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협상 중단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내 '지속적인 범죄 행위'다. 이란은 타스님 통신을 통해 "레바논이 휴전 협상의 전제조건이었던 만큼, 이스라엘이 이 전선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휴전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즉,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이 레바논과 가자 지구 모두에서 멈추지 않는 한 대화 복귀는 없다는 입장이다 .
사실 이 불안한 휴전 체제는 처음부터 모래 위에 세워진 성과 같았다. 불과 4월 8일, 파키스탄의 중재로 극적으로 성사되었던 '2주간 임시 휴전'의 핵심 골자는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이었다. 그러나 이란은 곧바로 통행을 제한하며 이스라엘의 공습을 비난했고, 약속된 해협 정상화는 허공으로 사라졌다 .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완전하고 최종적인 합의' 가능성을 타진하며 군사 작전을 잠시 멈추는 등 공을 들였지만, 외교의 불씨는 끝내 6월 1일 완전히 꺼졌다
.
문제는 이란이 단순히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간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와 예멘, 레바논, 이라크의 시아파 동맹군으로 구성된 이른바 **'저항의 축(Resistance Front)'**은 훨씬 더 위험한 전략을 내놓았다.
이미 지난 2월 말부터 실질적으로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는 것은 물론, 예멘과 지부티 사이에 위치한 또 다른 주요 해상 병목 지점인 바브 알 만데브(Bab al-Mandeb) 해협 전선을 동시에 활성화하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
이는 단순한 겁박이 아니다. 호르무즈가 페르시아만의 원유와 콘덴세이트, 액화천연가스가 빠져나가는 유일한 동맥이라면, 바브 알 만데브는 홍해와 수에즈 운하로 이어지는 관문이다. 이 두 수로가 한꺼번에 막힌다는 것은, 만약 일부 유조선이 걸프만을 빠져나온다고 해도 유럽과 북미 시장에 도달할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는 의미다. 전 세계 원유 공급이 두 방향에서 동시에 압박받는, 그야말로 최악의 협공 작전이 펼쳐지는 셈이다.
정작 세계 경제를 가장 공포로 몰아넣는 것은 지리학적 수사가 아니라 바로 데이터, 즉 전 세계 저장 탱크에 남아 있는 기름의 양이다. 세계는 3개월 넘게 전례 없는 속도로 비축유를 태워 왔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줄어든 약 1,100만 배럴/일(b/d) 규모의 걸프만 원유 부족분을 오로지 재고 방출로 버텨온 탓이다 .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 4월 한 달 동안 글로벌 석유 공급량은 하루 180만 배럴이 추가로 줄어 9,510만 배럴을 기록했다. 전쟁이 시작된 2월 이후 누적 손실량만 무려 1,280만 배럴에 달한다 . 정유 시설과 배급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남겨 두어야 하는 최소한의 '운영상 바닥(tank bottoms)'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요 에너지 기업의 수장들은 더 이상 과격한 발언을 망설이지 않고 있다.
엑슨모빌의 닐 채프먼 부사장은 번스타인 회의에서 "재고가 바닥을 찍는 시점이 2주 후인지 3주 후인지는 따져볼 수 있겠지만, 그 지점에 도달하는 순간 가격이 치솟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 그는 실물 원유 거래의 기준인 '데이티드 브렌트(Dated Brent)'가 배럴당 150~160달러 선까지 폭등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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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브론(Chevron)의 마이크 워스(Mike Wirth) CEO도 이와 궤를 같이하는 경고를 발신했다. 그는 전략비축유(SPR)를 포함해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위기 초기에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동원했던 모든 안전판이 사실상 소진되었다고 진단하며, 불과 몇 주 안에 배럴당 150달러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
에너지 컨설팅 기업 우드 멕켄지(Wood Mackenzie)가 제시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더 암울하다. 만약 연말까지 호르무즈 해협이 대부분 폐쇄된 상태로 유지된다면, 전 세계 석유 수요가 하루 600만 배럴씩 급감하는 와중에도 브렌트유는 배럴당 200달러에 육박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
물리적 원유 부족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상황에서, 러시아는 세계인의 이동성을 책임지는 정제 석유 제품에 결정적인 일격을 가했다. 모스크바 당국이 오는 2026년 11월 30일까지 항공유(Jet Fuel)의 수출을 전면 금지하기로 한 것이다 .
이는 중동산 원료 공급이 끊겨 가동률이 급감한 유럽과 아시아의 정유 공장들이 항공유를 생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바로 그 시점에 터져 나온 악재다. 사우디 등이 막혀 버린 틈을 쥐고 흔들릴 수 있었던 러시아산 대체 공급마저 원천 봉쇄된 것이다.
분석가들은 이 중첩된 위기 탓에 불과 몇 주 내로 유럽의 주요 항공사들이 항공유 배급제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드 멕켄지는 심각 시나리오에서 올해 말까지 주요 정제 허브의 항공유 가격이 배럴당 300달러를 향해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
이란이 대화 복귀를 위해 내건 조건은 단순하다. 이스라엘이 레바논과 가자 지구에서 모든 군사 작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호르무즈와 바브 알 만데브를 아우르는 이중 봉쇄 전략은 유지될 것이다.
가장 문제는, 설령 지금 당장 기적 같은 외교적 돌파구가 마련된다고 해도 걸프 지역의 생산 인프라가 입은 피해를 복구하는 데 수개월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쟁 이전 수준의 생산 및 교역 패턴이 재개되는 시점을 2026년 말 혹은 2027년 초로 내다보고 있으며, 일부 페르시아만 산유국들은 사실상 전쟁 이전의 생산 수준으로 영원히 돌아가지 못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
임계점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2~3주. 이제 세계 경제는 '비싼 기름'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구할 수 없는 기름'이라는 실존적 위협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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