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폭락의 가장 결정적인 기폭제는 바로 인공지능이었다. 특히, 앤트로픽(Anthropic)의 클로드(Claude) 출시는 투자 심리에 급격한 변화를 불러왔다. 프랭클린 템플턴(Franklin Templeton)의 분석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에이전트 AI가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소프트웨어 워크플로우 자체를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졌다 . 시장의 내러티브는 "AI가 SaaS를 강화한다"에서 순식간에 "AI가 SaaS를 대체한다" 로 급변했다. 올리버 와이먼(Oliver Wyman)의 투자자 가이드에서도 지적했듯, 에이전트 플러그인들은 다단계 기업 프로세스를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해 보이며, 지난 20년간 소프트웨어 산업의 근간이었던 '좌석당 구독 기반 반복 매출' 모델 자체의 근간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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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충격은 소프트웨어 섹터에 유독 집중되었다. 베인의 보고서는 극명한 괴리 현상을 강조하며, 1분기 소프트웨어 기업 밸류에이션은 약 8% 하락한 반면, 다른 모든 섹터의 하락 폭은 불과 0.3%에 그쳤다고 밝혔다 . 공개 시장의 밸류에이션 멀티플이 빠르게 압축되면서 이 충격은 고스란히 사모 시장의 가격 책정으로 전이되었다. 인수 희망 기업의 가치가 급락하자, PE 운용사(GP)들은 이전의 높은 밸류에이션을 기준으로 대규모 기술 기업 바이아웃을 추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EY의 보고서는 이러한 흐름을 증명한다. 2025년 한 해 동안 글로벌 PE 투자 금액의 약 30%를 차지하던 기술 섹터의 비중이 2026년 1분기에는 10% 수준으로 급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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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시장의 대혼란은 사모 딜 시장을 완전히 얼려버렸다. 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S&P Global Market Intelligence) 데이터에 따르면, 글로벌 PE M&A 딜 규모는 2021년 1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급감했으며, 1분기 전 세계에서 발표된 PE M&A 딜은 총 614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2% 감소했다 . NEPC 분기 사모 시장 보고서는 2026년 1분기가 바이아웃 플랫폼 딜 활동 건수 기준으로 지난 10년간 두 번째로 낮은 분기였다고 밝혔으며, 이보다 더 낮았던 유일한 시기는 팬데믹이 강타한 2020년 1분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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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인의 사모펀드 중간 보고서(Private Equity Midyear Report)에 따르면, 연초만 해도 시장은 관세 리스크를 대부분 털어내며 딜 활동이 증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AI가 촉발한 소프트웨어 '대학살', 사모 크레딧(Private Credit) 시장의 환매 중단 스트레스, 그리고 이란 전쟁 발발과 이에 따른 유가 급등이라는 세 가지 충격파가 연쇄적으로 덮쳤다 . KPMG의 2026년 1분기 PE 펄스 보고서 역시 분기 초만 해도 조심스러운 낙관론이 있었으나, 중동 지역에서 촉발된 갑작스러운 지정학적 분쟁이 이미 취약해진 딜 시장에서 즉각적인 투자 심리 위축을 가져왔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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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충격은 사모펀드 업계에 즉각적이고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6년 4월 올리버 와이먼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제 밸류에이션 멀티플은 해당 기업이 AI에 얼마나 노출되었고, 얼마나 취약한지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 딜 과정에서는 대상 기업의 기술적 해자(경쟁 우위)와 방어력이 한층 더 철저하게 검증되고 있다. 한때는 SaaS의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반복 매출을 가장 편안해하던 대출 기관들도, 이제는 "이 회사의 매출은 AI 시대에도 과연 지속 가능한가?" 라는 어려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 모든 딜 룸의 핵심 질문은 "이 회사가 얼마나 빨리 성장할 수 있는가?"에서 "이 비즈니스 모델은 AI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가?"로 근본적으로 바뀌어 버렸다.
전통적 소프트웨어가 투자자들에게 기피 대상이 되면서, 자본은 AI 혁명의 구조적 수혜자로 인식되는 분야로 공격적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KPMG는 사모펀드 자본이 AI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 인프라, 데이터 센터, 운송 부문으로 점점 더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AI 기술 진화에 위협받는 분야가 아닌, 오히려 AI 구축이 확대될수록 덩달아 성장하는 영역이다 . 이러한 자본의 이동은 EY가 지적한 주요 시장 이상 현상의 핵심 동인이었다. EY의 분석에 따르면, 만약 1분기에 기술 섹터 투자가 예년과 같은 '정상적인' 비중으로만 이뤄졌더라도, 전체 PE 투자 집행액은 전년 동기 대비 오히려 12% 증가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12% 감소였고, 이는 얼마나 많은 자본이 소프트웨어에서 다른 곳으로 이탈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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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와 M&A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대형 바이아웃의 출구 전략이 막히자, 딜 시장은 더 작고 정밀한 규모의 거래로 중심 이동을 하고 있다. 인도 시장은 이런 글로벌 패턴을 잘 보여준다. 그랜트 손튼 인디아(Grant Thornton Bharat)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인도에서는 분기 기준 역대 최고 수준의 거래 건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총 거래 금액은 48%나 감소했는데, 이는 10억 달러(약 1조 4천억 원) 이상의 초대형 거래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해당 분기 10억 달러 이상의 빅딜은 단 2건으로, 총 41억 달러(약 5조 7천억 원)에 그쳤다. 반면 직전 분기에는 7건의 빅딜로 150억 달러(약 21조 원)를 기록했었다 . 이른바 '대 PE 구조조정(Great PE Reset)' 은 불확실한 시대에 더 작고 위험 부담이 적은 베팅으로 이동하는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전통적인 바이아웃 출구 경로가 막히면서 투자 플레이북 자체가 바뀌고 있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 연례 회의인 SuperReturn International의 핵심 의제는 세컨더리 펀드, GP(운용사) 주도의 계속 출자 기구(Continuation Vehicle), 그리고 직접 기업 경영에 개입해 가치를 끌어올리는 '핸즈온(Hands-on)' 전략에 집중되었다 . 단순히 밸류에이션 멀티플 확장만으로 수익을 내던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면서, 운용사들은 자신이 보유한 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만 하는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1분기 충격의 잿더미가 채 가시기도 전인 2026년 6월 8일,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모인 6,000명 이상의 핵심 의사 결정권자들(2,000명 이상의 출자자(LP) 및 3,000명 이상의 운용사(GP) 포함)이 독일 베를린의 인터컨티넨탈 호텔에 모였다. 사모펀드 업계 세계 최대의 축제로 불리는 SuperReturn International이 열린 것이다 . 참석 기관들의 총 운용 자산(AUM)만 해도 무려 50조 달러(약 7경 원) 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이 자리는 결코 성공을 축하하는 분위기일 수 없었다
. 콘퍼런스 의제는 "사모펀드에서의 기술 가치 창출" 및 "자산 운용의 혁명: AI, 기술, 그리고 다음 개척지"와 같은 세션들이 주를 이뤘으며, 딜로이트(Deloitte)가 공식 '기술 가치 창출' 부문 최고 후원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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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와이먼의 파트너들도 이 시장 재편의 전략적 함의를 논하는 패널에 참석하며 현장을 뜨겁게 달궜다 . 이번 콘퍼런스는 'SaaS 종말' 이후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가격, 전략, 그리고 신념 자체를 업계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재조정하는 최초의 대규모 집결지가 되었다. 아직 시장 밖에서 기회를 노리는 막대한 미집행 자금(드라이 파우더)을 생각하면 운용사들이 느끼는 자본 집행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베를린의 모든 미팅룸에 감도는, 누구도 입 밖으로 쉽게 꺼내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일 것이다.
"지금 우리 장부에 남아 반토막 난 이 SaaS 자산들은 한 세대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역대급 바겐세일 찬스인가?"
아니면,
"AI 시대에 근본적으로 붕괴되어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덫에 걸린 좀비 비즈니스 모델의 잔해에 불과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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