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기술 방향에 있었습니다. 엔비디아는 당시 마이크로소프트(MS)의 DirectX가 표준으로 밀던 삼각형 기반 렌더링이 아니라 사각형(Quadrilateral) 기반 아키텍처에 베팅했습니다. 시장의 선택은 삼각형이었고, 엔비디아의 선택은 빗나갔습니다.
세가는 차세대 콘솔(훗날 드림캐스트가 되는)에 탑재할 그래픽 프로세서 개발을 엔비디아에 의뢰했습니다. 신생 스타트업에게는 엄청난 기회였지만, 기술은 약속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당시 33세였던 엔비디아의 창업자 겸 CEO 젠슨 황(Jensen Huang)은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세가에 프로젝트 실패를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황은 자신의 회고에서 당시 세가에 "콘솔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고, 로드맵도 망가졌으며, 다른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회사를 죽일 수도 있는 가차 없는 정직함이었습니다.
세가는 계약을 취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가의 이리마지리 쇼이치로(Shoichiro Irimajiri) 사장은 예상치 못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는 계약 잔금 500만 달러를 지급하는 데 동의했고, 이를 사실상 엔비디아에 대한 투자로 전환한 것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후 이리마지리를 '엔비디아를 구한 84세 노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리마지리는 이전에 젠슨 황을 만난 적이 있고 그에게 호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여러 소식통은 이 자금이 없었다면 엔비디아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젠슨 황 스스로도 "세가의 아량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엔비디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자금은 엔비디아에 방향을 전환할 시간을 벌어줬습니다. 엔비디아는 사각형 기반 아키텍처를 폐기하고 그래픽 기술을 삼각형 기반으로 완전히 재구축했습니다. 그리고 1997년, RIVA 128을 출시하며 대성공을 거둡니다. 2년 후에는 세계 최초의 진정한 GPU(그래픽처리장치)로 평가받는 지포스 256(GeForce 256)을 내놓았고, 1999년에는 기업공개(IPO)에 성공합니다.
세가는 IPO 직후 엔비디아 주식을 매각했습니다. 당시 엔비디아의 기업 가치는 약 3억 달러(약 3,900억 원)였습니다. 젠슨 황은 농담 섞인 말투로 "세가가 그 주식을 계속 보유했다면 결국 1조 달러(약 1,300조 원) 이상의 가치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세가의 구원은 종종 신뢰, 청렴, 그리고 장기적인 안목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인용됩니다. 이리마지리 사장은 계약상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인정한 스타트업을 지원하기로 선택했습니다. 반대로 젠슨 황의 솔직함 역시 구명줄을 확보하는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실패를 숨기려 하기보다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고백한 용기가, 오히려 신뢰를 얻은 셈입니다.
이 이야기는 월스트리트저널, 톰스 하드웨어(Tom's Hardware)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잘 기록되어 있으며, 기술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선의의 행동'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한편, 2026년 6월 젠슨 황은 대만과 한국을 방문했지만 일본은 방문 일정에 포함시키지 않아 도쿄 IT 업계에 안도감과 함께 위기감을 안겼습니다. 2026년 7월 도쿄에서 젠슨 황이 직접 연설하거나 엔비디아-세가의 역사적 파트너십을 기념하는 팬 이벤트가 아키하바라에서 열릴 것이라는 공식 발표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세가는 로스앤젤레스의 애니메 엑스포(Anime Expo) 부스 운영이나 애니메이트(animate)와의 글로벌 카페 콜라보레이션 등 다른 이벤트를 진행 중이지만, 아키하바라에서의 엔비디아-세가 합동 팬 이벤트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기술 방향에 있었습니다. 엔비디아는 당시 마이크로소프트(MS)의 DirectX가 표준으로 밀던 삼각형 기반 렌더링이 아니라 사각형(Quadrilateral) 기반 아키텍처에 베팅했습니다. 시장의 선택은 삼각형이었고, 엔비디아의 선택은 빗나갔습니다.
세가는 차세대 콘솔(훗날 드림캐스트가 되는)에 탑재할 그래픽 프로세서 개발을 엔비디아에 의뢰했습니다. 신생 스타트업에게는 엄청난 기회였지만, 기술은 약속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당시 33세였던 엔비디아의 창업자 겸 CEO 젠슨 황(Jensen Huang)은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세가에 프로젝트 실패를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황은 자신의 회고에서 당시 세가에 "콘솔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고, 로드맵도 망가졌으며, 다른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회사를 죽일 수도 있는 가차 없는 정직함이었습니다.
세가는 계약을 취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가의 이리마지리 쇼이치로(Shoichiro Irimajiri) 사장은 예상치 못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는 계약 잔금 500만 달러를 지급하는 데 동의했고, 이를 사실상 엔비디아에 대한 투자로 전환한 것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후 이리마지리를 '엔비디아를 구한 84세 노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리마지리는 이전에 젠슨 황을 만난 적이 있고 그에게 호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여러 소식통은 이 자금이 없었다면 엔비디아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젠슨 황 스스로도 "세가의 아량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엔비디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자금은 엔비디아에 방향을 전환할 시간을 벌어줬습니다. 엔비디아는 사각형 기반 아키텍처를 폐기하고 그래픽 기술을 삼각형 기반으로 완전히 재구축했습니다. 그리고 1997년, RIVA 128을 출시하며 대성공을 거둡니다. 2년 후에는 세계 최초의 진정한 GPU(그래픽처리장치)로 평가받는 지포스 256(GeForce 256)을 내놓았고, 1999년에는 기업공개(IPO)에 성공합니다.
세가는 IPO 직후 엔비디아 주식을 매각했습니다. 당시 엔비디아의 기업 가치는 약 3억 달러(약 3,900억 원)였습니다. 젠슨 황은 농담 섞인 말투로 "세가가 그 주식을 계속 보유했다면 결국 1조 달러(약 1,300조 원) 이상의 가치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세가의 구원은 종종 신뢰, 청렴, 그리고 장기적인 안목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인용됩니다. 이리마지리 사장은 계약상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인정한 스타트업을 지원하기로 선택했습니다. 반대로 젠슨 황의 솔직함 역시 구명줄을 확보하는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실패를 숨기려 하기보다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고백한 용기가, 오히려 신뢰를 얻은 셈입니다.
이 이야기는 월스트리트저널, 톰스 하드웨어(Tom's Hardware)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잘 기록되어 있으며, 기술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선의의 행동'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한편, 2026년 6월 젠슨 황은 대만과 한국을 방문했지만 일본은 방문 일정에 포함시키지 않아 도쿄 IT 업계에 안도감과 함께 위기감을 안겼습니다. 2026년 7월 도쿄에서 젠슨 황이 직접 연설하거나 엔비디아-세가의 역사적 파트너십을 기념하는 팬 이벤트가 아키하바라에서 열릴 것이라는 공식 발표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세가는 로스앤젤레스의 애니메 엑스포(Anime Expo) 부스 운영이나 애니메이트(animate)와의 글로벌 카페 콜라보레이션 등 다른 이벤트를 진행 중이지만, 아키하바라에서의 엔비디아-세가 합동 팬 이벤트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