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를 단순히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각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소각이 완료되면 전체 주식 수가 영구적으로 줄어듭니다. 회사의 이익 규모가 변하지 않는다면 더 적은 주식이 같은 이익을 나누게 되므로 주당순이익(EPS)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매입에 응한 주주에게는 현금이 직접 돌아가고, 남은 주주에게는 주식 수 감소라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SK하이닉스는 중기 주주환원 목표도 높였습니다. 2025~2027년에 발생하는 누적 잉여현금흐름 가운데 주주에게 돌려줄 비중을 기존 ‘50% 이내’에서 50% 초과로 변경했습니다. 자사주 매입·소각과 배당을 활용하며, 특별배당과 추가 환원 조치 가능성도 열어뒀습니다.
회사는 사업 경쟁력과 현금 창출 능력을 바탕으로 한 내재가치가 현재 주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시장이 평가한 주가가 회사의 실제 수익 창출력을 지나치게 낮게 반영하고 있다고 보고, 보유 현금을 활용해 직접 대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조치는 기록적인 AI 관련 이익과 ‘AI 투자 정점론’이 충돌한 시점에 나왔습니다. 투자자들은 메모리 업황에서 발생한 현금을 더 많이 돌려받기를 원했지만, AI 인프라 투자가 계속될지와 메모리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서 반도체주를 매도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자사주 매입 발표 전 두 달 동안 주가가 50% 넘게 하락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투자자들은 두 회사가 보유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규모 순현금과 기존의 ‘잉여현금흐름 절반 환원’ 정책에도 주목했습니다. AI 수요로 이익이 급증한 만큼 더 많은 자금을 주주에게 배분할 여지가 있다는 요구였습니다.
따라서 이번 조치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다만 자사주 매입이 향후 메모리 가격 상승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사주 매입은 유통 주식 수를 줄이고 경영진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수단이지만, 메모리 공급량이나 가격, 수요 자체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의 실적은 AI 설비투자, 메모리 업체들의 공급 조절, 금리와 같은 거시경제 여건에 달려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의 자사주 전량 소각을 회사의 단기 사업 전망과 AI 서버 수요에 대한 강한 자신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규모가 크고 실행 시점도 빠른 만큼, 경영진이 최근 밸류에이션 하락을 회사의 영업 전망에 비해 과도한 것으로 판단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를 ‘자사주 매입이 곧 메모리 가격 상승을 의미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자사주 소각은 주당 가치와 투자심리를 지지할 수 있지만, 메모리 반도체는 여전히 경기와 수급에 따라 실적이 크게 움직이는 산업입니다. AI 투자가 둔화하거나 공급이 수요보다 빠르게 늘어나면 대규모 주주환원도 이익 감소를 막아주지는 못합니다.
삼성전자의 메시지는 비슷했지만 방식은 달랐습니다. 삼성전자는 자사주 매입보다 배당에 더 무게를 두면서 직접적인 현금 지급을 강조했습니다. 동시에 HBM과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 여력은 유지했습니다.
발표 다음 날 한국 증시는 크게 반등했습니다. 8월 20일 SK하이닉스는 12.73% 오른 169만1,000원, 삼성전자는 9.49% 상승한 27만1,0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코스피는 5.9% 상승해 6,800선을 회복했습니다.
이날 상승은 주주환원 기대뿐 아니라 미국 국채 금리 하락에 따른 위험선호 회복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장기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르면 성장주와 반도체주의 밸류에이션에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이번 반등을 전적으로 배당이나 자사주 정책에 대한 평가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주주환원 발표는 한국 반도체주 전반의 반등에도 힘을 보탰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두 가지 위험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미국 장기 금리가 다시 기술주 밸류에이션을 압박할 가능성, 그리고 향후 AI 인프라 투자가 둔화해 메모리 수요가 약해질 가능성입니다.
대규모 주주환원 계획이 현실성을 갖는 배경에는 두 회사의 강력한 현금 창출력이 있습니다. 로이터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해 말까지 합계 2,630억 달러의 순현금을 보유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도 비교 대상으로 거론됐습니다. 마이크론은 장기적으로 ‘초과 현금’의 100%를 주주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다만 ‘초과 현금’과 잉여현금흐름은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따라서 마이크론의 방침을 삼성전자의 ‘잉여현금흐름 50%’ 정책이나 SK하이닉스의 ‘누적 잉여현금흐름 50% 초과’ 목표와 동일한 기준이나 일정으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조치로 논쟁의 초점은 바뀌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 호황의 수혜를 주주와 나눌지 여부가 아니라, 다음 메모리 사이클에 필요한 투자를 유지하면서 얼마나 더 환원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 됐습니다.
삼성전자는 대규모 배당을 중심으로 현금을 돌려주면서도 재투자를 이어가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40조 원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더 직접적인 저평가 신호를 보냈고, 누적 잉여현금흐름 환원 목표도 50% 초과로 높였습니다.
두 계획 모두 단기적으로 주가를 지지했지만, 근본적인 시험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AI 인프라 수요와 첨단 메모리 가격이 현재 주가에 반영된 이익 기대를 실제로 뒷받침할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관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