트워크의 과제별 적응이나 학습 상태를 그대로 이어받는지도 별도의 문제다.
엔비디아 H100보다 전력 효율이 높을까
Cortical Labs는 CL1 한 대의 소비전력을 약 25와트로 제시하고 있다. 생명유지 장치 등 지원 설비를 포함한 20대 전체 랙의 소비전력은 약 800~1,000와트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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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대상으로 자주 언급되는 엔비디아 H100 GPU의 최대 열설계전력(TDP)은 약 700와트다. 단순히 전력량만 놓고 보면 전체 CL1 랙은 H100 약 1~1.5대와 비슷한 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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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만으로 “H100보다 효율적”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현재까지 싱가포르 프로젝트는 처리량, 정확도, 지연시간, 학습 시간, 운영비, 완료한 유용한 작업량을 동일 조건에서 비교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시스템을 기존 AI 인프라보다 에너지를 덜 쓰는 검증된 대체재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가능성이 있다면, 대규모 GPU가 잘하는 반복적·고속 연산이 아니라 환경 변화에 적응하거나 학습 데이터가 제한된 특수 과제에서다. 개발사와 연구진은 생물학적 신경망이 기존 실리콘 기반 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는지를 탐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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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점이 된 DishBrain 실험
이번 프로젝트의 과학적 배경에는 Cortical Labs의 DishBrain 실험이 있다. 2022년 연구진은 인간 유도만능줄기세포에서 만든 뉴런과 설치류 피질 뉴런을 고밀도 다중전극 배열 위에 배양한 뒤, 이를 고전 아케이드 게임 ‘퐁(Pong)’의 단순화된 디지털 환경에 연결했다. 전극은 공의 위치와 같은 게임 정보를 전달했고, 신경세포의 활동은 패들의 움직임을 제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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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험은 폐쇄형 피드백 방식으로 진행됐다. 시스템의 수행 결과에 따라 배양체에 서로 다른 전기적 피드백을 제공했고, 연구진은 시간이 지나면서 게임 수행이 개선됐다고 보고했다. 동일한 피드백을 받지 않은 대조 조건에서는 같은 학습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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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hBrain이 범용 생물학적 컴퓨터를 증명한 것은 아니다. 다만 배양된 신경 네트워크가 제한된 디지털 환경 안에서 과제에 맞춰 활동을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싱가포르의 CL1 랙은 바로 이 구조, 즉 전기적 입력 → 살아 있는 뉴런의 적응적 반응 → 기록된 출력을 여러 모듈로 확장한 시스템이다.
어떤 분야에 쓰일 수 있나
현재 가장 현실적인 활용처는 상업용 AI 서비스보다 연구 분야다.
- 질병 모델링: 다양한 생물학적 조건에서 신경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연구
- 신약 및 독성 시험: 후보 물질이 뉴런 배양체에 미치는 영향 관찰
- 신경과학: 학습, 적응, 살아 있는 신경 네트워크의 작동 방식 분석
- 특수 목적 컴퓨팅: 제한된 학습 데이터나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야 하는 일부 AI·로봇 과제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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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대규모 언어 모델을 GPU 클러스터 수준으로 실행하거나 일반적인 AI 학습을 빠르게 처리하는 용도와는 다르다. 생물학적 컴퓨팅은 현재로서는 GPU의 보편적 대체재라기보다 특정 문제를 위한 보완 기술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20대에서 1,000대로 늘릴 수 있을까
프로젝트 참여 기관들은 규제 승인과 안전성·에너지 효율성 검증을 전제로 CL1을 최대 1,000대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는 확정된 대규모 배치가 아니라 조건부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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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대 규모로 확장하려면 장비 980대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음과 같은 운영 체계가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 균일한 세포 생산 및 배양
- 영양 배지 공급과 세포 교체의 자동화
- 무균 환경 관리
- 배양체별 성능과 상태를 확인하는 품질관리
- 신뢰성 있는 네트워크와 장애 대응
- 노화하거나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배양체를 관리하는 절차
20대 랙은 연구 환경에서 운영되는 프로토타입이다. 1,000대 규모에서는 생물학적 공급망, 실험실 유지보수, 소프트웨어 제어, 데이터센터 인프라가 함께 확장될 수 있는지가 핵심 시험대가 된다.
아직 풀리지 않은 질문
신뢰성과 재현성
살아 있는 세포 배양체는 배치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성숙하거나 기능이 떨어진다. 연구진은 배양체의 성능을 일관된 기준으로 측정하고, 언제 교체해야 하는지 판단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배양체를 교체했을 때 특정 과제에 맞춰 형성된 적응이 새 배양체로 자동 이전되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경제성
전기요금만 비교해서는 실제 비용을 알 수 없다. 영양 배지, 무균 소모품, 실험실 공간, 전문 인력, 품질관리, 세포 교체, 운영 중단 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 겉으로 낮아 보이는 전력 소비가 전체 운영비 절감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확장성
현재 공개된 근거는 배양 뉴런이 제한된 폐쇄형 과제에서 적응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중요한 작업에서 GPU보다 뛰어나다거나, 총소유비용이 더 낮다는 사실까지 증명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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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기술의 성패를 가를 기준은 ‘뉴런을 서버 랙에 넣었다’는 신기함이 아니다. 반복 가능한 성능, 과제별 정확도, 유지 비용, 세포 교체에 따른 안정성, 그리고 더 큰 규모에서도 생물학적 장점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진짜 평가 기준이 된다.
결론
싱가포르의 생물학적 데이터센터 프로토타입은 20대의 CL1, 약 1,600만 개의 인간 피질 뉴런, 실리콘 미세전극 배열, 소프트웨어 제어 시스템을 하나의 연구 플랫폼으로 결합했다. 이 시스템의 가장 설득력 있는 가능성은 신경과학, 질병·약물 연구, 그리고 특수 목적의 적응형 컴퓨팅에 있다.
지금 단계에서 이를 GPU 데이터센터의 대체재라고 부르기보다는, 살아 있는 신경 네트워크가 실제 컴퓨팅 환경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플랫폼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앞으로 주목할 지표는 재현성, 실제 과제 성능, 총운영비, 그리고 20대에서 1,000대로 확장할 때도 이 기술의 핵심인 생물학적 적응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