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비스 칼라닉의 메시지는 단순히 “벤처캐피털은 나쁘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의 주장은 창업자가 회사의 일상적인 의사결정과 문제를 투자자보다 훨씬 깊이 이해하므로, 투자자의 영향력은 매우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데 가깝다.
칼라닉은 데이비드 센라의 팟캐스트에서 벤처캐피털의 약 10%만이 기본적인 ‘해를 끼치지 않기(do no harm)’ 기준을 충족한다고 말했다. 진정으로 유용한 도움을 주는 투자자는 고작 1% 정도라는 게 그의 추정이다. 245
그런데 이 발언에는 선명한 역설이 따라붙는다. 칼라닉이 이 같은 비판을 내놓은 시점과 가까운 때, 그가 이끄는 산업용 AI·로보틱스 기업 아톰스는 안드레essen 호로위츠가 주도한 17억 달러 규모의 투자 라운드를 유치했다. 벤 호로위츠는 아톰스 이사회에 합류했고, 우버도 투자에 참여했다. 1225
창업자는 체스 그랜드마스터, VC는 가끔 들여다보는 애호가
칼라닉은 강한 운영형 창업자를 체스 그랜드마스터에, 벤처캐피털리스트를 가끔 체스판을 들여다보는 애호가에 비유했다. 창업자는 매 순간 다음 수를 고민하지만, 투자자는 몇 달에 한 번 회사를 확인한 뒤에도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려 한다는 설명이다. 441
그가 지적한 문제는 투자자가 아무런 가치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회사를 직접 운영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이해 수준을 과대평가할 때, 조언이 오히려 운영자를 방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칼라닉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은 결코 낮은 기준이 아니다. 투자자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회사를 실제로 운영하는 사람이 더 나쁜 판단을 하게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VC를 비판하면서도 투자 유치는 치밀하게 조언
칼라닉은 창업자들에게 벤처투자 자체를 피하라고 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금 조달을 상당히 전술적인 과정으로 설명했다.
- 피치를 ‘거의 필연적인 성공’처럼 다듬어라. 회사가 잡은 기회와 실행력이 투자자에게 무시하기 어렵게 전달돼야 한다.
- 투자 유치 과정을 통제하라. 여러 투자자 사이에 신뢰할 만한 관심을 만들어 한 곳에 의존하지 않고 경쟁 구도를 조성해야 한다.
- 충분히 보여주되, 전부 공개하지는 마라. 통찰력과 실행 가능성을 입증할 만큼은 설명하되, 불필요한 전략 정보까지 넘겨줄 필요는 없다.
마지막 조언은 특히 AI처럼 변화가 빠른 분야에서 중요하다. 세부 정보는 투자자의 확신을 높이는 자료인 동시에 경쟁자가 활용할 수 있는 경쟁 정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조언은 투자 유치를 단순한 네트워킹이나 비공식 대화의 연속으로 보지 말고, 회사의 전략적 이해관계와 지배구조까지 고려하는 과정으로 다루라는 것이다.
벤치마크와 빌 걸리가 여전히 중요한 이유
칼라닉이 벤치마크와 빌 걸리에게 품은 반감은 2017년 우버 이사회 갈등에서 비롯됐다. 당시 우버의 핵심 투자자였던 벤치마크와의 대립은 칼라닉이 CEO 자리에서 물러나는 결과로 이어졌고, 테크크런치는 이를 칼라닉과 벤처캐피털 업계의 관계를 규정한 핵심 사건으로 설명했다. 2
당시 로이터는 벤치마크가 칼라닉을 우버 이사회에서 퇴출하고, 그가 이사 세 명을 지명할 수 있는 권한을 없애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17
칼라닉의 회고에 따르면 갈등은 우버의 자금 조달과 기업가치 평가 계획, 리더십 문제를 둘러싼 의견 차이에서 시작됐다. 이후 걸리와의 관계는 악화됐고, 두 사람은 결국 대화를 중단할 정도에 이르렀다는 보도가 나왔다. 32
다만 그의 설명을 우버 이사회 분쟁에 대한 중립적인 기록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칼라닉이 여전히 개인적인 불만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갈등은 그가 투자자 선택을 단순히 ‘누가 돈을 대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의 지배구조와 개인적 신뢰를 결정하는 문제로 보는 이유를 보여준다.
칼라닉은 자신을 완전한 피해자로 묘사하지 않았다
이번 회고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칼라닉이 자신을 일방적인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주변에 불만을 가진 관계가 쌓이는 과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또 과거 회사 레드 스우시를 키우던 시절 겪은 재정적 불안정이 자신의 강압적이고 대립적인 경영 방식에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그의 해석은 자신이 규칙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규모와 주목도가 커진 우버에서 여러 차례 위험한 경계선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경영 및 정치적 실패를 일부 인정하는 태도다. 그렇다고 우버 위기와 관련해 제기된 모든 주장이나 설명을 받아들인다는 뜻은 아니다. 당시 보도는 성희롱, 차별, 유해한 직장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와 칼라닉의 퇴진을 연결했다. 12
그 결과 칼라닉의 입장은 의도적으로 복잡하다. 그는 관계 관리와 리더십에서의 실패는 인정하지만, 이사회가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은 이유를 하나의 도덕적 서사로 단순화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창업자 통제권’ 논쟁
칼라닉의 발언은 실리콘밸리에서 반복돼 온 갈등의 한 장면이다. 투자자들은 시장을 뒤흔들 만큼 공격적이고 빠르게 실행하며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창업자에게 처음 투자한다. 하지만 회사가 성장하면 같은 성향이 약점으로 바뀔 수 있다. 더 공식적인 거버넌스와 내부 통제, 혹은 다른 리더십 스타일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양측은 어려운 질문을 마주한다. 투자자들이 실제 지배구조 문제를 바로잡는 것일까, 아니면 회사가 성장했다는 이유로 창업자가 예상하지 못한 수준의 통제권을 가져가려는 것일까?
칼라닉의 경험은 이 질문에 대한 한 창업자의 답이다. 다만 현재 공개된 기록만으로 우버 이사회 충돌의 원인을 하나로 확정할 수는 없다.
마크 핀커스가 액셀을 다시 비판한 사례도 이 논쟁이 계속되는 이유를 보여준다. 핀커스는 서포트닷컴이 성장하고 기업공개를 향해 나아가던 시기에 액셀이 자신을 CEO에서 교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핀커스의 설명이며, 액셀의 행위에 대한 독립적으로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18
아톰스의 17억 달러 투자가 드러낸 역설
칼라닉의 새 회사는 그의 주장이 가진 긴장감을 한층 뚜렷하게 만든다. 안드레essen 호로위츠는 칼라닉과의 대화를 홍보하는 동시에 아톰스의 17억 달러 투자를 주도했고, 공동 창업자 벤 호로위츠는 아톰스 이사회에 합류했다. 25
여기에 칼라닉이 2009년 설립했고 2017년 떠났던 우버까지 투자자로 참여했다. 한때 자신을 CEO 자리에서 밀어낸 회사와 다시 투자 관계로 연결된 셈이다. 912
따라서 칼라닉은 원칙적으로 자금 조달을 반대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의 입장은 훨씬 선별적이다. 자본은 필요할 수 있지만, 창업자는 유용한 판단력과 절제력을 실제로 보여주지 않은 투자자에게 지나친 영향력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창업자가 가져갈 수 있는 세 가지 질문
칼라닉의 인터뷰에서 실용적으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그의 경영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모든 투자자 분쟁을 음모의 증거로 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보통 한데 묶여 있는 세 가지 결정을 분리해 검토하라는 데 있다.
- 누가 자금을 제공하는가?
- 누가 이사회 수준의 권한을 갖는가?
- 회사의 상황이 바뀌었을 때 실제 운영 판단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유명한 투자사는 자금 조달, 인재 영입, 후속 소개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유명세가 곧 좋은 운영 파트너라는 뜻은 아니다.
창업자는 잠재적 투자자가 의견 충돌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떤 정보를 요구하는지, 이사회 권한이 어떻게 설계되는지, 회사가 성장할수록 투자자의 이해관계가 계속 일치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칼라닉의 회고가 흥미로운 이유는 벤처캐피털에 대한 거친 판정과 대규모 투자 유치의 성공이 한 이야기 안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이 모순이야말로 핵심이다. 그는 여전히 자본과 영향력 있는 파트너를 원한다. 다만 회사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갈지에 대한 최종 권한만큼은 투자자가 아니라 창업자가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