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중국의 춘제 기간에는 AI 기업들이 현금과 경품, 신형 모델을 앞세워 치열한 사용자 쟁탈전을 벌였다. 중국에서 ‘춘제 AI 전쟁’으로 불린 이 경쟁은 단순한 할인 행사가 아니었다. 기업들은 춘제의 높은 시청률과 소셜미디어 확산력, 그리고 세뱃돈을 주고받는 홍바오(红包·붉은 봉투) 문화를 결합해 AI 챗봇을 대규모 소비자 이벤트로 바꿨다. 12
핵심은 당장의 매출보다 ‘누가 중국인의 기본 AI 관문이 될 것인가’였다. 이용자가 검색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쇼핑하고, 결제하고, AI 에이전트를 실행하는 첫 번째 앱이 되면 향후 데이터와 유통, 개발자 생태계까지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금과 경품을 내건 사용자 확보 경쟁
바이트댄스·두바이: 바이트댄스의 AI 챗봇 두바이는 10만 개가 넘는 경품을 준비했다. 로봇, 드론, 3D 프린터 같은 AI·스마트 기기와 함께 최대 8,888위안에 이르는 현금 홍바오도 제공했다. 춘제 기간에는 대형 엔터테인먼트 채널을 통한 홍보까지 결합했고, 두바이의 일일활성이용자 수는 1억 명을 넘어섰다고 민간 조사기관 자료를 인용한 로이터가 보도했다. 451
바이두·어니, 텐센트·위안바오, 알리바바·큐원: 바이두는 어니에 약 5억 위안, 텐센트는 위안바오에 약 10억 위안, 알리바바는 큐원에 약 30억 위안 규모의 프로모션을 내걸었다. 디지털 홍바오와 쇼핑 쿠폰, 추첨을 통한 고가 경품과 자동차 등이 동원됐다. 앱을 내려받고 친구를 초대하거나 AI 관련 과제를 수행하면 보상을 받는 방식이었다. 알리바바는 캠페인 시작 9시간 만에 1,000만 건이 넘는 주문이 발생했다고 밝혔으며, 폭발적인 수요로 큐원 서비스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28
이 방식은 중국 인터넷 업계에서 낯설지 않다. 2015년 텐센트가 위챗의 디지털 홍바오를 확산시켰을 때처럼, 현금성 보상과 친구 간 공유를 결합해 새로운 디지털 습관을 빠르게 퍼뜨리는 전략이다. 다만 이번에는 결제 서비스가 아니라 AI 앱과 모델 사용이 경쟁의 중심에 놓였다.
신형 모델 출시도 춘제에 맞췄다
사용자 확보전은 경품에만 머물지 않았다. 기업들은 춘제 직전과 연휴 기간에 새로운 대형 언어 모델을 잇달아 공개하며 기술 경쟁도 벌였다.
지푸 AI는 2월 11일 오픈소스 모델 GLM-5를 출시했다. 기업 측은 코딩 능력과 장시간 이어지는 에이전트 작업 수행 능력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6 미니맥스는 2월 중순 M2.5를 공개하며 최첨단 모델에 가까운 성능을 더 낮은 비용으로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알리바바 역시 춘제 직전 큐원 신형 모델을 내놓았다. 218
딥시크의 차세대 V4 출시 가능성도 업계의 관심사였다. 앞서 공개된 R1과 V3가 중국 AI 업계에 큰 충격을 준 만큼, 경쟁사들은 딥시크의 다음 행보에 앞서 존재감을 확보하려 했다. 2
바이럴 영상은 또 다른 마케팅 수단
바이트댄스는 AI 영상 생성기 **시댄스 2.0(Seedance 2.0)**으로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아일랜드 영화감독 루아이리 로빈슨이 제작한 15초 분량의 AI 영상에는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를 닮은 인물들이 옥상에서 싸우는 장면이 등장했다. 영상은 빠르게 확산됐고, 할리우드에서는 배우의 얼굴과 저작물을 허가 없이 활용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317
이 영상의 확산은 중국산 생성형 영상 기술의 성능을 보여주는 시연이자 강력한 마케팅 효과를 냈다. 동시에 저작권과 퍼블리시티권 논란도 부각했다. 제공된 자료만으로는 일론 머스크가 이 영상에 보였다는 구체적인 반응까지 독립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왜 수십억 위안을 쏟아붓나
기업들이 막대한 보조금을 집행한 이유는 AI 서비스를 ‘기본 관문’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소비자 측면에서는 검색, 창작, 쇼핑, 결제, 대화, 에이전트 기능을 한곳에 모으는 슈퍼앱을 노린다. 개발자 측면에서는 가장 매력적인 모델과 API 생태계를 구축하려 한다.
보상은 다운로드와 공유를 단기간에 폭발시킬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승부는 경품이 사라진 뒤에도 이용자가 남는지, 무료 사용이 유료 서비스나 실제 거래로 전환되는지에 달려 있다. 춘제 기간 두바이가 거둔 1억 명 이상의 일일활성이용자는 사용자 확보에 성공했다는 증거이지, 장기적으로 가장 수익성 높은 승자가 결정됐다는 뜻은 아니다. 1
이 전략은 중국이 철강, 태양광 제조, 전기차 산업에서 보여준 ‘규모 우선’ 성장 방식과도 닮았다. 대규모 투자와 치열한 경쟁으로 규모, 학습 효과, 공급망 경쟁력을 확보한 뒤 시장 재편을 기대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과잉설비와 낮은 마진이라는 위험도 따른다. 이는 AI 산업이 반드시 같은 경로를 밟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재 경쟁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한 분석적 비교다.
중국 정부는 AI 확산을 산업정책으로 본다
중국 정부는 이번 경쟁을 단순한 소비자 앱 경쟁이 아니라 산업정책의 일부로 보고 있다. 리창 국무원 총리는 전력과 컴퓨팅 자원의 조정을 강화하고 AI의 대규모·상업적 활용을 앞당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국가 차원의 계획에서도 산업 전반에 AI를 깊숙이 적용하는 방향이 제시됐다. 5101112
이는 AI 모델과 앱이 개별 기업의 기술력만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전력, 컴퓨팅 자원, 네트워크 인프라에 대한 조정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정부의 지원 방향과 기업의 시장 경쟁이 맞물리면서 중국 AI 산업은 소비자 서비스와 산업용 인프라를 동시에 확대하려 하고 있다.
결국 승부처는 ‘경품 이후’다
중국의 ‘춘제 AI 전쟁’은 전통적인 홍바오 기반 성장 해킹, 대규모 광고·프로모션, 프런티어급 모델 출시, 바이럴 영상 시연이 한꺼번에 결합된 사례였다.
기업들이 겨루는 것은 단순히 연휴 기간의 앱 다운로드 수가 아니다. 이용자의 일상 습관, 개발자의 도구와 API 선택, 그리고 AI 서비스를 떠받칠 컴퓨팅·전력 인프라를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의 문제다. 따라서 최종 승자는 가장 많은 돈을 뿌린 기업이 아니라, 보상이 사라진 뒤에도 사용자를 붙잡고 이를 지속 가능한 유료 서비스와 플랫폼 생태계로 전환하는 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