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중요한 것은 자국의 위치 분포였다. 코모도왕도마뱀의 이빨 자국은 어깨와 엉덩이처럼 살집이 많은 부위에 집중된 반면, ‘호빗’의 석기로 인한 도살 자국(cut marks)은 발과 갈비뼈처럼 고기가 적은 부위에서만 발견됐다. 이 공간적 패턴은 최상위 포식자가 먼저 먹고, 작은 청소부 동물들이 남은 찌꺼기를 처리하는 고전적인 먹이사슬 구조를 보여준다 .
수년 동안 리앙부아 동굴에서 발견된 그을린 뼈들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불을 통제했다는 증거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그 주장을 체계적으로 무너뜨렸다. 연구팀은 수천 년 동안 동굴에 서식했던 올빼미들이 남긴 약 4,500개의 설치류 뼈를 분석했다. 단 하나의 뼈에서도 그을리거나 탄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만약 동굴 안에서 화덕이 사용되었다면 바닥에 깔린 뼈들에서 분명한 열 변형(thermal alteration)이 나타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
스테고돈 뼈에서도 불탄 흔적은 없었다 . 이전에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것으로 여겨졌던 불탄 뼈들은 더 젊은 지층(약 4만 6000년 전)에서 나온 것으로 재연대 측정되었으며, 그 층은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가 거주하던 시기의 것이었다. 즉, ‘호빗’의 불 사용 증거는 잘못된 층서 해석(mistaken stratigraphy)에 따른 오류였던 것이다
.
불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식단은 기존의 가정과 크게 달랐다. 치아 마모 분석은 이미 거칠고 질긴 식이(纖維質) 섭취를 시사해 식물성 식품을 먹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해 왔다 . 여기에 더해 육류는 코모도왕도마뱀의 사체에서 얻은 날것 그대로 소비했다. 코모도왕도마뱀의 독 단백질은 위산에 의해 분해되기 때문에 청소 행위가 독에 중독될 위험은 없었다
. 이들은 또한 작은 동물, 곤충, 지역 식물 등을 추가로 섭취했을 것으로 보인다
.
이 연구는 플로레스섬 생태계에서 ‘호빗’의 위치를 명확히 해준다. 코모도왕도마뱀은 독이 있는 이빨로 스테고돈을 사냥하는 최상위 포식자였다 .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독수리, 거대 황새, 까마귀 등과 함께 스테고돈 사체를 먹이로 삼는 청소부 길드(scavenging guild)의 일원에 불과했다
.
흥미롭게도, ‘호빗’이 코모도왕도마뱀의 먹잇감이 되지는 않았다. 현생 코모도왕도마뱀도 특별한 이유 없이 인간을 공격하는 경우는 드물며, 연구진은 집단 생활과 경계심이 충분한 보호 수단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
이번 연구의 가장 심오한 함의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인류 진화 계통도에서의 위치에 대한 것이다. 대형 사냥과 불 통제 능력의 부재는 이전에 가정했던 것보다 훨씬 덜 진보된 행동 도구 세트(behavioral toolkit)를 의미한다. 이는 불을 사용하고 대형 사냥을 했던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의 난쟁이형(島嶼矮小化, insular dwarfism)이라는 기존의 주류 가설을 직접적으로 약화시킨다 .
대신, 이 연구는 소수 의견(minority view)에 힘을 실어준다. 즉,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100만 년 이상 전, 후기 호모 종의 진보된 행동이 나타나기 전에 플로레스섬에 도달한 더 원시적인 고인류(아마도 호모 하빌리스 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유사 종)의 후손일 수 있다는 것이다 .
수석 저자 비치 박사는 “더 단순한 행동 레퍼토리는 더 진보된 행동 적응이 나타나기 전에 호모 계통에서 분리된 조상을 가리킬 수 있다”고 말했다 .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크리스 스트링거(Chris Stringer) 박사는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 연구는 플로레시엔시스가 진정 호모 속(屬)에 속하지 않으며 재분류되어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강화한다”고 논평했다
.
모든 전문가가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의 고생태학자 케이 베렌스마이어(Kay Behrensmeyer)는 “뼈 변형 특징만으로 사냥과 청소 행위를 구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청소 전용(scavenging only)’ 가설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그녀는 연구팀이 코모도왕도마뱀 자국과 석기 자국을 구별한 증거는 설득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