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환이 일방적인 것으로 끝날 것이라는 희망은 6월 8일 아침 완전히 사라졌다. 이스라엘은 이란 서부와 중부의 군사 목표물에 공습을 가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샤르(Mahshahr)시의 석유화학 단지까지 공격했다 . 마샤르 단지에 대한 공습은 휴전 이후 이란 내 에너지 인프라 시설을 직접 타격한 첫 사례였다
. 이란 당국은 이후 이 공격으로 최소 15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보고했다
.
이 작전은 직접적인 정치적 대가를 동반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추가 공격을 자제하라고 전한 직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이스라엘이 트럼프의 요청을 처음에는 무시한 셈이었다 .
급격한 긴장 고조에도 불구하고, 총격은 시작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멈췄다. 6월 8일 오후, 양측은 공개적으로 작전 중단을 선언했다.
이것은 결코 안정적인 휴전이 아니었다. 뉴욕타임스(NYT)가 "이스라엘과 그 지도자를 이전보다 트럼프에게 훨씬 더 의존하는 위태로운 위치에 놓이게 했다"고 묘사한, 상호적이지만 매우 조건적인 중단이었다 .
트럼프 대통령은 이 위기 동안 현장 지휘관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움직였다.
6월 7일, 그는 소셜 미디어에 "이스라엘과 이란은 즉시 '사격(shooting)'을 멈춰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게시했다 . 6월 8일에는 트루스소셜에 "양측, 이스라엘과 이란 모두 즉각적인 휴전(CEASEFIRE)을 원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위한 최종 협상이 진행 중입니다."라고 선언했다
. 하루 뒤, NBA 결승전을 관람한 후 기자들을 만난 트럼프는 협상가들이 합의에 도달하는 "마지막 고비(final throes)"에 있으며, 이 합의가 "2, 3일(two or three days)" 안에 서명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이 시간표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2, 3일"이라는 표현은 5월 중순 트럼프가 이란에게 더 긴 평화 협정을 위한 대응 제안을 제시하라고 짧은 기한을 줬을 때 사용된 바 있다 . 6월 9일, 이 표현은 이란의 핵 야망을 멈추고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할 더 넓은 합의에 다시 붙여졌다
.
중요한 점은, 보고된 휴전이 단순한 선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의 게시물은 미국의 해상 봉쇄가 "'최종 거래(Final Deal)'가 성사될 때까지 발효되고 있으며, 완전한 효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
대중적 낙관론 뒤에는 네타냐후에 대한 압박이 극심했다. 여러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노골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만약 이스라엘이 고의로 미국-이란 외교 경로를 위태롭게 한다면, 미국의 지원을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NYT는 이러한 역학 관계를 트럼프의 고집이 네타냐후를 "이전보다 트럼프에게 훨씬 더 의존하게" 만들었다고 표현했으며, 이는 이스라엘이 공격을 계속할 경우 혼자 싸워야 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
이스라엘-이란 간 교전이 수그러들던 6월 8일, 별도의 사건이 새로운 전선을 열었다. 미 육군의 AH-64 아파치(Apache) 헬리콥터가 호르무즈 해협 인근을 순찰하던 중 추락한 것이다 . 두 명의 승무원은 무사히 구조되었다
.
트럼프 대통령은 즉시 이란의 격추를 주장했지만, 당시 초기 보도는 더 조심스러웠다.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이 이란의 공격인지, 기계적 결함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인지 불확실하다고 보도했다 . 이후 CBS 뉴스는 이란의 무장 샤헤드(Shahed) 드론이 오만 앞바다에서 해당 헬기를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
6월 9일, 미 중부 사령부(CENTCOM)는 트럼프의 지시에 따라 이란에 대한 "자위적 공습(self-defense strikes)"을 시작했다고 발표하며, 이 임무가 "부당한 이란의 공격성에 대한 비례적 대응"이라고 밝혔다 . 공습은 이란의 방공망 및 레이더 기지를 목표로 했다
. 이란은 즉시 대응하여 이슬람 혁명 수비대(IRGC) 성명을 통해 바레인, 쿠웨이트, 요르단의 미국 관련 목표물에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했다
.
이 사건은 분쟁의 성격을 바꾸어 놓았다. 이스라엘-헤즈볼라 작전으로 시작된 것이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국가 대 국가 공격으로 확대되었고, 이내 미국과 이란 간의 직접적 군사 교전으로 비화된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워싱턴이 최종 평화 합의 직전이라고 주장하는 와중에 벌어졌다.
6월 7일부터 10일까지의 짧은 기간은 2026년 4월 이후 분쟁 전체의 역학을 축약해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내 헤즈볼라 목표물 공격은 사전에 준비된 이란의 군사적 대응을 촉발했다.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은 군사 시설을 넘어 산업 목표물까지 확대되며 고조되었다. 같은 시기 미국 대통령은 위협하고, 구슬리고, 거래를 약속했다. 미군 자산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손실되었고, 이는 미국의 직접적인 공세와 이란의 미국 연계 진지에 대한 반격으로 이어졌다.
6월 9일이 되자,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일시 중단"은 유지되고 있었지만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4월 8일의 원래 휴전 프레임워크는 이스라엘을 포함하는 미국-이란 합의였지만, 이 15시간의 소용돌이 이후 외교는 더 분열되었고 신뢰는 낮아졌다. 대통령이 승리가 며칠 남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미국은 이미 더 깊이 전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 상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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