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세계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진짜 두 개의 축은 따로 있다. 하나는 엔비디아가 이끄는 인공지능(AI) 열풍이고, 다른 하나는 호르무즈 해협의 기능적 마비로 촉발된 원유 공급망 붕괴다.
6월 1일, 이란 국영 매체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및 가자 지구 군사 작전을 휴전 합의 위반으로 규정하며 협상단이 중재자를 통한 모든 간접 대화와 메시지 교환을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 이란 혁명수비대는 새로운 전선을 열고 주요 역내 해운 루트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
이 소식에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아시아 거래 시작과 동시에 2% 이상 급등하며 배럴당 93달러를 돌파했다 . 이는 단순한 심리적 반응이 아니다.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이미 수개월째 사실상 '기능적 봉쇄'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
실제로 유조선 운항은 급감했고, 보험료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며, 산유국들의 저장 시설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같은 날, 미국 뉴욕 증시는 이란이 던진 지정학적 충격파를 비웃기라도 하듯 사상 최고치 부근에서 거래를 마쳤다. S&P 500 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7,600선을 돌파했고 , 나스닥과 아시아 주요 증시도 동반 상승했다 .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것은 엔비디아였다. 젠슨 황 CEO가 AI PC 시장을 겨냥한 새로운 칩을 공개하자 엔비디아 주가는 하루 만에 3.9% 이상 폭등했고, 이는 전쟁 뉴스가 만들어낸 모든 부정적 파도를 단숨에 잠재웠다 . 시장은 말 그대로 'AI 프렌지(광란)' 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
이 모순적인 상황의 핵심은 시장을 움직이는 동력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주식 시장의 연료: 기술 혁신과 성장 기대감
투자자들은 전쟁 리스크를 일시적인 노이즈로 간주하고 있다.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과 AI 산업의 미래 가치에 베팅하는 자금이 유가 상승이라는 전통적 악재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한국 코스피 지수는 1.3% 상승하며 신기록을 썼고, 일본 닛케이 지수도 0.5% 올랐다 .
에너지 시장의 연료: 물리적 공급 부족과 재고 소진
유가 상승은 투기적 베팅이 아닌, 실물 경제의 공급 붕괴가 원인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이러한 변수들이 해결될 때까지 연료 가격은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JP모건은 선진국(OECD)의 상업용 원유 재고가 조만간 '운영 스트레스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 아람코마저 여름철을 앞두고 휘발유와 항공유 재고가 '심각하게 낮은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
즉, 증시는 미래의 AI 세상을 선반영하며 오르고, 유가는 현재 진행형인 공급 부족을 반영하며 오르는 것이다.
시장의 최대 관심사는 유가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기업 실적을 갉아먹는 '임계점'에 도달하느냐다. 주요 기관들의 전망은 암울하다.
| 시나리오 | 브렌트유 전망 (2026년 말 기준) | 출처 |
|---|---|---|
| 조기 평화 협상 타결, 해협 봉쇄 해제 | 80달러 수준 (2027년 65달러까지 하락) | 우드 매켄지 |
| 봉쇄 지속 (뱅크오브아메리카 중간 시나리오) | 120 | 뱅크오브아메리카 |
| 전면 적대 행위 재개 (최악 시나리오) | 150~160달러 | 뱅크오브아메리카 |
| 댈러스 연은 시나리오 (1분기 공급 차질) | WTI 약 110달러 (4월 고점) |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
| 댈러스 연은 시나리오 (2분기 공급 차질) | WTI 약 132달러 (7월 고점) |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
핵심 경고는 JP모건에서 나왔다. 급속히 줄어드는 글로벌 석유 버퍼는 "비선형적 가격 급등과 패닉 바잉의 전조"가 될 수 있으며, 이는 특히 여름철 성수기 수요와 맞물려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
세계은행은 2026년 브렌트유 평균 가격을 배럴당 약 86달러로 예상하지만, 상방 리스크가 더 크다고 본다. 이미 2026년 이란 전쟁은 유가 경로를 통해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약 0.8% 끌어올린 것으로 추산된다 . 유가가 120달러를 넘어서며 2차 파급 효과가 본격화된다면,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기대감은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
현재 증시 랠리는 지나치게 AI·기술주에 집중되어 있어 시장의 체력은 생각보다 약하다. 6월 1일 다우존스 지수는 유가 상승에 민감한 에너지·경기소비재 종목들이 발목을 잡으며 하락 마감했다 . AI 훈풍이 모든 것을 덮고 있지만, 만약 유가가 임계점을 돌파해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고 기업 마진을 잠식하기 시작한다면, 소수 기술주만 오르는 장세는 언제든지 급격한 조정을 맞을 수 있다.
이란의 협상 중단과 혁명수비대의 위협은, 글로벌 재고가 가장 취약한 바로 이 시점에 최악의 석유 공급 시나리오를 다시 테이블 위로 끌어올렸다. 단순한 일시적 급등이 아니라, 구조적인 공급 부족이 현실화될 조짐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