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크렘린궁이 말한 ‘유가 충격’에는 서로 연결돼 있지만 성격이 다른 두 문제가 겹쳐 있다. 하나는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러시아 정유 능력이 줄어든 데 따른 국내 연료난이고, 다른 하나는 걸프 지역의 생산·수출·해상운송을 흔드는 안보 위기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국제 에너지시장 전반의 혼란은 주로 걸프 지역 분쟁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디젤 생산 시설 공격을 멈추라고 촉구한 데 대해서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1
페스코프의 진단: “걸프 불안이 국제 시장에서 물량을 빼내고 있다”
페스코프는 걸프 지역의 불안정으로 상당한 원유 물량이 국제 시장에서 이탈하고 있으며, 이것이 시장 여건을 급속히 악화시키고 세계 경제에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1
6
이는 러시아의 국내 연료 문제와 글로벌 원유시장 충격을 구분하려는 설명이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석유 인프라 공격은 러시아 내 연료 생산 감소와 부족을 초래했지만, 페스코프는 국제 시장의 더 큰 혼란은 걸프 지역의 불안 때문이라고 봤다.
1
3
러시아가 석유제품 수출을 제한한 이유
러시아의 수출 제한은 정유시설 피격으로 정제 능력이 떨어진 뒤 자국 내 디젤 공급을 지키기 위한 조치였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 조치는 디젤 시장의 압박을 키웠고, 러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연료 부족과 배급 현상도 나타났다.
2
3
트럼프 대통령은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러시아 디젤 시설을 겨냥한 공격을 중단하라고 공개 촉구했다. 그는 이 공격들이 세계에 영향을 주는 디젤 부족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페스코프는 러시아가 ‘민간 경제 인프라’로 규정한 시설에 대한 공격 중단 요구는 환영할 만하다고 말했다.
1
4
다만 크렘린궁은 우크라이나의 경제 인프라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상호 자제 약속을 하지는 않았다.
15
사우디 동서 송유관 폐쇄가 중요한 이유
사우디아라비아는 리야드와 메디나 지역에서 발생한 여러 차례의 드론 공격 뒤 동서 원유 송유관을 일시 폐쇄했다. 사우디 당국은 드론이 이라크에서 날아왔다고 밝혔지만, 누가 공격을 실행했는지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약 1,200km 길이의 이 송유관은 사우디 동부 산유지대의 원유를 홍해 연안 얀부로 운송한다.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차질을 빚을 때 유조선이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도 수출 시장으로 원유를 보낼 수 있는 핵심 우회로라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가 크다.
사우디는 이번 폐쇄를 예방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확실히 확인된 사실은 송유관이 일시 중단됐다는 점과 이 노선이 호르무즈 우회로라는 점이다. 복구 기간과 실제 공급량에 미칠 최종 영향은 아직 불확실하다. 복구에 최장 5~6주가 걸릴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고, 더 이른 재가동을 예상하는 견해도 나왔다.
페스코프는 이 송유관 차질만으로도 세계 공급량의 4% 이상이 시장에서 빠졌다고 주장했다. 이는 크렘린궁 대변인의 평가이며, 보다 확실히 확인된 사실은 송유관의 일시 폐쇄와 호르무즈 해협 우회 기능이다.
5
호르무즈·홍해까지 겹친 ‘경로 충격’
문제는 송유관 하나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8월 걸프 국가들의 석유 수출량이 하루 약 1,300만 배럴로, 전쟁 이전 수준의 거의 절반이었다고 추산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경로의 물량 증가와 미군 호위가 원유 수출 감소 폭을 일부 줄였지만, 석유제품과 LPG 수출은 여전히 크게 낮았고 호르무즈 통항도 심각하게 제약됐다.
홍해 남단의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도 공격과 치안 불안이 이어져 선박 운항 위험이 커졌다. IEA는 호르무즈 해협 폐쇄, 바브엘만데브 공격, 이란 수출 감소 등을 세계 석유 공급 부족의 요인으로 꼽았다.
18
이 세 가지 차질이 동시에 발생하면 시장의 대응 여지는 줄어든다.
- 호르무즈 해협 제약은 걸프산 원유의 주된 해상 수출 통로를 압박한다.
- 동서 송유관 중단은 사우디의 핵심 육상 우회 수출 능력을 약화한다.
- 바브엘만데브 불안은 홍해를 거쳐 수에즈 운하와 유럽 시장으로 향하는 선박의 위험을 높인다.
따라서 영향은 단순히 판매 가능한 원유 물량 감소에만 그치지 않는다. 신뢰할 수 있는 운송 경로가 줄고, 보험료와 운임이 오르며, 다른 경로의 차질을 피할 수 있는 생산자·구매자의 선택지도 좁아진다.
원유와 초대형 유조선 운임이 함께 뛰었다
선박 공격이 이어지면서 공급 차질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고, 유가는 급등했다. 브렌트유는 9월 9일 배럴당 101.21달러로 마감한 뒤, 9월 10일에는 6.34% 오른 107.63달러로 마감했다. 장중 고점은 108달러를 웃돌았다.
해상운임도 치솟았다. 로이터가 인용한 발틱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오만만에서 중국으로 원유를 실어 나르는 VLCC(초대형 원유운반선) 운임은 Worldscale 450 안팎, 배럴당 약 11.50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2026년 초 해당 운임 지표가 도입된 이후 최고 수준으로 보도됐다.
원유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운임까지 상승하면 수입국의 실제 조달 비용은 더 커질 수 있다. 특히 우회 항로가 길어지거나 유조선이 더 높은 보안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경우 그 부담은 확대된다.
IEA “정상적인 걸프 공급 회복은 2027년 이전 어려울 수 있어”
IEA는 2026년 세계 석유 공급이 하루 570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전 전망보다 더 큰 감소 폭이며, 정상적인 걸프 공급의 완전한 회복은 2027년 이전에는 어려울 수 있다고 봤다.
17
이는 이번 사태가 단기적인 가격 급등인지, 지속적인 공급 문제인지 가르는 핵심 대목이다. 안정적 회복을 위해서는 걸프와 홍해 항로의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운항이 회복돼야 하고, 차질을 빚은 생산·수출 인프라도 정상화돼야 한다.
결국 페스코프의 발언은 전체 그림의 한쪽을 보여준다. 걸프 위기는 글로벌 원유시장 충격의 중심 요인이지만, 러시아의 석유제품 수출 제한은 자국 정유 체계 손상에 대응해 국내 공급을 방어하려는 조치다. 두 사안 모두 디젤 수급을 조이지만,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서로 다르다.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