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건의 판단은 유가가 더 이상 통상적인 수요·공급 전망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는 경고에 가깝다. 시장은 이제 ‘얼마나 많은 원유가 생산되는가’뿐 아니라 전쟁이 어떤 조건에서 끝날지, 주요 항로와 시설이 안전하게 정상화될지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6개월 이상 이어진 이란 전쟁의 종결 경로가 갈수록 예측하기 어렵다는 JP모건의 진단은 바로 이 불확실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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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레드라인’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바뀌었다
전쟁 이전에는 주요 산유국의 생산·수출 기반이나 핵심 해상 수송로가 장기간 흔들리면 정치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갈등이 이어지는 동안 협상 타결이나 에너지 항로의 안정적 재개가 보장되지 않았다.
IEA는 호르무즈 해협 차질과 중동 내 재충돌이 공급을 끌어내려 세계 석유시장의 부족 상태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5 따라서 유가가 전쟁 전 수준으로 빠르고 안정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가정은 더 이상 기본 전망으로 삼기 어렵다.
공급 감소와 재고 축소가 시장의 완충력을 낮춘다
IEA의 9월 전망에 따르면 2026년 세계 석유 공급은 하루 평균 1억70만 배럴로, 2025년보다 하루 570만 배럴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걸프 지역 공급이 완전히 회복되는 시점도 2027년으로 미뤄졌다. 8월에는 세계 재고도 감소해, 추가 공급 차질을 흡수할 시장의 여유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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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단순히 ‘위험 프리미엄’이 붙는 상황과 다르다. 실제 원유 흐름, 정제시설 가동, 선박 운항과 보험이 동시에 영향을 받으면 원유가 있다고 해도 필요한 지역과 시점에 경유·항공유 같은 제품을 공급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사우디 우회 수송망과 해상 요충지가 변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 송유관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해 원유를 이동시키는 데 중요한 기반 시설이다. 이 경로가 공격 또는 위협에 노출될 경우, 해협 문제는 단순한 해상 운송 차질을 넘어 생산·수출 제약으로 번질 수 있다. JP모건이 전쟁의 종결 조건을 하나의 기준 시나리오로 모델링하기 어렵다고 보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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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 입구의 바브엘만데브 해협 주변 긴장 역시 우회 항로와 운송 지연을 늘릴 수 있다. 여기에 러시아 정유시설 타격, 리비아의 수출 차질 등이 겹치면 시장은 원유 물량뿐 아니라 정제능력, 원유 종류, 선박 항로 사이의 대체 가능성까지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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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충격은 주유소를 넘어선다
원유와 특히 경유 가격은 화물 운송, 식품 유통, 제조업, 난방 및 서비스 비용에 폭넓게 반영된다. 따라서 에너지 가격 상승은 가계의 연료비 부담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비용과 소비자물가를 함께 끌어올릴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임금과 상품·서비스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르는 ‘2차 파급효과’가 나타나면, 경제성장은 약해지는 반면 물가 압력은 남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커진다. 중앙은행이 가장 대응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영란은행에는 금리 인하 지연, 나아가 인상 가능성까지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기준금리를 3.75%로 유지해 왔다. 다만 이란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충격이 물가에 지속적으로 반영될 경우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신호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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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회의에서는 통화정책위원 3명이 4%로의 인상을 지지했고, 영란은행은 전쟁이 물가에 미칠 영향을 더 분명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4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에서 오래 머무를 경우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앤드루 베일리 총재의 설명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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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만으로 유가가 급락한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
정치권의 조기 종전 전망이나 휴전 발표만으로 시장 불확실성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유가가 안정되려면 다음과 같은 변화가 지속적으로 확인돼야 한다.
- 주요 해상 수송로의 안전한 운항과 보험 정상화
- 송유관·항만·정제시설의 복구 및 안정적 가동
- 걸프 지역 생산과 수출의 회복
- 재고의 재축적
- 친이란 무장세력 등을 통한 대리 공격의 중단
IEA가 걸프 지역 공급의 완전한 정상화 시점을 2027년으로 미룬 것은, 이런 운영상의 조건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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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JP모건의 인정이 말해 주는 것은 유가 전망의 어려움 자체보다 더 큰 문제다. 전쟁의 출구 전략이 불분명한 한, 시장은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공급 회복의 증거를 요구할 것이다. 그때까지 세계 경제는 높은 에너지 변동성, 성장 둔화 위험, 그리고 완화가 아닌 긴축을 고민해야 하는 중앙은행이라는 부담을 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