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양 위기는 ‘토지 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FAO의 제2차 세계 토양자원 현황(Status of the World’s Soil Resources) 평가는 세계 토양의 상당수가 이미 취약한 상태이며, 악화 속도가 개선 속도를 앞서고 있다고 진단한다. 다만 보고서에 제시된 비율은 전 세계 토지 면적을 직접 나눈 수치가 아니라, 평가에 참여한 지역과 하위 지역의 토양 관리 상태를 집계한 결과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47
절반 이상이 나쁜 관리 상태
평가 대상 지역·하위 지역 가운데 52.5%는 토양 관리가 ‘나쁨’ 또는 ‘매우 나쁨’으로 분류됐다. 반대로 ‘좋음’ 또는 ‘매우 좋음’으로 평가된 곳은 14%에 그쳤다. 2015년 평가 이후 상황이 악화됐다고 보고한 지역은 58%였지만, 개선을 보고한 지역은 10%뿐이었다. 457
토양에 가해지는 압력도 커졌다. 같은 기간 세계 인구는 약 8억 명 증가했고, 주요 작물의 수확 면적은 약 8,000만 헥타르 늘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식량을 공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토양은 더 집중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37
토양이 무너지면 식량과 기후 안전망도 흔들린다
토양은 단순히 작물이 뿌리내리는 바닥이 아니다. 전 세계 식량 생산의 약 95%를 뒷받침하고, 육상 생물다양성의 약 59%가 토양과 연결돼 있다. 또한 토양은 해양 다음으로 큰 지구의 탄소 저장고다. 토양이 훼손되면 작물 수확량과 생태계가 함께 타격을 받고,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자연의 완충 능력도 약해질 수 있다. 7
보고서가 지목한 가장 광범위한 위협은 토양 침식이었다. 평가의 81%에서 침식 관리가 부실한 문제로 보고됐다. 이 밖에도 토양 유기탄소 감소, 양분 불균형과 잘못된 비료 관리, 토양 생물다양성 저하, 염류화, 오염, 도시 확장에 따른 토지 피복·포장(sealing) 등이 주요 위험으로 꼽혔다. 57
해법은 있지만 현장 도입이 뒤처진다
FAO가 제시하는 핵심 방향은 토양을 소모품처럼 사용하는 ‘토양 착취’에서, 유한하고 살아 있는 자원으로 돌보는 ‘토양 관리· stewardship’로 전환하는 것이다. 4
실천 방법은 비교적 분명하다. 경운을 줄이거나 없애고, 작물 잔류물이나 피복작물로 땅을 계속 덮으며, 재배 작물을 다양화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FAO가 설명하는 보전농업은 최소한의 토양 교란, 상시적인 토양 피복, 작물 다양화라는 세 원칙을 결합한다. 여기에 농림복합경영, 유기물 회복, 작물에 맞춘 정밀한 비료 관리 등을 더하면 침식을 줄이고 토양 탄소와 비옥도, 기후 회복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351115
문제는 지식의 부재보다 실행 여건이다. 농민과 정부는 초기 투자금, 농기계와 농자재, 안정적인 토지 이용권과 참여 유인, 농업지도 서비스와 현장 지식, 지역별 토양 데이터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토양 관리의 확산에는 기술 보급만이 아니라 금융·정책·데이터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다. 34
기후변화가 토양 악화를 다시 가속한다
토양 악화와 기후변화는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에 있다. 고온과 가뭄, 집중호우, 산불은 침식과 탄소 손실을 키운다. 반대로 훼손된 토양은 물을 덜 저장하고 탄소를 덜 흡수하며, 농업 공동체를 기후 충격에 더 취약하게 만든다. 47
이번 평가는 사막화 대응을 논의하는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 당사국총회와 맞물려 토지 복원을 늦출 때 치러야 할 비용도 부각했다. 토양을 가뭄·기후·식량·생물다양성 정책의 주변 의제가 아니라 핵심 기반으로 다뤄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FAO의 경고는 ‘토양을 살릴 방법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검증된 방법은 이미 존재하지만, 이를 농촌 현장에 정착시킬 자금과 제도, 지원 체계가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지금 토양을 관리하는 방식이 앞으로의 식량 생산과 생태계, 기후 회복력을 결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