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진은 현존하는 모든 미생물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420개의 핵심 대사 반응을 집중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세균과 고세균이 동일한 대사 반응을 수행하는 데 사용하는 효소의 구조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만약 두 계통이 하나의 공통 조상(생명체)에서 갈라져 나왔다면, 핵심 대사 효소는 진화적 보존성을 띠어 두 그룹에서 유사한 구조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연구의 수석 저자인 윌리엄 마틴(William Martin) 박사는 "새로운 데이터는 단 하나의 결론만을 남깁니다. 우리는 유전 암호(genetic code)의 기원은 하나이지만, 생명의 기원은 두 번인 셈입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연구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핵심 개념인 LUCA(마지막 보편 공통 조상) 의 정의 자체를 뒤바꿉니다. 기존에는 LUCA를 모든 생명체의 근간이 되는 하나의 '세포'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LUCA가 자유롭게 살아 움직이는 세포가 아니라, 열수 분출구(hydrothermal vent) 환경에서 자연적으로 존재하던 철(Fe), 니켈(Ni), 코발트(Co) 같은 금속에 의해 대사 활동이 유지되던 '세포 이전(pre-cellular)' 상태의 존재였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연구팀은 초기 생명의 진화 단계를 네 단계로 재구성했습니다.
현대 생명체는 ATP(아데노신 삼인산) 라는 분자를 에너지 화폐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ATP는 복잡한 구조여서 이를 만들기 위한 효소가 없던 초기 지구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제시했습니다.
바로 아인산염(phosphite, HPO₃²⁻) 과 팔라듐(palladium) 의 조합입니다. 아인산염은 초기 지구의 열수 분출구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인의 환원된 형태이며, 팔라듐은 같은 환경에서 발견되는 금속 촉매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 두 물질은 물 속에서 만나면 아데노신이나 포도당 같은 유기 분자에 인산기를 붙이는 인산화(phosphorylation) 반응을 하룻밤 사이에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는 복잡한 효소 없이도 에너지 전환(대사)이 가능했음을 의미하며, "아인산염과 팔라듐이 ATP와 효소를 대체했다"는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이 연구 결과는 생물학 교과서에 그려진 전통적인 '생명의 나무(tree of life)'를 근본적으로 다시 그려야 함을 시사합니다. 기존 모델이 LUCA라는 하나의 줄기에서 세균과 고세균이 갈라졌다면, 새로운 모델은 LUCA에서 갈라지기 전, 완전히 별개의 경로로 두 계통이 각자 '생명'이라는 경계를 넘어섰음을 암시합니다.
이번 Science Advances 연구는 생명의 기원이 단 한 번의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두 번의 독립적인 과정을 통해 일어났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세균과 고세균은 각각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금속에 의존하는 무생물 상태(LUCA)에서 벗어나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번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생명체로 진화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ATP를 대신한 초기 에너지원으로 아인산염과 팔라듐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지구 생명체의 기원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혁명적인 가설입니다.
참고: 본 연구는 2026년 8월 5일자 Science Advances에 게재되었으며, 뒤셀도르프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의 연구팀이 주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