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까지 조달한 2,300만 달러와 비교하면 이번 2억 달러 시리즈 A는 초기 단계 건설 로봇 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큰 규모다. 그라비스는 이를 바탕으로 엔지니어링 인력을 늘리고, 해외 사업을 확대하며, 인프라 프로젝트 현장 배치를 늘릴 계획이다.
그라비스의 주력 제품은 자체 제작 굴착기가 아니라 기존 중장비에 장착하는 개조형 시스템이다. Gravis Rack은 자율제어 장치로, 캐터필러·존디어·볼보·JCB·히타치뿐 아니라 케이스, 데벨론, 스미토모, 얀마 등 여러 제조사의 중장비에 설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운영 방식도 한 가지로 고정되지 않는다. 운전석 내 보조 기능과 3D 가이던스부터 원격 감독, 완전 자율운전까지 여러 단계의 자동화를 지원한다. 여기에 Gravis Copilot이라는 소프트웨어 지원 계층을 결합해 여러 브랜드의 장비로 구성된 혼합 장비 운용 체계를 반자율 또는 자율 시스템으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제조사 중립성은 그라비스의 중요한 차별점이다. 건설업체는 장비 가격과 공급 가능 여부, 현지 딜러와의 관계, 정비 편의성 등을 고려해 여러 브랜드의 장비를 함께 운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 제조사 장비만 지원하는 자율화 패키지보다 기존 장비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 장벽을 낮출 가능성이 있다.
그라비스는 카메라와 각종 센서, 장비 텔레메트리, 장비에서 발생하는 물리적 피드백을 함께 활용한다고 설명한다. 도미닉 유드 CTO는 숙련된 운전자가 엔진의 부하, 기계 진동, 유압 저항의 변화를 통해 땅의 상태를 파악하는 방식에 비유했다.
그라비스의 AI는 이러한 신호를 바탕으로 토양과 지하 구조가 장비에 가하는 힘을 추정하고, 제어 판단을 조정한다는 설명이다.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모델을 학습시켜 서로 다른 장비와 현장에서도 작동하도록 일반화하는 것도 핵심이다.
실제 목표는 굴착기가 미리 입력된 경로만 따라가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변화하는 지형에 대응하면서 굴착, 도랑 파기, 대규모 토공, 트럭 적재 같은 작업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영국 정부가 지원하는 CAM 패스파인더 프로젝트에서는 플래너리 플랜트 하이어와 함께 굴착기 6대에 고도 자동화 시스템을 적용해 이런 작업을 시험하고 있다.
그라비스는 자사 기술이 최고 수준의 수동 작업과 비교해 현장 생산성을 최대 30%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안전성 개선, 재작업 감소, 측량과 위험 지역 지도 작성 지원도 주요 효과로 제시한다.
다만 30%라는 수치는 주의해서 봐야 한다. 현재 확인된 투자 관련 자료에서 이 수치는 독립적인 감사를 거친 업계 벤치마크가 아니라 회사가 공개한 주장이다. 실제 성과는 장비 종류, 작업 내용, 현장 조건, 운전자 업무 방식, 적용하는 자율화 단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라비스는 자사 시스템이 4개 대륙의 인프라 고객 현장에 배치돼 있다고 밝혔다. 앞선 발표와 업계 보도에서는 홀심, 테일러 우드로, HD현대, 플래너리 등과의 배치 또는 협력 사례도 언급됐다.
특히 플래너리와의 협력은 사업 모델 측면에서 중요하다. 양사는 Gravis Rack이 이미 장착된 굴착기를 고객이 직접 구매·통합하지 않고도 이용할 수 있도록, 자율화 장비와 건설 장비 임대를 결합한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이 방식은 건설 자동화의 대표적인 장애물 하나를 줄일 수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전체 장비를 한꺼번에 개조하고 별도의 로봇 운영 조직을 만드는 것보다, 특정 프로젝트에 자율화 장비를 임대해 시험하는 편이 부담이 작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이프AI(SafeAI)와 텔레오(Teleo)는 건설 장비 자동화와 원격 운용 분야에서 그라비스와 인접한 경쟁 영역에 있는 기업들이다. 그라비스가 내세우는 차별점은 여러 제조사와 장비 크기에 적용할 수 있는 학습 기반의 기계 적응형 플랫폼이다.
물론 이는 아직 시장에서 입증돼야 할 제안이다. 그라비스는 서로 다른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 보여주고, 안전성과 검증 요건을 충족하며, 통합 비용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먼지와 불규칙한 지형, 변하는 하중, 예측하기 어려운 사람의 움직임이 공존하는 건설 현장은 통제된 시연 환경보다 기술의 약점을 훨씬 쉽게 드러낼 수 있다.
이번 투자는 소프트뱅크의 AI 전략이 디지털 공간을 넘어 실제 세계에서 감지하고 행동하는 시스템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프트웨어나 파운데이션 모델에 투자하는 것과 달리, 물리적 AI는 사람과 장비 주변에서 안전하게 작동하면서 산업 고객에게 측정 가능한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소프트뱅크는 로봇 분야 투자를 확대해 왔다. 스위스 산업 기업 ABB의 로봇 사업부를 기업가치 기준 53억7,500만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으며, 이 거래를 AI와 로봇을 결합하려는 전략의 일부로 설명했다. 당시 발표 기준으로 인수는 규제 승인과 기타 종결 조건을 남겨둔 상태였다.
또 소프트뱅크는 로봇 관련 투자를 한데 모으기 위해 Robo HD를 설립했다. 별도로 오픈AI에 최대 400억 달러 규모의 후속 투자를 진행하기로 했으며, 이 가운데 소프트뱅크의 실질 투자액은 300억 달러로 예상됐다. 거래가 완료되면 누적 투자액은 646억 달러, 지분율은 약 13%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 수치는 거래 완료와 최종 조건에 달려 있다.
그라비스는 이 전략에서 실제 산업 현장에 연결되는 응용 계층이 될 수 있다. AI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가 실제 장비를 통해 대규모 산업 시장에 배치되는 구조다. 다만 이번 투자를 소프트뱅크가 이미 하나의 통합 AI·로봇 플랫폼을 완성했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당장 중요한 시험대는 그라비스가 유연한 개조 시스템을 반복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건설 운영으로 전환할 수 있느냐이다.
소프트뱅크의 투자는 건설 자동화를 단발성 파일럿 프로젝트가 아닌 플랫폼 사업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라비스는 모든 제조사가 장비를 새로 설계할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이미 전 세계에 깔려 있는 중장비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추가해 자율화 시장을 넓히려 한다.
이 전략은 넓은 시장 접근 경로를 제공할 수 있다. 동시에 해결해야 할 질문도 분명하다. 하나의 자율화 스택이 서로 다른 브랜드와 장비 유형에서 일관되게 작동할 수 있을까. 건설업체가 안전과 직결된 작업을 맡길 만큼 신뢰할 수 있을까. 현장의 생산성 향상이 실제 상업 프로젝트에서도 유지될까.
2억 달러의 자금은 그라비스가 이 질문에 대규모로 답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 하지만 보도된 10억 달러의 기업가치가 정당화될지는 투자금의 크기보다, 그라비스가 물리적 AI에 대한 주장을 안정적인 작업 성과와 더 안전한 운영, 건설 고객을 위한 반복 가능한 경제성으로 바꿔내는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