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는 2026년 4월 러시아산 모피 전반에 대한 수입 금지를 발표했고, 이 조치에 흑담비 가죽도 포함됐다 . 그러나 21차 제재 패키지 협상이 시작되자 유럽 내 럭셔리 모피 가공 및 패션 산업의 핵심 허브인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강력하게 반발하며 예외를 요구했다.
이 두 국가는 EU 내 러시아산 흑담비 생가죽의 주요 수입국이다.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모피 업계는 수십만 유로(한화 약 수억 원)에 달하는 고급 코트 제작에 필수적인 고품질 흑담비 생가죽이 러시아 외에는 사실상 대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
이러한 예외는 2026년 7월 23일 발간된 EU 공식 관보에 게재된 EU 제재 규정 부속서 XXI 개정을 통해 공식화됐다 . 수정된 조항에 따르면, 모피 수입 금지는 '무두질 또는 가공된 모피(가공 모피)'에 적용되며, 흑담비(sable)는 명시적으로 제외된다 . 그 결과, 러시아산 원가공되지 않은 흑담비 생가죽은 EU로 수입할 수 있게 됐지만, 완성된 모피 코트 등 가공된 모피 제품은 여전히 수입이 금지된다 .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세계 흑담비 시장에서 러시아의 지배적 위치를 예외 조치의 근거로 제시했다. Euractiv에 따르면, 한 고위 EU 관리는 "다른 곳에서 흑담비를 조달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
흑담비 모피 예외 조항은 6주간의 난항 끝에 2026년 7월 23일 채택된 EU의 21차 제재 패키지에 포함됐다 . 이 패키지는 러시아의 에너지 수익, 은행, 암호화폐 네트워크, 그림자 함대, 석유 거래상을 겨냥한 가장 광범위한 제재 중 하나로, 218개(기관 170곳, 개인 48명)의 신규 제재 대상을 포함한다 .
하지만 이 패키지는 채택 전 상당히 약화됐다. 최소 6개 회원국의 반대로 두 차례나 연기된 것이다 . 흑담비 예외는 패키지 통과를 위해 회원국들이 확보한 여러 양보 조항 중 하나였다.
흑담비 모피 예외는 같은 논리를 따른다. 특정 경제적 이해관계가 집중된 회원국들이 전체적인 제재 강화 기조 속에서도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면제(카르브아웃, carve-out)'를 확보한 것이다.
흑담비 모피 수입 재개는 EU 제재 체제의 구조적 취약점을 드러내는 작지만 상징적인 사건이다. 제재 패키지를 통과시키려면 모든 2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필요하다. 이 조건은 개별 국가, 혹은 소규모 연합에게 자국 산업을 위한 예외를 확보할 수 있는 상당한 협상력을 부여한다.
이번 예외는 완제품이 아닌 생가죽에만 적용되는 좁은 범위이지만, 분명한 의미 있는 양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러시아 흑담비 모피가 다시 EU로 법적으로 수입될 수 있게 되면서, 포괄적인 제재 적용이라는 원칙에 균열이 생겼다.
이 사건은 EU의 제재 체제가 광범위하기는 하지만, 핵심 회원국들이 충분한 압력을 가할 때 '구멍'이 생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전면적인 면제를 받아내지는 못했지만, 자국 모피 산업에 가장 중요한 '생가죽' 예외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