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트댄스의 행보는 CPU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AI 모델이 학습된 내용을 바탕으로 실제 서비스를 구동하는 '추론(Inference)' 작업에 특화된 ASIC(주문형 반도체)도 별도로 개발 중이다. 업계에서는 이 칩의 코드명을 '시드칩(SeedChip)'으로 부르며, 지난 2월에는 2026년 3월까지 엔지니어링 샘플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고 알려졌다. 특히 삼성전자와 최대 35만 장 규모의 위탁 생산을 논의 중이라는 소식은 이 프로젝트의 규모를 실감하게 한다 .
또한 2026년 5월 말, 바이트댄스는 퀄컴(Qualcomm)으로부터 수백만 개의 AI 데이터센터용 ASIC을 구매하는 대규모 계약을 체결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는 퀄컴의 데이터센터향 AI 칩의 첫 대형 고객사 중 하나가 되는 것으로, 자체 개발과 외부 조달을 병행하는 다각화된 전략을 보여준다 .
이처럼 바이트댄스는 △자체 설계 CPU △맞춤형 AI 가속기(SeedChip) △퀄컴 등 외부 파트너사의 ASIC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엔비디아 GPU에 대한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낮추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거대 기술 기업이 자체 칩을 만드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있으면 좋은' 미래 전략이 아니다. 바이트댄스에게 이는 현재 진행형인 세 가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필수 과제다.
1. 감당할 수 없는 칩 공급 가격
지난 몇 년간 인텔과 AMD 같은 기성 CPU 제조사들은 분기마다 10%에서 많게는 35%까지 서버 CPU 가격을 인상해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AI 인프라를 확장하는 기업에게 이는 사업 지속성을 위협하는 수준의 비용 증가다 .
2. 숨통을 조이는 미-중 기술 패권 전쟁
미국의 첨단 GPU 및 반도체 제조 장비 대중국 수출 통제는 바이트댄스의 AI 야망을 옥죄는 가장 큰 외부 변수다. 최신 엔비디아 칩을 원하는 만큼 살 수 없게 되자, 통제 가능한 국내외 기술 자원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
3. 천문학적 규모로 커지는 AI 투자
바이트댄스는 2026년 AI 인프라에 투자할 자본 지출을 기존 1600억 위안에서 2000억 위안(약 38조 원) 이상으로 최소 25% 증액했다. 이 엄청난 자금이 특정 외부 기업의 이익만 불려주는 구조를 깨고, 자체 기술 자산으로 축적되도록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이들의 복안이다 .
그러나 서버급 CPU를 백지에서 설계하는 일은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어렵고 자본 집약적인 영역 중 하나다. 게다가 Arm과 RISC-V 양쪽에서 동시에 진행하면 그 복잡성은 단순히 두 배가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
더 큰 문제는 생산이다. 설계도를 그리더라도 최첨단 공정에서 이를 양산할 수 있는 파운드리를 확보하는 것은 외교적·지정학적 문제다. 삼성전자가 SeedChip의 유력한 제조 파트너이지만, 중국 기업이 설계한 칩에 최신 공정을 제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민감한 사안이다. 바이트댄스가 삼성과 메모리 칩 공급까지 함께 논의하는 이유다 .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자체 CPU가 당장 엔비디아의 아성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보는 시선은 없다. 완전한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서의 역할이 더 정확하다. 바이트댄스는 2026년 한 해에만 약 1000억 위안(약 19조 원)을 엔비디아 GPU 구매에 쏟아부을 계획이다. 이 막대한 금액은 자체 칩이 완성되기 전까지, 그리고 완성된 후에도 상당 기간 엔비디아의 생태계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바이트댄스의 전략은 사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구글(TPU), 아마존(Graviton, Trainium), 마이크로소프트(Cobalt)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자체 칩 생태계를 구축해왔다. 이들의 목표는 하나였다. 어마어마한 규모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성능의 최적화 지점을 직접 통제하겠다는 것 .
하지만 바이트댄스의 접근법은 더 극단적이다. 미국 기업들이 대부분 Arm 아키텍처를 선택한 것과 달리, 바이트댄스는 오픈소스 생태계인 RISC-V를 적극적인 대안으로 삼았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선호도를 넘어, 향후 Arm의 기술 라이선스나 설계 자산(IP)마저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반도체 시장 조사 기관들은 2026년 맞춤형 AI ASIC 서버 출하량이 전체 시장의 27.8%를 점유하며, 성장률이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범용 GPU의 거의 3배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 이는 바이트댄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 AI 인프라 시장의 패러다임 자체가 '맞춤형 실리콘'으로 빠르게 기울고 있음을 의미한다.
CPU를 설계하고, 샘플을 테스트하고,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배포하는 데는 수년이 걸리는 대장정이다. 바이트댄스의 Arm/RISC-V 듀얼 트랙 프로젝트가 상용화되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과 난관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시도는 단순히 칩 하나를 더 만드는 것을 넘어, '데이터 주권' 시대에 걸맞은 진정한 '하드웨어 독립'을 향한 중대한 첫걸음이다. 바이트댄스가 이 험난한 길에서 성공한다면, 이는 중국 테크 기업의 기술 자립도를 단번에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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