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베스트로, 에보닉, 바커 케미, 보에스트알피네, 티센크루프 철강 부문 등을 포함한 유럽 기업 100여 곳이 EU의 배출권거래제(ETS) 개편안을 손봐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기업들이 우려하는 핵심은 탄소 배출 비용이 오르는 속도와 산업 현장이 실제로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여건을 갖추는 속도가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고에너지 소비 업종의 비용이 먼저 뛰면 투자가 미뤄지거나 생산시설이 문을 닫고, 생산이 EU 밖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6
7
기업들이 요구하는 것은 ‘감축’보다 ‘감축할 조건’
제조업체들은 높은 에너지 가격과 글로벌 경쟁을 함께 문제로 꼽습니다. 탄소 비용만 높이는 방식으로는 전력·연료 비용 부담을 낮추거나 저탄소 생산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기반을 마련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산업계가 공정한 배출권 배분 기준과 경쟁력 있는 저탄소 에너지, 전력망 연결 및 이산화탄소 운송·저장 인프라를 함께 요구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7
12
EU 배출권거래제는 기업이 배출한 온실가스에 배출권을 제출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무상 배출권은 탄소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로 생산이 옮겨가는 ‘탄소 누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산업 시설에 일부 배정됩니다. 산업계는 이 제도를 투자 보조금이라기보다, EU 안에서 생산하는 기업이 부담하는 탄소 비용의 불균형을 완화하는 장치로 봅니다.
무상 배출권은 연장되지만, 투자 조건도 붙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7월 제안은 무상 배출권을 일부 업종에 2038년까지, 다른 업종에는 2040년까지 이어가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동시에 2031년부터는 기업이 EU 내 배출 감축 투자 계획을 세워야 무상 배출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16 즉, 배출권을 더 오래 배정한다고 해서 기업이 받는 물량이나 조건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산업계는 무상 배출권의 목적이 탄소 누출을 막는 데 있다며, 이를 기업에 대한 투자 보조금처럼 취급해 배출권 가치 전액을 재투자하도록 요구하는 데 반대합니다. 반면 집행위는 무상 배정을 유지하면서 일부를 탈탄소 투자와 연계해 산업 보호와 감축 유인을 함께 마련하려는 입장입니다.
또 다른 쟁점은 ‘부문 간 보정계수’입니다. 기업들의 무상 배출권 신청량이 전체 배정 가능 물량을 넘으면 이 계수에 따라 각 시설의 배정량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17 산업계가 배분 기준을 다시 살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10월 14일 업계 서한은 이 계수로 2040년까지 무상 배출권이 최대 70% 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는 업계가 제시한 전망이며, 확정된 감축 결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노조는 노동자 보호를 조건으로 요구
산업계와 노동조합의 요구는 같지 않습니다. 유럽 산업노조연맹(IndustriAll Europe)은 집행위 개편안이 일부 업종의 무상 배출권을 연장하지만, 노동자에게는 충분한 보호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노조는 노동자 보장 없이 산업계에 공적 지원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11
따라서 논쟁은 기업에 무조건 무상 배출권을 줄지, 아니면 배출권을 받는 조건으로 감축 투자를 요구할지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원으로 산업 경쟁력을 지키면서 고용과 노동자 보호를 어떻게 보장할지도 쟁점입니다. IndustriAll이 언급한 최근 5년간 무상 배출권의 총액과 구체적인 구속력 있는 보호 조치의 범위는 확인 가능한 자료만으로 독립적으로 검증하기 어렵습니다.
별도 쟁점인 시장안정화예비분
10월 20일 유럽의회와 EU 이사회 협상단은 시장안정화예비분(MSR)에 쌓인 배출권을 일정 기준 이상이면 무효화하는 장치를 유지하되, 무효화 기준을 4억 개에서 7억 개로 높이는 잠정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이는 집행위가 앞서 제안한 무효화 장치 폐지와는 다른 방향입니다.
다만 MSR은 시장에 남는 배출권을 관리하는 장치입니다. 개별 산업시설의 무상 배출권 배분 기준이나 기업의 투자 의무를 직접 정하지 않으므로, 이번 산업계의 핵심 요구를 해결하는 합의는 아닙니다. 잠정 합의는 양 기관의 공식 확인을 거쳐야 하며, 제공된 자료만으로는 12월 유럽의회 표결 일정도 독립적으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