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지정은 단순히 미국 내 법적 지위를 바꾼 조치가 아니었다. 결제, 은행, 도메인 등록 같은 국경을 넘는 디지털·금융 인프라 사업자들이 제재 위험을 피하려 움직이게 만드는 즉각적인 컴플라이언스 신호로 작용했다. 그 결과, 기술 인프라 상당 부분이 유럽에서 운영됐더라도 Autistici/Inventati(A/I)가 서비스를 계속 제공하고 이용자를 보호하는 일은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것이 핵심이다.
A/I는 결국 약 1만6,000개 메일함, 1,500개 웹사이트, 5,500개 메일링리스트, 1만 개 블로그에 영향을 주는 서비스 종료를 선택했다.
미국의 지정이 의미한 것
미 국무부와 재무부는 8월 26일 이탈리아 기반 A/I를 ‘특별지정 글로벌 테러리스트(SDGT)’로 지정했다. 미국 정부는 A/I가 폭력적 안티파 세포와 기타 극좌 무장 세력에 디지털 아키텍처·도구·서비스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 정부의 주장이지, 여기서 확인되는 사법적 판단은 아니다. A/I는 이 같은 규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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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에 따라 미국 관할에 속하는 해당 단체의 재산과 재산상 이익은 동결되며, 미국인은 원칙적으로 이 단체와 거래할 수 없다. 미 국무부는 특정 거래나 활동에 관여한 금융기관 및 기타 주체도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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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은행·도메인에서 일어난 연쇄 효과
보도된 경과에 따르면 페이팔은 A/I의 기부 계정을 동결했고, 이탈리아의 윤리은행 방카 에티카는 계좌를 폐쇄했으며, .org 도메인은 등록기관 단계에서 정지됐다.
이 가운데 도메인 정지는 특히 큰 타격이다. 웹·메일 서버가 실제로 유럽에 있더라도, 등록기관 단계에서 도메인이 멈추면 이용자는 해당 주소로 서비스를 찾기 어렵다. 즉 서버가 물리적으로 살아 있어도 대외 접점이 끊길 수 있다.
기부금 수령, 은행 업무, 공개 도메인이라는 세 축이 동시에 흔들리면 서비스 운영과 이용자 지원은 물론, 운영자와 협력 사업자의 법적·금융상 위험 관리도 어려워진다. A/I가 폐쇄를 단순한 기술 장애가 아니라 이용자와 관계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본 이유다.
유럽의 독립 인터넷 인프라에 남긴 쟁점
EDRi는 이 사안을 선례로 봤다. 미국의 일방적 지정이 유럽 기반 비영리 단체의 결제·은행·도메인 접근 가능 여부를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우려다.
그 시선에서 보면 결제대행사, 은행, 도메인 등록기관, 기타 인프라 제공자는 단순한 민간 사업자가 아니다. 이들은 미국 제재 정책이 유럽에서 사실상 관철되는 ‘관문’이 될 수 있다. EDRi는 이를 독립적 인터넷 인프라와 기본권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하며, 프라이버시 서비스·활동가 지원 서비스·독립 호스팅 사업 전반에 위축 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EU 차단법은 해법이 될 수 있나
EU의 ‘차단법’(Council Regulation (EC) No 2271/96)은 특정 제3국의 역외 제재가 EU 개인·단체·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막기 위해 마련됐다. 부속서에 열거된 역외 법률에 대해 EU 사업자가 원칙적으로 따르는 것을 금지하고, 그에 근거한 비EU 법원 판결이나 행정결정의 EU 내 효력을 제한하며, 피해 회복을 위한 소송 경로도 제공하는 것이 제도의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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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EDRi와 지지 단체들이 EU 기관에 요구한 것은, 유럽 서비스 제공자들이 미국 제재를 사실상 집행하도록 방치하지 말고 사용 가능한 보호 장치를 검토·가동하라는 것이었다.
다만 차단법을 거론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보호가 발동하는 것은 아니다. 현행 부속서의 범위와 이 미국 지정이 해당 규정에 적용되는지는 정식 법률 검토가 필요하다. EU의 대응이 부족했다는 비판은 현재로서는 EDRi 등의 정책·권리 관점의 주장으로 이해해야 하며, 차단법이 특정한 결과를 명백히 의무화했다는 증거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