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합의는 헤즈볼라의 ‘완전한 공격 중단’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이 조건이 충족될 경우, 교착 상태에 빠진 미국-이란 협상의 돌파구가 마련되고, 나아가 전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세계 에너지의 동맥’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봉쇄가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된 것이다 .
DTN의 애널리스트들은 이날 시장이 “중동 분쟁이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기대감에 집중했다”고 분석했다 . 심지어 헤즈볼라가 공식적으로 휴전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기에 미국 달러 가치가 6주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달러화로 거래되는 원자재 가격에 추가적인 하방 압력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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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낙관론에 가장 먼저 찬물을 끼얹은 것은 바로 헤즈볼라 지도자 나임 카셈의 TV 연설이었다. 그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레바논 당국 간의 협상을 “터무니없고(absurd), 굴욕적이며(humiliating), 수치스러운(shameful)” 것이라고 맹비난하며 “점령이 존재하는 한 저항은 계속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
그러나 이 강경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하락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는 투자자들이 ‘외교 프로세스 그 자체’, 즉 ‘대화가 오가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에 더 큰 베팅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시장은 헤즈볼라의 위협이 고조된 긴장을 유지시킬 위험을 인지하면서도, 이것이 ‘제한 없는 추가 매도’로 이어질 만한 자신감을 꺾지는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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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이 모든 반응 배경에는 사실상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최악의 구조적 에너지 공급 리스크가 자리 잡고 있다 . 이란 혁명수비대(IRGC)의 위협으로 초래된 이 봉쇄는 하루 약 1,600만~1,800만 배럴에 달하는 원유 수송량을 시장에서 지워버리며 글로벌 공급망을 마비 상태로 몰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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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시장이 외교적 해결책에 집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장기간 봉쇄가 지속될 경우, 수급 균형을 위해 “무질서하고 경제적으로 파괴적인 수요 절감”이 강제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
이러한 구조적 불안 때문에 이날 유가 하락도 마냥 낙관하기 어렵다. 불과 몇 달 전인 4월, 브렌트유는 팽팽한 긴장 속에 배럴당 138달러까지 치솟았으며, 만약 원유 재고가 여름철 내내 바닥을 드러낸다면 가격이 다시 배럴당 130~140달러까지 재차 테스트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지정학적 리스크에 더해, 세계 경제의 근본적인 둔화 신호가 유가의 상단을 억누르는 강력한 수요 측면의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6월 3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6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8%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2025년의 3.4% 성장률에서 급락한 수치다 . OECD는 이번 성장률 둔화의 주요 원인으로 치솟은 에너지 가격과 중동발 공급망 혼란을 직접적으로 지목했다. 특히, 중동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 경기 침체에 가장 취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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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전망은 ‘수요 파괴’라는 강력한 약세 요인을 시장에 도입한다. 세계 경제가 의미 있는 수준으로 둔화된다면, 호르무즈 해협이 재개방 여부와 관계없이 석유 소비 전망 자체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OPEC조차도 최근 보고서에서 2026년 전 세계 석유 수요 증가 전망치를 하루 약 15만~20만 배럴 하향 조정했다 .
유가를 둘러싼 현재의 상황은 극단적인 강세 요인과 약세 요인이 팽팽하게 맞서는 줄다리기 그 자체다.
현재 시장은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인 ‘조기 평화 정착(Quick Peace)’에 가장 무게를 두고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 우드 매켄지의 분석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이 재개방될 경우 브렌트유 현물 가격은 현재 배럴당 95달러 수준에서 연말에는 80달러까지 곤두박질칠 수 있다 .
그러나 이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해결책에 대한 도박이다. 유가는 목요일 급락 직전까지 3거래일 동안 무려 9%나 급등한 상태였다. 이전의 외교적 희망이 산산이 부서진 직후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헤즈볼라의 거부는 취약한 레바논 휴전에서 실효성 있는 미국-이란 협정까지 가는 길이 여전히 멀고 험난하다는 명백한 신호다. 시장 전략가들은 WTI가 배럴당 97~97.5달러 저항선을 돌파하는 데 실패한 것이, 외교적 기대감이 여전히 랠리의 상단을 제한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
그러나 유가 하락 요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 원유 재고가 우려스러운 속도로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단 하나의 실패한 평화 제안이나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새로운 긴장 고조는 사라졌던 지정학적 위험 프리미엄을 순식간에 되살려, 분석가들이 수개월간 경고해 온 비선형적 가격 폭등을 촉발할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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