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 선언은 진공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 중부사령부는 이미 전날 밤 이란 군사 시설에 대한 신규 공습을 개시했고, 이란 혁명수비대는 요르단에 있는 미군 시설을 공격하며 맞불을 놓았다 . 이 와중에 바레인에서는 공습 경보 사이렌이 울렸고, 쿠웨이트는 자국 영공을 일시 폐쇄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그는 이란 원유 수출의 약 90%를 처리하는 핵심 터미널 **하르크 섬(Kharg Island)**을 장악하고 이란의 석유·가스 부문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 이 위협은 유가를 장중 최고치로 밀어 올리며, 일부 지표에서 WTI가 3달러 이상 상승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
이러한 급등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려, 이란 지도부와의 논의가 최고위급에서 진전되었으며 역내 강대국들의 폭넓은 연합이 형성되고 있다는 이유로 계획된 군사 공격을 취소했다고 밝힌 것이다 . 이 한마디에 시장은 전면전 위험에 무게를 두었던 프리미엄을 단숨에 걷어내고 휴전 임박 시나리오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EDT 기준 오후 2시 38분에 배럴당 90.60달러까지 2.50달러(2.7%) 폭락하며 마무리되었다 . 7월물 WTI 역시 2.32달러(2.58%) 하락하며 세션 초반의 모든 상승분을 반납했다
. 이날 가격 움직임은 교과서적인 ‘심리 주도 반전’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오전 내내 상승 추세를 쫓던 알고리즘 매매가 뉴스 헤드라인 하나에 단 몇 분 만에 방향을 틀며 매도세로 돌아섰고, 재량 트레이더들이 여기에 가세한 것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유가가 “목요일 하루 동안 여러 차례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며 극도로 변동성이 큰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
그러나 장중 폭락이라는 결과와 달리, 시장의 펀더멘털은 훨씬 더 어두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노르웨이 에너지 조사기관 **리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의 분석은 종가가 의미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공급 경고를 담고 있었다.
리스타드는 미국-이란 간 적대 행위가 본격적으로 재개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향해 치솟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
,
. 리스타드의 지정학 분석 총괄 수석 부사장인 호르헤 레온(Jorge Leon)은 “현 상황이 적대 행위의 전면 재개인지, 위험하지만 통제 가능한 일시적 사건인지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진단하며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
더 큰 문제는 누적된 공급 손실 규모다. 리스타드는 중동 전쟁이 발발한 지난 3개월 동안 전 세계 시장에서 약 10억 배럴의 누적 원유 공급이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이는 미국 전략비축유(SPR) 전체 규모의 2.5배에 달하는 양이다 . 2026년 5월 발표된 ‘오일 마켓 밸런스 보고서’에서 리스타드는 호르무즈 위기가 “세계 원유 수급 균형을 완전히 재편했으며”, 아시아, 중동, 유럽 전역에서 정제 공장 가동률 하락을 강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설령 해협이 재개방되더라도, 대부분의 생산 시설이 재가동되기까지 4주에서 7주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며
, 이는 외교적 타결 이후에도 실물 시장의 공급 부족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임을 의미한다.
평화 기대감에 베팅한 트레이더들에게 가장 큰 위험은 테헤란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이란 합동 군사 최고 사령부는 호르무즈 봉쇄가 미국의 공습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이라며, 해협은 계속 봉쇄될 것이라고 밝혔다 . 앞서 6월 1일, 이란 국영 언론은 테헤란이 중재자를 통한 미국과의 협상을 이미 중단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 그보다 몇 주 전에는 이란 외무부가 최종 합의가 “임박하지 않았다”고 공식 확인하기도 했다
.
심지어 6월 11일 당일에도 미국과 이란 관리는 중재자를 통한 우회 협상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계속되는 군사적 충돌은 지난 4월 체결된 취약한 휴전 협정을 더욱 갈가리 찢어놓고 있었다 . 이는 이제 시장에 익숙한 패턴이 되었다. 트럼프가 “거래가 임박했다”고 말하면 시장이 일시적으로 안도하며 하락했다가, 곧이어 테헤란이 정반대의 신호를 보내며 실질적인 공급 차질은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남는 구도다.
6월 11일의 유가 변동성은 전쟁 프리미엄과 평화 기대감 사이에서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뒤집힐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장중 가격 움직임은 오로지 미래 공급 위험에 대한 기대 변화에 의해 주도되었을 뿐, 실제 원유 흐름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공식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이미 약 10억 배럴의 누적 공급이 사라졌다. 리스타드가 제시한 최악의 시나리오인 배럴당 150달러 유가 경고는 가격에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유조선들이 실제로 해협을 다시 통과하기 전까지, 전 세계 원유 수급을 뒤흔드는 공급 충격은 일시적 가격 차트의 모양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시장을 압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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