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페루 고고학자들은 페루 북부 해안의 찬찬에서 약 600년 된 치무(Chimú) 장례 플랫폼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거의 훼손되지 않은 이 시설에서는 38명의 유해와 금속 무기, 조개·구리·금으로 만든 유물이 나왔다. 중심 매장실의 한 인물은 주된 엘리트 매장자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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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발견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유물만 따로 남은 것이 아니라, 인물의 배치와 공물, 건축 구조가 상당 부분 함께 보존됐기 때문이다. 약탈되거나 원래 위치를 잃은 유물을 사후에 조합하는 경우와 달리, 치무의 신분 질서와 의례, 집단 매장 방식을 직접 검토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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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발견됐나
장례 플랫폼은 라리베르타드 지역 트루히요 인근의 찬찬 고고학 단지 안, 우츠 안(Utzh An) 성곽 단지의 매립층 아래에서 확인됐다. 우츠 안은 옛 그란 치무 궁전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찬찬은 치무 왕국의 옛 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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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성곽 단지 안에 별도로 조성된 장례 기념물이 있다는 점은 해석의 핵심이다. 일반적인 무덤과 달리, 매장 장소 자체와 함께 나온 공물은 이곳이 치무 상위 계층과 관련된 장례 공간이었다는 고고학자들의 판단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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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m 정사각형 플랫폼과 중심 매장실
보도에 따르면 이 진흙벽돌(아도베) 플랫폼은 한 변이 약 17m인 정사각형이며, 높이는 약 5m다. 공식 설명은 중심 매장실 1곳과 양쪽 매장실 2곳을 언급한다. 일부 보도는 내부 공간을 5개의 방 또는 매장실로 세는데, 공간을 세는 방식의 차이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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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매장실은 폭 약 1.2m, 깊이 약 5m로 짧은 계단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내부에는 벽감이 있었고, 한 사람의 유해와 다수의 조개·금속 유물이 함께 발견됐다. 양쪽 매장실에서는 추가 유해와 금속 무기를 포함한 유물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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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명의 유해와 부장품이 시사하는 점
연구진은 플랫폼 안에서 38명의 유해와 장례용 부장품·의례 물품을 기록했다. 보고된 재료에는 구리, 금, 조개 장식품, 금속 표식물, 무기가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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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적 규모의 시설, 중심 매장, 풍부한 유물의 조합은 엘리트 추모 의례를 가리킨다. 동시에 이 장례 행위가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도 보여준다. 다만 나머지 사람들이 친족이었는지, 수행자·시종이었는지, 혹은 다른 의례적 역할을 맡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들의 관계는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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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특이한 ‘완전 신전’ 매장
한 사람의 유해는 몸을 완전히 편 자세로 놓여 있었다. 이는 현재 보고된 치무 장례 맥락에서는 이례적인 자세다. 고고학자들과 언론은 서로 다른 사회적 지위 또는 의례적 희생 가능성을 거론했지만, 어느 쪽도 입증된 결론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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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자세가 특이하다는 사실만으로 사망 원인이나 희생 여부, 신분을 확정할 수는 없다. 유해 분석과 매장실 퇴적층 안에서 해당 인물이 놓인 정확한 관계를 조사해야 더 단단한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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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무와 잉카가 교차하던 시기의 무덤
약 600년 전이라는 연대는 이 매장이 15세기 중반 잉카가 치무 왕국을 정복하기 직전 또는 그 전환기 무렵에 이뤄졌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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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 플랫폼은 큰 정치적 변동기 전후에 엘리트 장례 관습이 어떻게 이어지고 변화했는지 살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발견만으로 이 무덤에서 특정한 잉카 영향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추가 연대 측정, 유물 연구, 생물고고학 분석을 통해 전환기를 탐구할 수 있는 치무 엘리트 장례 사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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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 상태가 왜 특별한가
찬찬은 수십 년간 조사돼 왔지만, 연구진은 이번 사례를 유난히 드문 비교란 엘리트 매장 맥락으로 평가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플랫폼은 정복과 식민지 시대의 약탈, 이후의 도굴을 거치면서도 수세기 동안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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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덕분에 연구진은 흔히 사라지는 연결고리를 검토할 수 있다. 어떤 물건이 누구와 함께 놓였는지, 각 매장실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매장이 한 번에 이뤄졌는지 또는 여러 단계에 걸쳤는지 등을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이 발견의 가장 큰 연구 가치는 금·구리·무기의 수량이 아니라, 원래의 고고학적 맥락이 보존됐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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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확인해야 할 것
인골, 일부 뼈에서 보고된 붉은 안료, 유물에 대한 추가 조사는 매장자들의 연령, 생물학적 성별, 건강 상태, 식단, 혈연관계, 이동성, 연대, 장례 처리 방식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완전히 편 자세의 매장과 집단 매장에 대한 여러 가설을 검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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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점에서 가장 분명한 결론은 신중하지만 중요하다. 찬찬의 우츠 안 플랫폼은 치무 엘리트가 기념비적 시설과 풍부한 부장품, 집단 매장을 통해 추모됐음을 보여주는 이례적으로 직접적인 증거다. 38명의 정확한 신원과 상호 관계, 서로 다른 매장 방식의 의미는 여전히 고고학 연구가 풀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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