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원유 수출 붕괴는 중국을 상대적으로 느긋한 구매자에서 인도와 러시아산 원유를 놓고 경쟁하는 핵심 입찰자로 바꿔놓았다. 그 결과 인도 정유사에는 즉각적인 물량 부족이라기보다, 더 비싸고 불확실하며 정치적 위험까지 커진 원유 시장이 열리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이던 ‘비상용 안전판’의 여유가 줄어든 셈이다.
이란산 원유 급감이 만든 연쇄 효과
이란의 원유 수출은 미국이 7월 중순 이란 선박과 항만에 대한 봉쇄를 재개한 뒤 2025년 하루 170만 배럴에서 2026년 8월 약 29만4,000배럴로 급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35 최근까지 이란산 원유의 최대 구매자였던 중국은 갑자기 사라진 물량을 다른 산지에서 대체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5
중국의 이란산 원유 구매 제약은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수요를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중국의 8월 해상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은 하루 약 125만 배럴로 추정된다. 1 중국 국영 정유사 Sinopec은 중동산 공급 차질을 보완하기 위해 러시아 극동산 원유, 특히 ESPO(Eastern Siberia-Pacific Ocean) 혼합유 매입을 늘렸다.
Sinopec이 79월 인도분으로 매입한 ESPO는 3040개 화물, 하루 약 24만1,000~32만 배럴 규모로 알려졌다. 48 이는 중국의 수요가 인도가 중동산 공급 차질에 대응하기 위해 활용해 온 같은 러시아산 할인 원유 풀로 이동하고 있음을 뜻한다.
인도의 러시아산 수입, 8월 들어 급감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은 7월 하루 약 279만 배럴에서 8월 약 187만 배럴로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6월에는 약 273만 배럴에 달했다. 1 특히 러시아 유럽 항구에서 인도로 향한 선적량은 하루 약 182만 배럴로, 전월보다 거의 30% 줄었다. 1
인도의 러시아 의존도는 감소 직전 이미 이례적으로 높아진 상태였다. 7월 러시아산 원유는 인도 전체 원유 수입량의 50.83%인 하루 약 247만 배럴을 차지했다. 8 다른 추적 자료에서는 7월 수입량을 약 280만 배럴, 전체 수입량의 약 55%로 집계하기도 한다. 59 집계 기관과 선적 인식 시점에 따른 차이는 있지만, 러시아가 인도의 최대 원유 공급원으로 자리 잡았다는 흐름은 같다.
중국과 인도의 경쟁은 ‘가격’보다 ‘경로’에서 갈린다
중국은 러시아 극동 항구에서 ESPO를 들여올 수 있다. 태평양을 건너는 항로가 비교적 짧아 운송 시간과 선박 운용 측면에서 유리하다. 반면 인도는 러시아 유럽 항구에서 출발하는 장거리 물량에 크게 의존한다. 14
따라서 인도에 대한 경쟁 압력은 단순히 러시아산 원유 가격이 오르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러시아는 극동산 원유를 중국에 우선 판매할 수 있고, 인도 정유사들은 더 긴 운송 거리와 선박 확보, 결제·금융, 보험 문제를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중국의 구매 확대와 러시아의 생산·수출 제약은 러시아산 원유의 할인 폭도 줄이고 있다. 7 여기에 운임과 전쟁위험 보험료가 오르면 대체 원유 대비 러시아산 원유의 실제 도착 비용 우위는 크게 축소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 이는 정유사 마진을 압박하고 국내 연료 가격 상승 위험을 높인다. 1112
미국 제재, 원유 가격 외의 위험을 키운다
미국은 이란산 원유 거래에 대한 압박을 재개했고, 러시아 에너지 구매국을 겨냥할 수 있는 추가 제재 법안도 추진해 왔다. 해당 법안에는 러시아 에너지의 주요 구매국에 대한 관세 조치 가능성이 포함됐다. 5614
인도 정유사 입장에서는 시장에 표시되는 원유 가격만 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결제 경로가 막히거나, 선박과 보험을 구하기 어려워지거나, 러시아산 원유를 사용한 제품의 최종 시장 접근성이 떨어질 경우 실제 조달 비용은 훨씬 커질 수 있다.
미 상원은 8월 7일 러시아와 이란을 겨냥한 제재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러시아산 석유·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중국과 인도 등 주요 구매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최종 법제화와 실제 적용 여부는 별도의 변수다. 19 22
브렌트유 상승은 인도의 경상수지를 압박한다
이란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혼란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시장은 더 prolonged한 지역 위기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3 브렌트유 가격이 높은 수준에서 지속되면 인도의 원유 수입액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인도는 원유 수요의 약 89%를 해외 수입에 의존한다. 또 평상시 인도 원유 수입량의 약 4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14 따라서 유가 상승과 해상 운송 차질이 동시에 발생하면 경상수지, 루피화 가치, 물가, 연료 보조금과 세금 정책이 한꺼번에 압박받을 수 있다.
인도 정유사들이 서아프리카와 미주산 원유까지 탐색 범위를 넓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Bloomberg는 러시아산 원유 흐름에 압박이 커지자 인도 정유사들이 대체 물량을 찾고 있다고 보도했다. 11
전략비축유의 한계도 다시 부각
인도의 전략비축 여력은 중국·일본·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작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다만 제공된 자료만으로는 2026년 8월 인도의 비축유가 정확히 어느 수준인지, 또는 얼마나 빠르게 줄고 있는지를 독립적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15
그럼에도 실질적인 취약성은 분명하다. 러시아산 원유 공급이 줄고 걸프 지역 해상 운송마저 불안정해지면, 인도가 새로운 화물을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진다. 비축유가 모든 공급 차질을 해결하는 만능 안전판이 아닌 만큼, 수입선 다변화와 운송 인프라 확보가 함께 필요하다.
인도 정유사와 아시아 시장에 주는 의미
인도 정유사: 지금 필요한 것은 ‘추가 물량’보다 유연성
인도 정유사들은 서아프리카, 미주, 비걸프 지역 생산국과 장기 공급계약을 확대하고, 서로 다른 원유 등급을 처리할 수 있는 설비 유연성을 유지해야 한다. 동시에 유조선과 보험 capacity를 미리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러시아산 원유는 여전히 가격 측면의 이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 공급원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러시아의 수출 제약, 중국의 수요, 미국의 제재, 운송·보험 비용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 경우 할인유는 더 이상 안정적인 일방향 헤지가 아니다.
아시아: 원유 시장의 블록화와 비용 상승
아시아 원유 시장은 점점 더 분절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산과 비걸프산 원유를 놓고 경쟁하는 동시에 브라질과 아프리카산 원유로 조달처를 넓히고 있다. 인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다. 9
그 결과 대서양 분지, 아프리카, 브라질, 러시아의 비걸프산 원유를 둘러싼 아시아 구매자들의 경쟁이 심해질 수 있다. 남아 있는 걸프산 공급에는 지정학적 위험과 운송 프리미엄이 더 크게 붙을 가능성이 있다. 최종 도착 비용은 높아지고 정유사 마진은 더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결국 이번 사태의 핵심은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전혀 구하지 못하게 됐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인도가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 중국도 같은 물량을 필요로 하게 됐다는 점이다. 러시아산 원유의 공급 경로와 할인 폭, 제재 위험이 동시에 변하면서 인도의 연료 안보 전략은 ‘값싼 원유 확보’에서 ‘여러 경로를 유지하는 능력’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