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컴의 실망스러운 가이던스는 반도체 업종 전체를 휩쓰는 파괴력 있는 폭탄으로 작용했다. 이틀간의 손실 규모는 역사적이었다.
브로드컴(AVGO) 은 진원지였다. 실적 발표 전 고점 대비 주가는 약 20% 폭락했고, 전 세계 포트폴리오에서 약 4,500억 달러(약 630조 원)의 가치가 증발했다 . 이날 마이크론과 합쳐 두 회사는 하루 동안에만 약 3,800억 달러(약 532조 원)의 시가총액이 사라지며, 각각 사상 최대 일일 시가총액 감소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
엔비디아(NVDA) 는 처음에는 6월 4일 하락폭이 0.6%에 그치며 상대적으로 견조한 모습을 보였다 . 하지만 고통은 잠시 미뤄졌을 뿐이었다. 전염이 확산되며 6월 5일 더 넓은 범위의 폭락이 이어지자, 엔비디아는 가장 큰 타격을 입은 AI 대장주 중 하나가 되었다
.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SOX) 는 이 모든 참상을 보여주는 최종 지표였다. 6월 5일, 이 지수는 10.3% 폭락하며 2020년 3월 팬데믹 쇼크 이후 최대 일일 하락폭을 기록했다 . 주말 무렵, 미국에 상장된 반도체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총 1조 달러 이상 사라진 상태였다
.
미국 시장의 매도세는 곧바로 전 세계 거래소로 튕겨 나갔고, 아시아 시장이 그 직격탄을 맞았다.
대한민국이 이번 전염의 진원지나 다름없었다. 6월 5일 금요일, 코스피 지수는 5% 이상 폭락하며 8,161.59로 마감했다 . 낙폭이 너무 급격해 프로그램 매매를 일시 중단시켜 변동성을 억제하는 '사이드카'가 발동되기까지 했다
. 기술주 중심의 코스닥 지수도 폭락하여 장중 한때 3개월 만에 처음으로 900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
AI 공급망에 직접 노출된 메모리 반도체 대장주들이 코스피 급락을 이끌었다. 엔비디아에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는 주가가 10% 가까이 폭락했다 . 삼성전자 역시 외국인 투자자들이 반도체 주식을 집중 매도하며 급락했다
. 국내 언론들은 이날을 두고 반도체 주식의 '검은 금요일'이라 명명했다
. 일본 닛케이 지수 또한 1.3% 하락하며 아시아 전역의 하락세를 그대로 따라갔다
.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폭락의 원인을 기초 체력의 붕괴가 아닌, 기대치의 급격한 재조정으로 빠르게 규정했다. "기대치 재조정(expectations reset)"이 이번 사태를 설명하는 지배적인 용어가 되었다.
맥락이 중요하다. 단 100거래일 만에 79.3%라는 경이적인 상승률을 기록한 반도체 섹터는 울프스트리트가 표현한 그대로 "이미 과하게 익은" 상태였고, 이 때문에 '시총 1조 달러 클럽'의 세 종목은 어떤 실망스러운 소식에도 극도로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
시장은 이미 '완벽'이라는 프리미엄을 가격에 책정해 놓은 상태였다. 브로드컴의 AI 매출은 가이던스 기준으로도 전년 대비 200%를 상회하는 성장세를 보였는데, 이는 다른 상황에서는 거의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다 . 하지만 시장은 이미 이보다 훨씬 더 공격적인 성장을 선반영했고, 공식 컨센서스보다 더 높은 '입소문 추정치(whisper number)'를 만들어내 위태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 가이던스가 '엄청남(extraordinary)'이 아닌 그냥 '훌륭함(excellent)' 수준에 그치자, 대규모 차익 실현 사태가 촉발된 것이다
.
Comments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