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한 지 일주일여 만인 2026년 8월 14일 금요일, 아데이는 런던 남부 배터시(Battersea)의 데일리 톰슨 웨이(Daley Thompson Way)에 있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 메트로폴리탄 경찰은 오후 3시 직후 런던 구급대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며, 한 남성이 의식 없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그는 현장에서 사망 선고를 받았고, 가족에게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 경찰은 공식 발표에서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AP통신 등 다수의 소식통은 사망자가 아데이라고 보도했다
. 현재까지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
아데이의 사건은 영국 학계에서 여러 논란을 동시에 촉발시켰다.
다양성 채용 대 학문적 기준 논쟁. 비평가들은 케임브리지대가 아데이의 자격을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채 '다양성의 상징'으로만 그를 높이 평가했으며, 인종적 대표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학문적 엄격함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 텔레그래프는 '케임브리지 다양성 홍보 모범생의 몰락'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 반면, 다른 이들은 아데이가 받은 집중적인 공격 자체가 인종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끔찍한 인종주의' 혐의. 케임브리지의 고위 교수진 그룹은 공동 서한을 통해 독립적인 조사를 촉구하고, 아데이의 임명으로 인해 '촉발된 끔찍한 인종주의'에 대해 대학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그들은 흑인 학자가 유사한 상황의 백인 학자라면 결코 겪지 않았을 수준의 공개적 비난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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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의 제도적 대응. 대학은 고위 교수 임용 절차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를 발표했으며, 아데이 조사 결과가 새로운 임용 관행 검토에 반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 그러나 케임브리지 교수 그룹은 이 조치가 불충분하다며 아데이가 어떻게 임용되었는지에 대한 '철저하고 투명한 독립 조사'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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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넓은 문화 전쟁.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는 아데이의 사례가 '잠들어 있던 문화 전쟁'을 폭발시켰다고 평가했다 . 우파 언론은 이를 고등교육기관의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정책을 비판하는 도구로 사용한 반면, 옹호자들은 흑인 학자에게 적용되는 인종적 이중 잣대에 대한 경고 사례로 보았다.
이 사건은 여러 측면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케임브리지의 조사는 아데이의 사망 당시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었으며, 그의 부침이 인종, 능력, 제도적 책임에 관해 무엇을 말해주는지에 대한 영국 학계의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