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제 구리(refined copper)에 대한 수입 관세를 부과할지 여부를 결정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무장관이 6월 30일까지 업데이트된 권고안을 제출했지만, 최종 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수입업자들은 관세가 부과되기 전에 금속을 확보하기 위해 서둘렀고, 그 결과 2026년 7월 한 달 동안 20만 톤이 넘는 구리가 미국 항구에 도착했다. 이는 IHS Markit이 2014년 관련 데이터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월간 물량이다 . COMEX 2026년 12월물 선물은 런던금속거래소(LME) 가격보다 톤당 약 800달러 높은 프리미엄에 거래되며, 시장이 관세 리스크를 가격에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
2026년 7월 하순, 칠레 광산 지대를 강타한 치명적인 겨울 폭풍(폭설, 돌발 홍수, 강풍)으로 최소 13명이 사망하고 세계 최대 구리 생산업체인 코델코(Codelco)의 엘 테니엔테(El Teniente) 광산을 비롯해 앵글로아메리칸(Anglo American),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 룬딘 마이닝(Lundin Mining) 등 주요 업체의 작업이 중단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 칠레는 전 세계 구리 생산량의 5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산유국이기 때문에, 이 지역의 생산 차질은 이미 빡빡한 공급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 세계 최대 구리 생산업체인 코델코는 이번 폭풍 이전부터 생산량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번 기상 이변이 생산 부진을 더욱 심화시킨 셈이다 . 2026년에는 콩고민주공화국(DRC)의 카모아-카쿨라(Kamoa-Kakula) 광산 홍수, 인도네시아 그라스버그(Grasberg) 광산 사고 등 전 세계 주요 광산에서 잇따라 공급 차질이 발생하며 글로벌 정광(concentrate) 공급이 극도로 타이트한 상태를 유지했다 .
**COMEX와 LME 간의 가격 차이(스프레드)**는 2026년 중반 톤당 약 400~600달러까지 급격히 확대됐으며, 이후 원월물 선물 기준으로는 약 800달러까지 벌어졌다. 이는 미국 시장의 관세 리스크가 가져온 심각한 '동시성 상실(dislocation)' 현상을 반영한다 . 참고로 이 스프레드는 지난 5년간 평균 1% 미만에 불과했다 . 이로 인해 글로벌 구리 시장은 분열됐다. 미국 가격은 런던과 상하이 가격과 완전히 분리되었고, 트레이더들은 차익거래(arbitrage)로 이익을 챙기는 한편, 물리적 구리는 미국 창고로 몰려들고 세계 나머지 지역에서 빠져나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
상하이선물거래소(SHFE)의 인도 가능 구리 재고는 5월 초 이후 82%나 붕괴했다. 중국의 구리 수입 수요를 가늠하는 핵심 지표인 양산(Yangshan) 프리미엄(LME 가격 대비 상하이 현물 가격의 할증률)은 1월 톤당 20달러에 불과했지만, 7월 말에는 4년 만에 최고치인 톤당 115달러까지 치솟았다 . 이는 글로벌 공급 부족 속에서 중국이 공격적인 비축(restocking)에 나서고 있음을 의미한다. SHFE의 선물 곡선은 급격한 역조(backwardation, 근월물 가격이 원월물보다 비싼 현상) 현상을 보였다 . 또한 중국의 주요 제조업 지표가 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을 더했다 .
단기적인 촉발 요인 외에도 장기적인 수요 전망이 구리 가격 상승을 뒷받침했다. AI 데이터센터 인프라와 전력망은 구리를 많이 소비하는 대표적인 분야로, 전 세계적인 소비 증가 기대를 이끌었다 . 전기차(EV)와 재생에너지 구축을 포함한 청정에너지 전환 역시 구조적인 수요 증가 요인으로 작용했다 . 여기에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 재개방을 위한 외교적 진전이 위험 선호(risk-on) 심리를 자극하며 원자재 시장 전반의 상승 동력을 높였다는 분석도 있다 .
2026년 8월에 기록된 사상 최고가는 단일 요인이 아닌, 여러 요인이 희귀하게 맞물린 결과다. 관세로 인한 시장 왜곡(미국의 사상 최대 비축과 역사적 규모의 COMEX-LME 스프레드 확대), 급격한 물리적 공급 부족(칠레 폭풍, 코델코의 생산 차질, SHFE 재고 붕괴), 그리고 견고한 구조적 수요(AI, 전기화,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위험 선호 심리)가 동시에 작용했다. TD 증권의 선임 원자재 전략가 라이언 맥케이(Ryan McKay)는 "기록적인 수입과 강력한 차익거래는 분열된 시장이 관세 결정이 해결될 때까지 계속해서 가격을 지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