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금융 허브 도약은 은행을 끌어모으는 데서 시작된 단일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1965년 독립 이후 수출 중심 산업화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추진하며 세계 시장과 연결되는 경제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국제 금융업도 성장했다.
2
6
10
수출과 외국인 투자로 경제의 방향을 바꾸다
싱가포르는 국내 산업을 수입품으로부터 보호하는 수입대체 전략에서 벗어나 수출 주도형 성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외국인 직접투자도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이런 정책은 산업화를 뒷받침하고 싱가포르 경제를 국제 비즈니스와 한층 긴밀하게 연결했다.
2
6
이 변화는 금융 중심지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 싱가포르는 단순히 외국 은행을 모은 것이 아니라, 세계 시장과 연결된 경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금융업의 기반도 넓혀 갔다.
2
6
1960년대부터 자리 잡은 국제 금융
싱가포르는 1960년대 아시아 달러 시장의 출범과 빠른 성장에 힘입어 국제 금융 중심지로 부상했다. 아시아 달러 시장은 아시아 지역에서 운용되는 역외 달러 자금 시장을 가리킨다. 이후 금융업은 은행을 넘어 자본시장, 재보험, 자산관리와 자산운용 분야로 확대됐다.
10
외국계 은행은 금융 허브가 자리 잡은 뒤에야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싱가포르 통화청(MAS)은 1970년대 초 외국계 은행이 전체 은행 예금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다고 설명한다.
15
금융시장이 커지는 동안 감독 체계도 정비
싱가포르 의회는 1970년 MAS법을 통과시켜 금융 서비스 규제 권한을 마련했고, MAS는 1971년 출범했다. 이후 MAS는 금융 부문을 감독하는 동시에 싱가포르를 국제 금융 중심지로 발전시키는 역할도 맡았다.
14
9
순서를 보면 금융 허브의 형성은 MAS 출범보다 먼저 시작됐다. 국제 은행업이 성장하는 가운데 새 감독기관이 등장했고, 금융 규제와 금융 중심지 육성을 한층 일관된 제도적 틀 안에서 추진하게 됐다.
10
14
9
빠른 변화였지만, 하룻밤 사이의 도약은 아니었다
MAS의 연설 자료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명목 1인당 GDP는 1965년 약 500달러에서 1990년 약 1만 3,000달러로 늘었다. 다만 이는 물가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명목 수치이므로, 생활수준이 실제로 얼마나 향상됐는지를 그대로 나타내는 지표는 아니다.
2
싱가포르가 국제 금융 중심지로 성장하기 시작한 시점은 1960년대지만, 금융 서비스의 다각화와 고소득 경제로의 전환은 그 뒤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됐다. ‘몇십 년 만에’라는 표현은 변화의 속도를 보여 주지만, 금융 허브의 초기 형성과 더 넓은 경제 발전을 하나의 짧은 사건처럼 뭉뚱그리지는 말아야 한다.
10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