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응은 단순히 정유공장을 복구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모스크바는 국내 공급을 우선하는 비상 대책으로 전환해 연료 수출을 제한하고, 해외에서 완제품을 수입하며, 외국 정유시설의 가공 능력까지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러시아에 연료를 공급받아 온 주변국들도 대체 공급처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페름 정유공장 중단이 키운 공급 충격
8월 21일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 이후 러시아 페름의 정유공장이 가동을 멈췄습니다. 페름 정유공장은 러시아에서 원유 처리량 기준 일곱 번째로 큰 시설이며, 화재와 공정 설비 손상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로이터가 인용한 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주요 원유 증류 장치인 CDU-4가 정지했으며, 이 장치는 공장 처리 능력의 약 40%를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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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앞서 다른 정유시설과 연료 저장·수송 거점에 발생한 차질에 추가된 충격입니다. 특히 계절적 수요가 높은 시기에 정유 능력이 줄면서 러시아 여러 지역에서 휘발유 부족과 가격 상승 압력이 나타났습니다. 러시아 당국이 당시 공격 과정에서 드론 325대를 요격했다고 발표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요격 규모와 전체 피해 범위는 별도로 신중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러시아가 꺼내 든 세 가지 카드
1. 연료 수출을 막아 국내 시장부터 지키기
러시아 정부는 휘발유와 경유를 비롯해 일부 석유제품의 수출 제한을 2027년 1월 31일까지 연장했습니다. 명분은 국내 연료 시장의 공급과 가격 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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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러시아는 정유시설 공격으로 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경유 수출을 금지하고, 휘발유 수출도 제한했습니다.
2 세계적인 원유·정유제품 수출국인 러시아가 국내 소비자를 우선하기 위해 해외 판매 물량을 차단한 셈입니다.
2.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환
러시아는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해상으로 휘발유를 수입하는 방안도 추진했습니다. 대규모 정유제품 수출국이 바다를 통해 휘발유를 들여오는 것은 이례적인 조치입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아시아에서 러시아 서부 항구로 연료가 운송될 예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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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과 인도에서 연료를 구매했다는 보도도 같은 대응 전략의 일부로 거론됩니다. 다만 7월 말 이후 러시아가 해상으로 100만 배럴이 넘는 휘발유를 수입했다는 구체적인 규모는 확인된 자료만으로 독립적으로 검증하기 어렵습니다.
3. 카자흐스탄의 정유 능력 빌리기
카자흐스탄 서부의 콘덴세이트 정유공장은 러시아산 원유를 가공하고, 그 결과물을 다시 러시아에 보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에너지부 장관 예를란 아켄젠노프에 따르면 생산되는 휘발유와 경유의 70%는 러시아로 수출되고, 나머지 30%는 카자흐스탄 내수용으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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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러시아가 원유를 공급하고 카자흐스탄의 정유 능력을 이용해 완제품을 확보하는 일종의 긴급 외부 위탁가공 방식입니다. 카자흐스탄도 생산물을 전량 러시아에 넘기는 것이 아니라 30%를 자국 시장에 남겨 국내 공급을 확보합니다. 해당 정유공장과 러시아·카자흐스탄 송유관망을 직접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이 없어, 정제된 제품은 철도로 운송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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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제시된 피해는 신중히 봐야
일부 보도와 분석은 러시아 정유능력의 30% 이상이 제약을 받고 있으며, 약 5,000만 명이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또 여러 지역에서 차량 한 대당 판매량 제한이나 홀짝제 등 배급식 통제가 시행됐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수치와 전국적인 통제 범위는 가장 신뢰도 높은 자료만으로 모두 독립 확인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확인된 사실과 추정·주장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분명한 것은 러시아 정부가 수출 제한, 공급 재배치, 해외 수입, 외부 정유시설 활용을 동시에 추진할 만큼 국내 연료 시장을 비상 상황으로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앙아시아로 번진 연료 부족
러시아의 공급 축소는 러시아산 연료 의존도가 높은 키르기스스탄에 직접적인 부담이 됐습니다. 키르기스스탄은 통상 휘발유의 90% 이상을 러시아에서 들여왔기 때문에, 러시아 정유시설의 가동 차질과 수출 제한이 곧바로 국내 공급 위험으로 이어졌습니다.
비슈케크는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에 공급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이어 국내 재고를 지키기 위해 휘발유·경유·석유 수출을 무기한 금지했습니다. 이 조치는 국내 시장이 충분히 공급될 때까지 유지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키르기스스탄은 8월 중국 국영 석유화학기업 시노펙과 직접 협의에도 들어갔습니다. 이는 러시아 공급이 불안정해진 상황에서 중국을 포함한 대체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선택이 갖는 전략적 의미
러시아는 이제 국내 정치·경제 안정을 위해 자국 시장을 우선할지, 아니면 주변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에 대한 연료 공급을 유지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카자흐스탄 콘덴세이트 정유공장과의 협력은 러시아의 부족분을 일부 완화할 수 있지만, 생산량의 30%를 카자흐스탄이 보유한다는 조건은 이 거래가 러시아만을 위한 비상 비축고는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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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이 중국과 다른 이웃 국가로 공급처를 넓히는 것도 같은 신호입니다. 러시아의 연료 위기는 단기적으로는 정유제품 부족 문제지만, 장기적으로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러시아에 집중된 에너지 의존을 재검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국내 수요를 지키기 위해 수출을 줄일수록, 주변국은 자체 비축과 공급 다변화를 서두를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