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팀은 전 세계 503명의 현생 인류 게놈 전체를 분석해 각 유전자 부위별 조상 계보를 복원했습니다 .
첫 번째 혈통은 '유령(ghost) 계통' 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 이 고인류 집단은 약 80만 년 전에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과 갈라져 나와 별도로 진화하다가, 약 5만 년 전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기 전에 다시 섞였습니다 .
충격적인 점은 이 유령 계통의 DNA가 모든 현생 인류에게서 발견된다는 사실입니다. 아프리카인, 유럽인, 아시아인 등 인종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 모든 사람의 게놈에 0.5%에서 1% 정도의 유전자가 남아 있습니다 . 이는 특정 지역에서만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의 유전자와는 완전히 다른 '글로벌 시그널'입니다.
두 번째 혈통은 '초고대(super-archaic) 계통' 입니다. 이 집단은 무려 약 18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현존하는 인류 계통 중 가장 오래된 그룹 중 하나입니다 . 이들은 먼저 데니소바인의 조상과 교배했고, 이후 데니소바인이 현생 인류와 섞이면서 그 DNA가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
과학자들은 이 초고대 혈통의 정체로 약 18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퍼져나간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를 유력한 후보로 꼽고 있지만, 아직 직접적인 화석 증거는 확보되지 않았습니다 .
연구진은 TRACE로 찾아낸 고대 유전자 조각들이 게놈 전체에 무작위로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면역 기능과 신진대사 관련 유전자 부위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 이는 고대 인류와의 교배가 현생 인류에게 생존에 도움이 되는 적응 형질을 제공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혈통이 현생 인류 게놈의 통계적 재구성을 통해 추론된 존재라는 점입니다. 아직 이들을 직접 증명할 화석이나 고대 DNA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수학적 유령(mathematical ghost)'인 셈입니다 . 향후 고고학 발굴이나 고대 DNA 분석 기술의 발전을 통해 실제 화석이 발견된다면 이 발견은 더욱 확고해질 것입니다.
이번 연구는 인류의 진화사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인류의 진화는 하나의 직선이나 단순한 가지치기 나무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 살던 여러 고인류 집단이 반복적으로 이동하고, 만나고, 섞이고, 사라지는 복잡한 그물망(complex web) 에 가깝습니다 .
우리의 DNA는 그 방대하고 복잡한 역사의 살아있는 기록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