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냐의 진가는 전반 막판 스페인의 파상공세 속에서 빛났다. 페란 토레스의 결정적인 슈팅이 크로스바를 맞고 흘러나왔을 때, 이어진 미켈 오야르사발의 문전 바로 앞 헤더를 믿기 힘든 반사 신경으로 쳐낸 것이다 . 후반전에도 아이메릭 라포르테의 위협적인 헤더를 손끝으로 걷어내는 등 그의 선방은 노련함 그 자체였다
. 경기 종료 후 보지냐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이는 수십 년을 기다려온 한 선수의 꿈이 실현된 가장 인간적인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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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냐 뒤에는 피코 로페스 주장이 이끄는 철옹성 같은 수비진이 있었다. 경기 내내 탄탄한 수비 블록을 유지한 카보베르데는 믿기 힘든 기록 하나를 세웠다. 바로 경기 내내 반칙을 단 1개만 범한 것인데, 이는 1966년 이후 월드컵 역사상 팀이 기록한 가장 낮은 반칙 횟수다 . 4-1-4-1 포메이션으로 밀집 수비를 펼친 카보베르데는 스페인의 27개 슈팅과 2.16의 기대 득점(xG)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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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내내 스페인이 공을 잡고 카보베르데가 막는 ‘창과 방패’의 구도가 이어졌다. 스페인은 69%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그들의 패스는 너무 느리고 뻔했다 . 좌우로 공을 돌리는 데 급급한 스페인의 공격은 카보베르데의 촘촘한 수비 간격을 재정비할 시간만 벌어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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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데 라 푸엔테 감독은 10대 신성 라민 야말을 선발이 아닌 교체 카드로 아껴두는 의외의 선택을 했다. 후반에 야말과 다니 올모, 니코 윌리암스를 투입했지만, 오히려 스페인의 공격은 더욱 조급해지며 좀처럼 예리함을 찾지 못했다 . 페란 토레스의 결정적인 실수를 포함해 여러 차례 손에 맞는 볼(핸드볼)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쯤 유럽 챔피언의 표정에는 당혹감과 무기력함만이 남아 있었다
. 이는 단순한 경기력 부진이 아닌, 골 결정력 부재라는 스페인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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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기는 단순한 1점짜리 무승부 그 이상이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카보베르데 응원단은 조국에서 무려 5,300km(3,291마일)나 떨어진 머나먼 땅에서 역사적인 쾌거를 함께 목격했다 .
역대 남자 월드컵에 출전한 나라 중 세 번째로 인구가 적은 국가인 카보베르데에게,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적과 같았다 . 그런 그들이 피파 랭킹 차이 역대 9위라는 열세를 딛고 유럽 챔피언을 무득점으로 틀어막은 것은 실로 대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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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으로 얻어낸 무승부가 아니었다. 철저한 전술과 희생, 그리고 한 노장 골키퍼의 불굴의 의지가 개인 기량과 자본의 절대적 차이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날이었다. 보지냐가 경기 최우수 선수상을 받으며 펑펑 울었던 그 순간은, 월드컵이 단순한 승부의 장을 넘어 가장 위대한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탄생시키는 무대임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