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재평가의 속도는 숨이 막힐 정도였다. SK하이닉스의 주가는 AI 데이터센터에 필수적인 HBM 칩 주문에 힘입어 2026년 연초 대비 200% 이상, 2025년 전체로는 274%나 상승한 상태였다 . 불과 16개월 전만 해도 이 회사의 가치는 1,000억 달러 미만이었다
.
대만 시장 역시 같은 흐름을 탔다. 5월 4일, 대만 가권지수는 1,778.51 포인트가 오르며 사상 최대 일일 상승 폭을 기록, 처음으로 40,000선 위에서 마감했다 . 이 랠리를 주도한 것은 대만 증시 전체 시가총액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TSMC였다
. 가권지수는 상승세를 이어가 5월 12일에는 42,000선마저 돌파했고, 5월 말에는 연초 대비 상승률이 50%를 넘어섰다
. 상승세가 너무 가팔랐던 탓에 5월 6일, 코스피 시장에는 과열을 식히기 위한 ‘사이드카’가 발동되는 진기록도 나왔다
.
AI 광풍은 특정 시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일본의 기술주 및 반도체 관련주들은 닛케이 지수를 수십 년 만의 최고치로 끌어올렸고, 5월 5일에는 MSCI 아시아 태평양 지수가 하루 만에 2.3% 급등하며 투자자들이 반도체 종목에 앞다투어 몰려들었다 . 한국의 ‘개미’ 투자자들 역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식을 대거 사들이며 5월 중순 코스피 지수를 7,700선 위로 밀어 올렸다
.
AI 열풍이 상승 동력을 제공했다면, 5월 말 터져 나온 지정학적 이벤트는 시장에 신선한 연료를 주입했다. 5월 29일, 미국과 이란 협상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승인을 전제로 60일간의 휴전 연장에 잠정 합의했다 . 이 소식은 뉴욕 증시의 불안한 출발을 뒤집고, 아시아 시장을 급등시켰다
.
가장 즉각적으로 반응한 곳은 원유 시장이었다.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던 브렌트유는 5월 한 달에만 19% 가까이 하락하며 2020년 이후 최악의 월간 낙폭을 기록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역시 배럴당 87달러 선까지 밀렸다 . 긴장 완화는 제조업 비중이 높은 아시아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던 에너지 비용 공포를 직접적으로 덜어냈고,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비기술 업종으로의 자금 순환을 부추겼다
.
축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번 랠리의 취약한 기반은 우려를 낳기에 충분했다. 한국은 미국 외 국가로는 처음으로 두 개의 시총 1조 달러 기업을 동시에 보유하게 되면서 AI 공급망의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재확인했다 . 그러나 전문가들은 상승세가 반도체 부문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대만 증시에서는 2026년 전체 성장분의 60% 이상을 TSMC 혼자 책임졌고, 섬유나 원자재 같은 전통 산업은 오히려 부진을 면치 못했다
. 한 보도는 “‘컴퓨터 칩 주식에 부푼 광풍’으로 인해 투자자들은 이 흐름이 ‘곧 터질 또 다른 밸류에이션 거품’인지 의문을 품고 있다”고 전했다
.
2026년 5월 시장의 가격 움직임은 AI 칩 수요가 일시적 호황이 아닌 구조적 변화라는 강한 확신을 반영했다. 스위스 금융 그룹 UBS는 SK하이닉스의 1조 달러 클럽 입성 후 “시총이 향후 12개월 동안 두 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하며 공격적인 장기 성장 가정을 내놓기도 했다 .
2027~2028년에 대한 구체적인 수요 전망이 현재 보고서에는 없지만, 시장은 행동으로 분명히 말하고 있다. 세계 3대 메모리 리더의 밸류에이션이 단 한 달 만에 동시에 재평가된 것은, 투자자들이 현재의 실적 사이클을 훨씬 뛰어넘는 AI 주도 성장 배수를 적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관건은 AI 하드웨어에 걸린 수천조 원의 투자를 정당화할 만큼 최종 사용자들의 AI 도입이 충분히 빠르게 확장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Comments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