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공개된 신뢰도 높은 자료만으로는 러시아 국가근위대인 로스그바르디야가 연료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배치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현지 질서 유지 조치와 일부 체포가 있었다는 사실이 전국 단위의 특정한 진압 작전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쟁 비용과 경기 둔화는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의 재정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러시아 정부의 2026년 연방 지출과 적자 전망은 당초 계획보다 높아졌으며, 한 보도는 연방정부 적자가 6.5조 루블, 당시 환율 기준 약 79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전했다.
지방정부 역시 기업 이익세 수입 감소와 사회지출 증가에 직면했다. 지방 예산의 합산 적자는 2026년 1.9조 루블로 전망됐고, 푸틴은 지방 재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추가 지원과 부채 탕감·상환 연기를 지시했다.
여기서 자주 언급되는 “지방정부 부채 3.3조 달러”라는 수치는 근거가 확인되지 않는다. 관련 보도에서 제시된 수치는 달러가 아니라 루블 기준이다.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에 따르면 지방정부의 총부채는 약 3.3조 루블, 미화 약 390억 달러 수준이며, 그중 상당 부분은 연방정부가 제공한 저리 대출이다.
연방정부의 구제금융과 대출 탕감이 지방정부의 즉각적인 부담을 줄일 수는 있지만, 적자 자체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중앙정부가 지방의 재정을 계속 떠받쳐야 한다면 전쟁 지출과 민생 지출 사이에서 선택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 정부는 경제가 여전히 회복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푸틴은 2026년 5월 국내총생산이 완만하지만 증가했다고 말했고, 경제와 주요 산업의 상태가 안정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식 통계와 분석은 전쟁경제의 성장세가 크게 둔화했음을 보여준다. 러시아 통계청은 2026년 1분기 GDP가 전년 동기보다 0.2% 감소한 뒤 2분기에는 1.3%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2분기 수치는 플러스이지만, 이를 지속적인 회복으로 보기에는 군사·정부 지출 등 일시적 요인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상황은 고성장보다는 사실상 정체에 가까운 흐름으로 해석하는 편이 신중하다.
전쟁과 제재, 높은 국방비, 긴축적인 통화정책, 우크라이나의 기반시설 공격이 투자와 생산성에 동시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러시아 경제개발부와 중앙은행을 비롯한 기관들의 전망은 서로 다르지만, 2026년 경제가 전쟁 초반의 급성장 국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에는 공통된 경고음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VEB.R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안드레이 클레파치가 해임된 사건은 경제 문제 자체만큼이나 정치적 메시지를 던졌다. 클레파치는 5월 모스크바거래소 니키츠키 클럽에서 열린 행사에서 러시아가 서방과 중국에 경제·기술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지원 세력에 맞선 장기적인 소모전을 이길 수 없고, 심각한 사회적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보도됐다. VEB.RF는 그가 더 이상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아니라고 확인했지만, 해임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일부 매체는 관계자를 인용해 그의 발언이 해임과 관련됐으며, 상부의 지시를 뜻하는 “위에서 전화가 왔다”는 설명도 전했다.
해임 시점은 클레파치의 분석이 크렘린의 공식 서사와 정면으로 충돌한 직후였다. 크렘린은 경제가 안정적이고 연료난은 일시적이라고 말하는 반면, 클레파치는 전쟁 장기화가 경제·기술적 후퇴와 사회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가장 신중한 결론은 그의 해임이 연료 부족이나 지방 부채, 선거 우려 하나 때문에 발생했다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전쟁경제의 회복력’ 서사에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더 이상 용인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크렘린의 핵심 과제는 선거 전까지 일상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쟁 지출을 줄이지 않는 것이다. 주유소의 대기 행렬과 판매 제한은 거시경제 지표보다 훨씬 빠르게 유권자의 불만을 자극할 수 있다. 지방정부의 적자와 부채는 중앙정부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 시험하는 또 다른 부담이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병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선거 이후 추가 동원이 추진될 가능성이 거론될 수 있지만, 공개된 자료만으로 실제 계획이나 푸틴의 사적 우려를 확인할 수는 없다. 추가 동원은 군사적 인력 문제를 완화할 수 있지만, 노동력 부족과 가계 불안, 이미 연료난과 재정 긴축이 드러낸 사회적 긴장을 키울 위험도 있다.
결국 푸틴이 맞닥뜨린 문제는 단일한 위기가 아니라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여러 압박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는 데 있다. 연료 공급을 정상화하고 지방 재정을 지원하며 경제가 버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유지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전쟁의 비용을 감추거나 비판적 분석을 통제하는 것만으로는 생활 현장에서 체감되는 부담을 없애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