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가격 급등은 단순히 세계가 금속을 다 써버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핵심은 장소와 시간의 압박이었다. 미국이 정련 구리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전망이 퍼지면서, 관세가 시행되기 전에 구리 캐소드(정련 구리)를 미국으로 들여와 보관하는 거래의 가치가 커졌다. 그 결과 런던금속거래소(LME) 인도 가능 지역과 다른 소비 지역에서 물량이 빠져나가며, 미국 밖에서 당장 받을 수 있는 구리의 가격이 올랐다.
18
19
LME 구리의 사상 장중 최고가는 톤당 1만4,527.50달러였다. 8월 하순에는 대규모 출고 요청으로 LME 창고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물량이 줄면서 3개월물 가격이 다시 그 수준에 근접했다.
18
관세 가능성이 미국 비축 유인을 만들었다
미 상무장관은 정련 구리에 대해 2027년부터 15%, 2028년부터 30%의 단계적 보편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이는 이미 발효된 정련 구리 관세가 아니라 권고안이었다. 당시 실제 조치는 특정 반제품 구리와 구리 함량이 높은 파생제품에 적용됐다.
1
17
이 차이는 중요하다. 관세 시행 전에 정련 구리를 미국에 수입해 창고에 보관할 수 있다면, 향후 관세로 보호되는 시장에서 더 높은 가치를 가질 수 있는 물량을 선점하는 셈이 된다. 미국 인도분 구리의 가격 프리미엄은 수입 확대와 시장 간 차익거래를 부추겼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의 정련 구리 수입은 2025년 전년 대비 80% 증가한 164만 톤에 달했다. 2026년 첫 5개월 수입량도 76만3,000톤으로 전년 동기보다 13% 늘었다.
19 이것이 미국의 COMEX 재고는 증가하는데 LME에서 쓸 수 있는 물량은 줄어드는 듯한 모순을 설명한다. 이는 세계 소비가 같은 폭으로 늘었다는 뜻이라기보다, 구리가 미국 쪽으로 재배치됐다는 의미에 가깝다.
왜 ‘두 속도’ 구리 시장이 됐나
COMEX 구리는 관세 부과 가능성이 있는 미국 시장으로 인도할 수 있는 금속이라는 성격이 강해졌다. 반면 LME 구리는 국제 기준 가격으로, 향후 미국에 수입될 경우 관세 부담을 안을 수 있는 물량이다.
따라서 COMEX와 LME의 가격 차이는 단순한 운송비·금융비 차익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시장이 예상하는 관세 위험을 보여주는 신호가 된 것이다. 로이터는 CME 계약이 미국 관세 납부 기준의 구리를, LME 가격은 국제 가격을 반영한다고 설명했으며, 정련 구리 관세 가능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선물 가격 격차가 확대됐다고 전했다.
20
이로써 시장은 두 갈래로 움직였다.
- 미국 시장: 관세 가능성에 대비한 거래가 몰리며 인도 가격과 비축 재고가 상승했다.
- 국제 시장: LME 인도 지역에서 즉시 공급 가능한 물량이 줄고, 근월물 수급이 타이트해졌다.
관세가 아직 시행되지 않았더라도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속이 미래 가치가 더 높아 보이는 시장으로 이동하면서 다른 지역의 가용 물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18
LME 백워데이션이 심해진 이유
백워데이션은 현물 가격이 미래 인도 선물 가격보다 높은 상태다. 구매자·공매도 포지션 보유자·산업 수요자가 미래보다 지금 당장 필요한 금속에 더 높은 값을 지불할 때 흔히 나타난다.
이번에는 선적 경로 변경과 창고 출고로 LME에서 바로 인도할 수 있는 구리 풀이 축소됐다. 로이터는 LME 가용 재고가 9만 톤까지 내려갔고, 현물과 3개월물의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18 이 스프레드는 전 세계 재고 자체가 사라졌다는 판정이라기보다, 즉시 인도 가능한 공급이 부족하다는 경고에 가깝다.
공급 리스크가 지역별 경색을 더 키웠다
관세 기대에 따른 물량 이동은 실제 공급 불확실성과 맞물렸다.
칠레 국영 구리기업 코델코(Codelco)는 상반기 생산량이 전년보다 11% 감소한 56만4,000톤이라고 밝혔다. 엘 테니엔테 광산의 운영 제한, 추키카마타의 감산, 미니스테로 알레스의 광석 품위 저하가 배경이었다.
29 코델코는 광산 사고 이후 엘 테니엔테의 생산량이 약 5년간 낮은 수준에 머물 것으로도 전망했다.
32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는 구리·코발트 정광 수출을 즉시 금지했다. 다만 전략적 상황에서는 1년짜리 면제가 가능하다.
28 정광은 정련 캐소드가 아니므로 LME 인도 가능 물량을 직접 줄이는 조치는 아니다. 그러나 제련 원료 확보와 향후 정련 공급에는 불확실성을 더한다.
이런 차질만으로 현재 전 세계가 구리 부족 상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정상적인 교역 경로에서 물량이 빠져나갈 때 시장을 훨씬 예민하게 만든다. 광산 운영 문제와 광석 품위 저하로 생산이 제약되면, 특정 지역의 부족에 공급이 빠르게 대응하기도 어려워진다.
6월 6만 톤 적자,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제구리연구그룹(ICSG) 자료에 따르면 세계 정련 구리 시장은 6월 6만 톤 적자를 기록했다. 5월에는 1만5,000톤 흑자였다. 하지만 2026년 1~6월 누적으로는 13만1,000톤 흑자였다.
46
해석은 단순하지 않다.
- 6월 수치는 월간 시장이 더 타이트해졌다는 신호다.
- 상반기 누계는 지속적인 세계 실물 공급 부족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 세계 전체 수급이 흑자에 가깝더라도, 거래소의 특정 창고와 특정 시점에서 물량이 부족하면 현물·근월 가격은 크게 오를 수 있다.
이번 랠리를 이해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세계 수급표의 균형과, 필요한 창고에서 필요한 형태로 필요한 시점에 금속을 받을 수 있는지는 서로 다른 문제다.
앞으로 무엇이 가격을 가를까
정련 구리 관세가 폭넓게 시행된다면
미국에 미리 반입된 재고는 상당한 상업적 이점을 유지할 수 있다. COMEX와 LME의 프리미엄 격차가 지속되고, 미국으로의 물량 이동도 이어져 미국 밖의 근월물 공급이 상대적으로 타이트할 수 있다.
정책이 연기되거나 범위가 축소·철회된다면
대규모 미국 재고를 보유할 이유가 약해진다. 보유자는 구리를 매도·소비하거나 재수출할 수 있고, 이는 LME 지역의 압박을 낮추며 미국과 런던 간 가격 격차를 좁힐 수 있다.
실물 공급이 더 악화된다면
미국 재고가 풀린다고 해서 강세장이 자동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광산 차질 확대, 정련 생산 둔화, 정광 수급 경색이 이어지면 시장의 초점은 정책발 물량 재배치에서 더 광범위한 공급 제약으로 옮겨갈 수 있다.
결론
구리의 기록적 가격에는 두 가지 힘이 동시에 작용했다. 하나는 정련 구리를 미국으로 끌어들인 정책발 재배치, 다른 하나는 광산 차질과 생산 제약에서 비롯된 실질적 공급 리스크 프리미엄이다. 전자는 최종적인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결정에 매우 민감하다. 후자는 더 오래 이어질 수 있다.
지금 중요한 질문은 세계 어딘가에 구리가 존재하느냐가 아니다. LME 시장과 실물 구매자가 필요로 하는 장소와 시점에, 미국 밖에서 구리를 확보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1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