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순자산비율(PBR)이 닷컴 정점마저 돌파했다. S&P 500의 PBR은 2025년 8월 5.3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닷컴 버블 정점이었던 2000년 3월의 5.1마저 넘어섰다.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나 실러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 같은 다른 고전적 밸류에이션 지표들 역시 닷컴 시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근접해 있다 .
신용 스프레드, 위험할 정도로 타이트하다. 2025년 8월 기준 미국 기술 기업들의 신용 스프레드는 고작 56bp(베이시스 포인트)까지 내려왔다. 역사적 관점에서 극단적 시장 낙관론을 의미하는 수준이다. 하트넷은 이렇게 압축된 상태에서 스프레드가 급격히 확대되기 시작하면 심각한 위험 신호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 1999~2000년 폭락장 당시 스프레드는 400bp 위로 치솟았었다 .
BofA의 가장 충격적인 발견 중 하나는 시장 쏠림에 관한 것이다. BofA는 미국 증시 집중도가 현대 시장 역사상 가장 극단적이었던 1880년대 철도 거품 시절에 육박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 이는 단순히 소수 종목이 잘나간다는 문제가 아니다. BofA의 ‘레짐 인디케이터(regime indicator)’는 초대형주 주도 장세가 끝나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며, 이는 2000년 닷컴 붕괴 직전에도 나타났던 패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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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초, BofA는 미국 성장주가 1960년대 ‘니프티 피프티(Nifty Fifty)’ 광기와 1990년대 말 닷컴 시대를 뛰어넘는 밸류에이션 거품 영역에 진입했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 보고서는 조정 시 S&P 500이 고점 대비 40%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를 담았다 .
더 현대적이며 더 말해주는 지표는 BofA가 ‘ROI 격차(ROI Gap)’라 부르는 것이다. 2025년 AI 인프라에 약 4,000억 달러가 투자됐지만, AI 소프트웨어가 창출한 추가 매출은 약 1,000억 달러에 불과하다. 투자 대비 매출 비율이 4:1인 셈으로, 닷컴 붕괴 직전의 텔레콤·광섬유 과잉 투자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수치다 . BofA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의 공격적 자본 지출이 점점 더 부채에 의존하고 있어, 아직 수익을 기다리는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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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기업공개(IPO)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도 BofA가 명시적으로 1999~2000년 플레이북과 연결 짓는 또 다른 위험 신호다. 2026년 5월 ‘플로우 쇼(Flow Show)’ 보고서에서 BofA는 만약 스페이스X, 오픈AI, 앤트로픽이 상장해 기존 ‘AI 빅10’에 합류할 경우, 이들 그룹의 시가총액 합계가 S&P 500 전체의 절반에 육박할 것으로 계산했다. 이 수준의 집중도는 1880년대 철도 거품을 제외한 현대의 모든 거품을 능가한다 .
하트넷은 대규모 AI IPO에 대한 투기 열풍이 쏠림 위험의 ‘역사적 극단’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경고하며, 급증하는 공모와 이미 높아진 밸류에이션이 결합해 미국 시장을 위험 구역으로 내몰고 있다고 밝혔다 . SCMP 역시 고평가 주식과 저평가 주식 간 간극이 닷컴 붕괴 직전에만 볼 수 있었던 극단에 도달했으며, 신규 상장 속도가 2000년과 2008년 시장 정점 이전과 맞먹는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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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fA의 시각이 하나로 통일됐다고 말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은행 내부에서도 현재 신호의 의미를 두고 첨예한 의견 대립이 벌어지고 있다.
BofA의 미국 주식 및 퀀트 전략 총괄인 사비타 수브라마니안(Savita Subramanian)은 오늘날의 환경이 2000년과 다르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그녀는 이 상황을 완전한 거품이라기보다 ‘에어 포켓(air pocket)’, 즉 급작스러운 난기류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그 근거로 주요 기술 기업들의 강력한 현금 흐름과, 닷컴 시절의 ‘암흑 광섬유(Dark Fiber)’ 과잉과 달리 현재는 AI 컴퓨팅 파워가 높은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적자 기업에 대한 투기 심리가 덜 극단적이라는 점을 제시한다 .
비벡 아리아(Vivek Arya)가 이끄는 또 다른 팀은 2025년 10월에 ‘AI 종말론’ 헤드라인을 인정하면서도 닷컴 시대와의 네 가지 구조적 차이점을 제시했다. 첫째, 과거의 ‘암흑 광섬유’와 달리 높은 컴퓨팅 가동률을 보인다는 점, 둘째, 자본 지출이 부채가 아닌 영업 현금 흐름으로 조달된다는 점, 셋째, 연방준비제도(Fed)가 과거와 달리 금리 인상보다 인하에 나설 공산이 크다는 점, 넷째, 밸류에이션을 뒷받침하는 실제 이익 성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
세바스티안 래들러(Sebastian Raedler)가 이끄는 BofA의 유럽 주식 전략가들은 아예 다른 역사적 비유를 꺼내 든다. 닷컴 버블이 아니라 과거의 **자본 지출 주도형 호황-불황 사이클(boom-bust cycle)**을 닮았다는 것이다 . 한편 2025년 12월 BofA의 ‘글로벌 주식 변동성 인사이트’ 보고서는 시장 전반적으로 투기 압력이 강해지고 있음에도, AI와 연계된 핵심 미국 주식들은 버블 정점 임박 시 보이는 조건에 “한참 못 미치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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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fA의 연구가 그려내는 그림은 깔끔한 만장일치가 아니다. 이는 월가 최대 금융 기관 중 하나인 은행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아있는 논쟁이다. 한쪽에서는 마이클 하트넷과 글로벌 매크로 팀이 압축된 신용 스프레드, 사상 최고치의 PBR, 하늘을 찌르는 인프라 투자-매출 격차, 그리고 초대형 IPO 러시가 닷컴 붕괴 직전과 판박이인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여러 주식·기술 담당 애널리스트들이 오늘날 AI 리더들의 근본적인 현금 창출력과 컴퓨팅 가동률을 들어 이번 사이클이 1990년대 말보다 근본적으로 더 견고하다고 반박한다.
투자자에게 던져진 질문은 결국 어떤 신호 세트가 예측력을 입증할 것이냐다. 역사적으로 극단적 밸류에이션 분산, 극도로 타이트한 신용 스프레드, 대형 IPO 러시의 결합은 시장 혼란의 믿을 만한 전조였다. 하지만 과거 사이클이 증명하듯, 이런 조건들은 회의론자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며 최종 붕괴 전까지 예상보다 훨씬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점 또한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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