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테논 신전에는 엄밀한 직선·균일성에서 벗어난 실제 미세 조정이 있다. 기단인 **스타일로베이트(stylobate)**는 중앙을 향해 완만히 올라가고, 기둥 몸통은 가운데가 약간 불룩한 **엔타시스(entasis)**를 보인다. 다만 옥스퍼드대 수학자 알랭 고릴리(Alain Goriely)의 연구가 문제 삼는 것은 그 곡선의 존재가 아니다. 이 요소들이 신전을 눈에 ‘완벽하게 곧고 반듯하게’ 보이게 하려는 계산된 착시 보정이었다는 통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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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형태가 있다는 것과 의도가 입증됐다는 것은 다르다
널리 알려진 설명에 따르면, 파르테논의 스타일로베이트는 중앙으로 약 6cm 솟아 있고, 기둥에는 약 18mm 수준의 엔타시스가 있다. 평평한 수평선은 눈에 처져 보이고, 직선형 기둥은 오목하거나 지나치게 가늘어 보일 수 있으므로 이를 상쇄하려고 곡선을 넣었다는 이야기다.
고릴리의 주장은 더 제한적이지만 중요하다. 그는 이런 미세 조정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형태가 있다’는 관찰에서 ‘고대 건축가가 착시를 교정하려고 그렇게 만들었다’는 결론으로 넘어가는 데 필요한 증거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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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된 12가지 ‘보정’은 눈에 보일 만큼 작동했나
연구는 적어도 12가지의 이른바 광학적 교정을 검토했다. 결론은 이렇다. 각각이 상쇄한다고 주장되는 시각 효과가 확인되지 않거나, 일반적인 관람 거리와 조건에서는 지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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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긴 수평선이 본래 중앙에서 처져 보인다는 주장에 대해 고릴리는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언론 보도에서 그의 결론은 “터무니없거나 사실상 감지할 수 없다”는 말로 요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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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적은 하나의 정밀한 기하학적 조정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작용한다는 생각에도 의문을 던진다. 건축물은 보는 거리, 시선의 각도와 방향, 빛의 조건에 따라 다르게 경험된다. 관찰자의 지각도 모두 같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특정 곡선 하나가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보정’ 효과를 낸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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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곡선은 왜 넣었나? 답은 아직 모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고릴리의 연구가 곡선을 단순한 실수나 우연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곡선, 기둥의 윤곽, 기타 비정규적 요소는 의도적이었을 수 있다. 다만 그 의도가 광학적 보정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남아 있는 자료만으로는 설계자들이 눈에 띄는 곡률을 원했는지, 특정한 미적 효과를 추구했는지, 시공상의 해법을 택했는지, 혹은 다른 목적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설계 동기는 미상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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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광학적 교정’이라는 표현은 중립적인 사실 묘사라기보다, 고대 건축가의 의도와 인간 시각의 작동 방식에 관한 여러 가정을 묶은 해석에 가깝다.
통설은 어떻게 굳어졌나
이 설명의 뿌리는 기원전 1세기의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Vitruvius)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저작 *건축 10서(De architectura)*에는 기단의 곡률과 기둥 처리에 관한 처방이 담겼고, 후대에는 이를 그리스 건축의 미세 조정을 지각적 보완으로 해석하는 중요한 근거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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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는 영국 건축가 프랜시스 펜로즈(Francis Penrose)의 정밀 조사가 파르테논의 불규칙성이 실제로 존재하며 측정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펜로즈는 엔타시스를 직선형 기둥이 오목하거나 가늘어 보인다는 불쾌한 착시를 상쇄하는 방식으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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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형태를 정확히 측정한 일’과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설명하는 일’은 별개다. 고릴리는 전자는 받아들이면서 후자는 재검토한다. 실제 측정값에, 설계자의 직접적 의도 증거 없이 전승된 설명이 결합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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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지식의 오류’와 AI가 만드는 반복의 힘
고릴리는 이 신화가 유지되는 한 이유를 **‘최고 지식의 오류(supreme knowledge fallacy)’**라고 부른다. 고대 그리스인이 수학·공학·예술·시각심리를 모두 꿰뚫은 거의 전지적인 존재였다고 상정한 뒤, 눈에 띄는 모든 세부를 정교한 숨은 계산의 증거로 읽어내는 경향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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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고대 그리스 장인의 역량을 깎아내리는 주장이 아니다. 뛰어난 솜씨가 곧 특정 설계 의도를 증명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스인들은 신전이 똑바로 보이게 하려고 곡선을 넣었다’는 짧고 매력적인 이야기는 교과서와 대중 콘텐츠를 거쳐 쉽게 반복된다. 고릴리는 오늘날 대형 언어 모델 기반 챗봇도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이 설명을 유창하게 되풀이하며, 통설의 권위를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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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이 아니라 해석을 검증하라는 제안
이 연구가 파르테논의 위상을 낮추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이 확인된 사실이고 무엇이 후대의 설명인지를 더 엄밀하게 구분하자고 요구한다.
파르테논의 미세 조정은 실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착시 보정을 목적으로 했고 실제로 그 효과를 냈다는 주장은 별도의 역사적·과학적 명제다. 고릴리의 결론에 따르면, 그 명제는 충분한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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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넓게 보면, 이는 건축과 역사 전반에 적용되는 경고다. 관찰 가능한 특징과 그 이유에 관한 이야기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오래, 널리, 그럴듯하게 반복된 설명이라도 검증된 사실일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