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서버용 DRAM 가격은 2026년 1분기에 대략 두 배로 올랐고, 연간으로는 약 네 배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시됐다. 일반 DRAM과 NAND의 계약가격도 큰 폭으로 뛰었다.
다만 메모리칩 가격이 두 배가 됐다고 완제품 가격도 두 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메모리는 스마트폰·PC·자동차의 전체 원가를 구성하는 여러 부품 중 하나다. 제조사는 가격 인상, 사양 조정, 이익률 축소, 장기계약을 통한 비용 분산 등으로 충격을 일부 흡수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세 회사가 가장 큰 수혜를 입는다.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AI 고객과 장기계약을 맺으면 가격 결정력이 커지고, 공장 가동률과 현금흐름도 안정된다. 장기 공급계약은 과거처럼 분기별 주문에 따라 가격이 급락하는 위험을 어느 정도 줄여줄 수 있다.
그러나 메모리 산업의 전통적인 ‘호황-증설-공급과잉-가격 폭락’ 사이클이 사라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AI 기업이 주문을 취소하거나 계약을 재협상할 수 있고, 클라우드 사업자가 데이터센터 투자 속도를 늦출 수도 있다. 세 제조사는 장기계약이 AI 투자 둔화 때에도 과거의 급격한 업황 붕괴를 막아줄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차량은 디지털 계기판, 인포테인먼트,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자율주행 기능이 늘면서 DRAM과 NAND 사용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2026년 커넥티드카 한 대에 필요한 DRAM·NAND 저장공간이 합쳐서 약 278GB에 이를 수 있으며, 고급 차량은 2TB에 가까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레벨 4 자율주행 차량에는 300GB가 넘는 메모리가 필요할 수 있다.
포드는 2026년 DRAM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으로 약 10억 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봤다. 다만 자재비와 보증비용 절감으로 그 증가분 일부를 상쇄할 것으로 예상했다. GM과 포드는 향후 차량용 메모리와 저장장치를 확보하기 위해 마이크론과 장기 공급 협약도 추진했다.
반면 5만 달러 차량이 6만 달러가 되려면 20%, 즉 1만 달러가 올라야 한다.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메모리 비용만으로 이 정도 인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중·고급 차량의 직접적인 메모리 원가는 대체로 90~220달러, 일부 첨단 모델도 500달러를 웃도는 수준으로 제시된다. 따라서 차량당 2,000달러 인상분에는 DRAM·NAND 외에 다른 반도체, 공급망 비용, 관세, 인건비, 금융비용, 제조사 마진, 기능 추가 비용 등이 함께 포함돼야 한다.
메모리와 SSD를 많이 탑재하는 PC가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제조사는 가격을 올리거나 기본 RAM·저장용량을 줄이고, 상위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할 때 더 높은 비용을 부과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고용량 메모리 모델일수록 가격 압력이 커질 것으로 본다.
게임 콘솔과 그래픽카드는 대용량 DRAM 또는 GDDR 메모리와 저장장치를 함께 사용한다. 따라서 가격 인상 폭이 상대적으로 클 수 있다. 신제품이나 중간 사양 변경 모델이 더 높은 권장소비자가격으로 출시되거나, 같은 가격에 메모리·저장공간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스마트폰 제조사는 보급형 모델의 출고가를 유지하기 위해 RAM과 저장공간을 줄이는 방식을 택할 수 있다. 반면 생성형 AI 기능을 강조하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은 더 많은 메모리를 필요로 하므로 원가 상승에 더 취약하다.
메모리 탑재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TV와 가전은 PC나 게임기보다 직접적인 영향이 작을 수 있다. 그래도 부품 부족이 특정 모델의 생산량을 제한하거나 유통가격을 끌어올리는 간접 효과는 나타날 수 있다.
제품별로 정확히 얼마가 오를지는 아직 신뢰할 만한 공통 전망이 확립되지 않았다. ‘모든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이 일률적으로 몇 달러씩 오른다’는 식의 주장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예측으로 봐야 한다. 업계 단체들은 메모리 부족이 소비재 가격을 높이고 공급망을 흔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의 중심 시나리오는 공급 부족이 2027년까지 이어지고, 신규 생산능력이 본격적으로 추가되는 2028~2029년에 의미 있는 완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다만 이 전망은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현재와 비슷한 속도로 계속된다는 조건에 달려 있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 등도 공급 제약이 2027년 이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반대로 AI 모델의 효율 개선, 데이터센터 투자 둔화, 제품별 수요 감소가 나타나면 시장이 예상보다 일찍 안정될 가능성도 있다.
가능성은 있다. 공급 부족을 우려한 고객들이 실제 필요량보다 많은 물량을 중복 주문하거나 장기계약으로 선점하면, 표면적인 주문량이 실제 최종 수요보다 부풀려질 수 있다. 이른바 ‘불확실성 증폭 효과’ 또는 불(Bull)휩 효과다.
이 상태에서 제조사들의 증설 물량이 동시에 시장에 나오고 AI 자본지출이 둔화되면 상황은 반대로 바뀐다. 클라우드 기업이 이미 구축한 설비를 소화하는 동안 주문이 줄고, 단위 연산에 필요한 메모리 용량이 효율 개선으로 감소하면 재고가 급증할 수 있다. 메모리 업계에서 반복돼 온 공급과잉과 가격 폭락의 전형적인 경로다.
이번 사이클이 과거보다 견고할 수 있는 이유도 있다. AI가 실제로 많은 메모리를 필요로 하고, 선급금과 장기 ‘구매 또는 지급’ 계약이 수요 가시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약이 취소·재협상·통합되는 것을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상품성 높은 범용 DRAM과 NAND 수요가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AI 수요가 구조적으로 강하더라도 관련 기업의 기대와 주가가 실제 출하량보다 훨씬 앞서 나가면, 닷컴 버블 당시와 비슷한 가치평가 조정은 가능하다. ‘RAMageddon’은 단순한 부품 부족을 넘어, AI 투자 열풍이 반도체 공급망과 소비자 가격에 어떤 비용을 남기는지 보여주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