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매도세를 부채질한 결정적 재료는 두 가지다. 첫째, 중국 국영 기업이 네덜란드 ASML의 독점 기술로 여겨졌던 ‘이머전 DUV(심자외선) 리소그래피 장비’를 양산하기 시작했다는 보도다. 이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AI 반도체 시장의 경쟁 심화와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를 폭발시켰다 .
둘째, AI 투자의 ‘순환 자금 조달(circular funding)’ 구조에 대한 의구심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엔비디아가 오픈AI(OpenAI)의 대규모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와 관련해 약 2500억 달러(약 350조 원) 규모의 자금 보증을 제공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 AI 칩을 파는 엔비디아가 그 칩으로 데이터센터를 짓는 오픈AI의 빚을 보증해준다는 이 구조는 ‘돈을 빌려서 AI에 투자하고, 그 투자로 인한 수익이 불확실하다’는 시장의 불안을 정확히 찔렀다.
같은 날,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3분기 글로벌 리스크 전망 보고서(Global Risk Outlook)를 통해 AI 시장 조정 가능성을 글로벌 신용 위험으로 공식 경고했다 . 주요 신용평가사가 이처럼 직접적이고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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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는 S&P 500 지수의 밸류에이션(가치 평가)이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당시 수준에 근접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올해 상반기 미국 회사채 발행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26% 급증했으며, 이 중 아마존, 알파벳(구글), 엔비디아, 메타, 오라클, 스페이스X 등 6개 AI 관련 기업이 발행한 투자적격 등급 회사채만 1820억 달러(약 256조 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
보고서는 AI의 중장기적 잠재력은 ‘매우 불확실(highly uncertain)’하다며, ‘수익 불확실성과 자본시장 및 경제가 AI에 얼마나 깊이 얽혀 있는지’가 치명적 취약점이라고 분석했다 . 피치는 현재 단기 신용 환경을 위협하는 두 가지 위험으로 ‘AI 관련 시장 조정에 대한 취약성’과 ‘미-이란 갈등’을 꼽았다. 또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과 엘니뇨가 신용등급이 낮은 국가들에 미치는 압력도 주요 리스크로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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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이날 미국 증시는 기술주 폭락에도 불구하고 전체 시장은 혼조세를 보였다. S&P500 지수는 0.02%로 거의 보합 마감했고,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0.51% 상승했다 . 이는 국제 유가 하락 덕분에 에너지 비용 부담이 줄어든 경기 방어주와 전통 제조업종이 선방했기 때문이다. 즉, AI 거품에 대한 우려가 증시 전체의 위기라기보다는 ‘AI 특화 버블’에 국한된 조정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시장 분석가들은 “AI 투자 규모가 너무 커져서, 이 분야의 조정이 경제 전체와 자본시장에 유의미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 엔비디아의 오픈AI 보증설과 중국 반도체 굴기, 그리고 이를 겨냥한 피치의 경고는 사실상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진다. AI라는 ‘미래 먹거리’를 차지하기 위한 기업들의 무리한 차입 경쟁이 되레 ‘거품’으로 작용해 신용 시장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드러낸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