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은행들이 다시 재정정책의 표적이 되고 있다. 금리가 높아지면서 예대마진과 순이자수익이 개선돼 은행 수익성이 강해졌고, 재정 적자를 메워야 하는 정부들에는 광범위한 증세나 지출 삭감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으로 눈에 띄는 세원으로 부상했다. 영국·프랑스·포르투갈·스웨덴·이탈리아에서 은행 이익 과세 논의가 강해진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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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논리는 단순하다. 가계와 기업은 높은 대출금리 부담을 겪었는데, 은행은 같은 금리 환경에서 큰 이익을 냈으니 공공재정에 더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은행권은 추가 부담이 대출 여력과 투자, 금융 중심지로서의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결국 쟁점은 ‘얼마를 걷을 수 있나’만이 아니라, 세금이 얼마나 명확하고 한시적이며 예측 가능한가에 있다.
이탈리아의 연 5%안: 확정된 세금이 아니라 당의 제안
이탈리아 연립정부의 리그당은 2027년 예산 편성 과정에서 국내 10대 은행의 이익에 연 5%를 3년간 부과하는 부담금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목적은 공공재정 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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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당은 이 조치로 연 20억~30억 유로를 마련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가족과 기업 지원, 안보 강화 등에 쓰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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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숫자를 확정 세수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아직 법안 초안이 공개되지 않았고, 정확한 과세표준과 대상 범위, 다른 세금과의 상계·공제 가능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3년 총세수를 신뢰성 있게 계산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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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안은 은행 전체에 넓게 적용되는 안정성 부담금이 아니라, 대형 10개 은행의 이익을 겨냥한 방식이다. 이탈리아는 2023년에도 고금리 국면에서 2021년 기준을 초과한 순이자수익에 대해 일회성 40% 세금을 도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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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탈리아 정부는 이미 은행과 보험사를 재정 조달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2024년 정부는 보건의료 서비스와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금융 부문에서 35억 유로를 마련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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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은행 과세는 세율보다 ‘무엇에 매기느냐’가 다르다
유럽에는 하나의 은행세 모델이 없다. 같은 세율처럼 보여도 과세 대상이 이익인지, 매출인지, 부채인지에 따라 은행과 소비자, 투자자에게 미치는 효과는 크게 달라진다.
- 이익 기반 횡재세: 이탈리아의 제안은 대형 은행 이익에 5%를 부과하는 구상이다. 스페인은 2023~2025년 은행 순매출에 4.8%포인트의 할증세를 적용했고, 정부는 이를 상설화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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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채 기반 안정성 부담금: 포르투갈은 2011년부터 자기자본과 후순위채를 제외한 총부채를 기준으로 은행 부담금을 부과하고, 연대부담금도 적용한다. 스웨덴 역시 자기자본과 예금보험 대상 예금을 제외한 부채를 기준으로 부담금을 매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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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 세금 위에 추가 과세를 검토하는 영국: 영국 은행은 법인세 25% 외에, 그룹 공제 한도 1억 파운드를 넘는 관련 이익에 대한 3% 은행 할증세와 은행부담금을 이미 낸다. 새 횡재세가 도입되면 기존 세목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 부담이 된다.
- 금융거래세 방식의 프랑스: 프랑스는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사 주식 매입과 일부 초단타 거래에 세금을 부과한다. 이는 은행 이익 자체를 직접 과세하는 제도와는 다르다.
부채 기반 부담금은 은행 이익이 줄어도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이익세는 실적과 더 직접적으로 연동된다. 매출 기반 세금은 대손비용 증가나 마진 축소로 순이익이 감소해도 부담이 남을 수 있다. 그래서 투자자는 ‘5%’라는 숫자 하나보다 과세표준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세수는 얼마나 가능한가
이탈리아 5%안에 대해 현재 가장 구체적으로 제시된 수치는 연 20억30억 유로다. 하지만 설계가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이를 3년간 단순 합산해 60억90억 유로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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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국가 사례도 설계에 따라 차이가 크다.
-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은행 순이자수익에 대한 한시세로 약 126억 크로나, 약 13억 달러를 조달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씨티는 이 부담금이 스웨덴 은행들의 2027년 세전이익의 최대 9%에 이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스페인의 2022년 횡재세 계획은 은행에서 2년간 30억 유로를 조달하도록 설계됐다. 이후 제도는 일정 기준을 넘는 국내 은행 매출에 4.8% 할증세를 적용하는 형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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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전체의 예상 세수를 하나의 숫자로 묶는 것은 오해를 부를 수 있다. 국가별로 법안 단계와 적용 기간, 과세 기준이 다르고, 상당수 조치는 아직 정치적 논쟁이나 제안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충돌: ‘공정한 분담’ 대 ‘대출비용 전가’
찬성론은 고금리로 큰 수익을 낸 은행이 사회적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둔다. 이탈리아 리그당은 은행 부담금을 가계·기업 지원과 안보에 쓰겠다고 했고, 잔카를로 조르제티 경제장관은 은행 부문에 경제적 지대와 낮은 경쟁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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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론은 은행이 세금 부담을 대출금리와 수수료에 전가하거나, 투자와 자본 유입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든다. 스웨덴에서는 야권의 한시 은행세가 가계 주택담보대출 비용을 올릴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영국 금융업계도 추가 과세가 대출, 투자, 금융허브 경쟁력을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프랑스에서는 이 논의가 더 큰 예산 갈등의 일부다. 조르당 바르델라 국민연합 대표는 가계와 기업에 대한 증세에 반대하겠다고 밝혀, 큰 재정 적자 속에서도 새 세금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만들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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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가 봐야 할 것은 세율이 아니라 정책의 예측 가능성
투자자에게 한시 부담금의 직접 비용은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정부가 이를 일회성 위기 대응으로 끝낼지, 반복 연장할지, 정치적 압력에 따라 설계를 바꿀지가 더 큰 변수다.
이탈리아의 2023년 경험은 정책 명확성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당시 일회성 40% 은행세 발표 뒤 시장은 급락했고, 정부는 세금 상한을 은행 자산의 0.1%로 제한한다고 서둘러 설명했다. 재무부의 예상 세수도 30억 유로 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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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프 레이팅스는 현재 계획된 이탈리아 부담금이 은행들의 신용 프로필을 크게 약화할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다만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고 은행권 인수합병을 촉진할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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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유럽 은행의 높은 이익은 정부에 매력적인 세원이지만, 불분명한 과세 정책은 곧바로 실적 전망과 기업가치의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투자자에게 중요한 질문은 ‘세율이 몇 %인가’보다 언제까지 적용되는지, 무엇을 과세하는지, 기준과 공제 규정이 명확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