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안드로스섬 앞바다에서 약 2,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상선 난파선이 발견됐다. 수심 3944m 해저에는 끝이 뾰족한 운송용 암포라가 약 600650점 흩어져 있었다. 도자기 양식에 근거하면 화물은 기원전 5세기 후반에서 기원전 4세기 초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는 현재로서는 선박 자체의 건조 시점이나 정확한 침몰 시점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45
이번 발견의 핵심은 난파선의 정체가 완전히 밝혀졌다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생산 전통을 보여주는 대규모 혼합 화물이 비교적 드문 후기 고전기 에게해 항해와 교역을 살펴볼 귀중한 자료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선박의 출항지와 목적지, 화물의 정확한 내용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안드로스 앞바다에서 무엇이 발견됐나
암포라는 고대 지중해에서 와인이나 기름 등 대량 물품을 해상으로 운반할 때 사용한 도자기 용기다. 이번 난파선에서는 최소 세 가지 유형이 식별됐다.
- 멘데 암포라: 북부 그리스 칼키디키의 카산드라반도에 있던 멘데와 관련된 용기다. 멘데는 와인 생산과 수출로 알려진 북부 에게해의 중심지였다.
- 페파레토스 암포라: 오늘날 스코펠로스섬에 해당하는 고대 지명 페파레토스와 연결된다. 이 지역 역시 고대의 와인 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 솔로하 2 암포라: 보스포루스와 흑해로 이어지는 교역권에서 확인되는 유형명이다. 다만 정확한 생산지는 멘데나 페파레토스처럼 명확하게 특정되지 않았다. 145
서로 다른 생산지와 유형의 용기가 한 화물에 섞여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상인이 여러 항구에서 물품을 모았거나, 한 지역의 재분배 거점에서 화물을 실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가능한 해석이다. 암포라의 형태는 제작 전통을 알려줄 수 있지만, 모든 용기가 어느 항구에서 실렸고 선박이 어디로 향했는지까지 증명하지는 않는다. 45
암포라 안에는 와인이 담겨 있었을까
멘데와 페파레토스가 와인 생산 및 해상 수출과 관련된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일부 암포라에 와인이 담겼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안드로스 난파선의 실제 내용물은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잔류물 검사와 추가 물리·화학 분석이 이뤄져야 화물의 성격을 확정할 수 있다. 133
용기의 산지를 추정하는 것과 그 안에 담긴 상품을 확인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연구진은 선박의 모항, 항해 방향, 최종 목적지, 전체 화물의 정확한 출처도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닻과 평형수 흔적도 확인
조사 과정에서는 납제 닻 가로대 일부와 선박의 평형수였을 가능성이 있는 돌무더기도 기록됐다. 이런 자료는 당시 선박의 장비와 운항 방식을 연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만 현재 확인된 유물만으로 선박의 전체 구조나 항해 체계를 복원하기는 어렵다. 14
고고학자들은 유물을 전부 인양하지 않고, 확인된 각 유형에서 대표 암포라 한 점씩만 선별해 연구용으로 확보했다. 이 표본의 형태와 점토 성분, 화학적 특징을 비교하면 제작지와 각 화물 집단 사이의 관계를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435
개인의 신고가 발견으로 이어져
이 유적은 한 민간인이 해저에서 발견 사실을 당국에 알리면서 알려졌다. 이후 그리스 문화부 산하 수중고고학 당국이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화물의 위치와 상태를 기록했다. 45
이번 사례는 해저 유물을 발견했을 때 신속하게 신고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도 보여준다. 전문가들이 유물을 현장에 남겨둔 채 조사하고 보호하면 화물의 배치, 난파선의 주변 맥락, 해저 퇴적 상태 같은 정보까지 보존할 수 있다. 유물을 기록 없이 옮기면 이런 고고학적 단서가 사라질 수 있다.
고대 에게해 무역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유
후기 고전기는 이후 로마 시대에 비해 해상 교역의 흔적과 기록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시기다. 이 시기의 상선에 수백 점의 암포라가 실려 있었다는 사실은 에게해 내부에서 상품이 어떻게 이동했는지, 북부 생산지가 흑해로 이어지는 항로와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1114
앞으로 연구가 풀어낼 수 있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 암포라는 하나의 대형 재분배 항구에서 실렸을까, 아니면 여러 항구에서 나누어 실렸을까?
- 선박은 북부 에게해에서 키클라데스 제도를 거쳐 보스포루스나 다른 목적지로 향했을까?
- 모든 용기가 와인용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상품도 함께 실려 있었을까?
- 화학 분석으로 현지 생산품과 다른 지역에서 재분배된 용기를 구별할 수 있을까?
현재 가장 신중하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렇다. 안드로스 난파선의 화물은 후기 고전기에 여러 암포라 생산 전통이 참여한 대규모 상업 활동을 기록한다. 서로 연결된 시장의 존재를 보여주지만, 하나의 확정된 항해 경로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시칠리아의 로마 난파선과 비교하면
안드로스 발견은 최근 지중해에서 잇따라 보고된 수중고고학 성과 가운데 하나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마차라델발로 앞바다에서도 별도의 로마 시대 난파선이 발견됐다. 수심 약 46m에 있는 이 난파선은 기원전 2~1세기로 잠정 추정되며, 해저에는 수백 점의 암포라가 남아 있다. 대부분은 로마 공화정 말기의 대량 운송과 관련된 드레셀 1A 유형으로 분류된다. 이 유형은 일반적으로 와인 교역과 연결된다. 181927
두 난파선은 약 3세기의 시간 차이가 있고, 상업적 배경도 다르다. 안드로스 난파선은 북부 에게해 및 흑해권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혼합형 후기 고전기 화물을 보여준다. 반면 마차라델발로 난파선은 로마 공화정 말기에 표준화된 암포라 운송 체계의 규모를 보여준다.
두 유적은 고대 지중해의 공급망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는 해저의 ‘기록 보관소’와 같다. 그중에서도 안드로스 난파선은 로마 시대 이전, 여러 생산지와 시장이 얽혀 있던 에게해 교역의 복잡성을 추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