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의 진단은 낙관이라기보다 ‘일단 버텨냈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는 평가에 가깝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에너지 공급 차질이 세계 경제에 미친 충격이 예상보다 작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가 상승, 끈질긴 인플레이션, 높아지는 차입 비용과 악화되는 정부 재정은 앞으로 성장을 약화시킬 수 있다. 17
IMF는 2026년 세계 경제가 3.0% 성장할 것이라는 수정 전망을 제시했다. 성장 자체는 이어지지만, 이 전망을 둘러싼 위험은 하방에 더 크게 쏠려 있다. 47
예상보다 충격이 작았던 이유
에너지 공급 차질의 일부는 다음과 같은 완충 요인으로 흡수됐다.
- 석유와 가스 비축분이 시장에 풀렸다.
- 걸프 지역 밖의 산유국들이 공급을 늘렸다.
- 재생에너지 설비가 확대됐다.
- 에너지 수요가 예상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
- 일부 경제가 석탄 사용을 다시 늘렸다. 4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현재 상황을 ‘줄다리기’에 비유했다. 걸프 지역의 부정적인 에너지 공급 충격이 경제를 끌어내리는 한편, 인공지능(AI) 관련 투자는 반대 방향의 성장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충격의 크기는 국가마다 다르다. 걸프 지역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 거시경제 안정성, AI 공급망에서의 위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17
회복력은 왜 여전히 취약한가
에너지 시장을 지탱하는 완충 장치는 무한하지 않다. 석유와 가스 재고가 줄어든 상태에서 추가 공급 차질이 발생하면 가격이 더 크게 반응할 수 있다. 특히 겨울철 에너지 수요가 늘어나는 시기에 이런 위험이 커진다. 유가가 다시 오르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해지고, 중앙은행이 높은 금리를 완화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어질 수 있다. 56
금리가 높아지면 정부와 민간 차입자의 부채 상환 비용도 증가한다. 가계와 기업의 지출이 줄고 투자가 위축되면서 경제 활동이 더 둔화될 수 있다. 6
우려는 에너지 시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일부 국가에서 나타난 국채 금리 상승과 디스인플레이션, 즉 물가 상승률 둔화의 정체를 재정 여건 악화와 취약성 확대의 신호로 지목했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정부가 만기가 돌아온 부채를 차환하는 비용이 커지고, 향후 위기에 대응할 재정 여력은 줄어든다. 17
2026년 성장률 3.0%가 의미하는 것
IMF의 2026년 세계 경제 성장률 3.0% 전망은 충격이 끝났다는 선언이 아니다. 에너지 공급 차질이 다시 발생하거나,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고, 높은 부채와 무역 긴장이 이어질 경우 전망은 흔들릴 수 있다. 47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앞서 중동 분쟁으로 인한 세계적 경기 둔화가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위험은 높다고 경고했다. 현재 경제 활동이 견조하다는 사실과 향후 전망을 둘러싼 조건이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16
AI 투자는 수요를 받치지만, 혜택은 고르지 않다
세계 경제가 예상보다 강한 흐름을 유지한 또 다른 이유는 AI 투자다. 미국에서 먼저 집중적으로 나타난 AI 투자 붐은 이제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기업 실적과 소비 지출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데이터센터 건설과 AI 관련 하드웨어 생산을 자극할 수 있다. 313
다만 AI가 장기적으로 경제에 미칠 효과에는 “상당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으며, 금융 안정성에 대한 위험도 있을 수 있다고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강조했다. AI의 성과가 모든 국가와 계층에 고르게 돌아간다는 보장도 없다. AI 인프라, 자본, 인력과 공급망에 접근하기 어려운 개발도상국은 뒤처질 위험이 특히 크다.
따라서 AI는 단기적으로 수요를 끌어올리는 순풍인 동시에 장기적인 정책 과제이기도 하다. 투자는 당장의 경기를 지지할 수 있지만, 에너지 충격을 없애거나 폭넓은 생산성 향상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정책 당국이 해야 할 일
재정 당국
각국 정부는 재정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미래의 충격에 대응할 여력을 다시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공부채를 지속 가능한 경로에 올려놓고, 대상을 넓게 잡은 일률적인 보조금은 피해야 한다. 대신 에너지 비용 상승에 가장 취약한 가계에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생산적인 투자는 가능한 한 보호해야 하지만, 국채 금리가 오를수록 재정 조정을 미루는 대가는 커진다. 17
중앙은행
중앙은행의 판단은 더욱 어려워졌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일시적인 한 번의 충격으로 끝날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충격이 인플레이션 기대, 임금과 광범위한 물가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면 2차 파급효과가 고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이런 위험이 현실화될 경우 정책 당국이 긴축에 나설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수요가 급격히 약해질 때는 불필요한 추가 긴축을 피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에너지·AI 정책
대응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각국 정부는 에너지 회복력을 강화하고 공급 경로를 다변화해 특정 지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동시에 더 많은 국가가 AI 주도 성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인프라, 인력 교육과 기술, 금융에 대한 접근성을 넓혀야 한다.
핵심 메시지
세계 경제는 호르무즈 해협의 공급 차질이라는 중요한 시험을 지금까지는 통과했다. 비축유 방출, 대체 공급 확대, 에너지 수요 감소와 AI 투자가 초기 충격을 누그러뜨렸다. 하지만 이 완충 요인들은 약해질 수 있고, 그 사이 유가·인플레이션·부채 상환 비용과 국채 금리는 더 높아질 수 있다.
현재 IMF가 보는 세계 경제는 ‘회복력이 있는’ 상태다. 더 큰 질문은 그 회복력이 또 다른 에너지 충격까지 견딜 수 있느냐는 것이다. 동시에 다음 성장 엔진으로 떠오른 AI의 성과가, 따라잡을 자원이 가장 부족한 국가에도 실제로 확산될 수 있을지도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