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와 시그니처 은행이 연달아 무너졌을 때, 미국 금융 당국은 '시스템 리스크 예외( systemic risk exception )' 조항을 발동했다. 이 조치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일반적인 보호 한도인 25만 달러를 수십억 달러나 넘긴 법인 예금을 포함한 두 은행의 모든 예금을 일시에 보호했고, 이로 인해 USDC의 뱅크런은 하룻밤 사이에 멈췄다 .
카를레티가 짚어낸 핵심은, 유럽에서는 똑같은 조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카를레티는 ‘이중 취약성’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유럽이 처한 정확한 모순을 짚어냈다.
그녀의 말처럼, “우리는 암호화폐 기업과 은행권의 동맹을 강제하면서도, 정작 위기 시 미국처럼 보험을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은 주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말하는 이중 취약성입니다.”
그녀의 진단은 명확하다. 규제가 전염 경로를 뚫어놓고, 그 경로로 불이 붙었을 때 쓸 소화기는 지급하지 않은 설계 결함이라는 것이다.
카를레티의 경고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유럽의 여러 기관들은 이미 여러 각도에서 암호화폐와 은행의 연계 위험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카를레티의 비판이 단순한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 브뤼셀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제 막 진지한 정책 과제로 논의되기 시작한 구체적인 문제 제기임을 시사한다.
카를레티가 말하는 ‘이중 취약성’은 암호화폐 규제 자체를 반대하는 논리가 아니다. 그녀는 MiCA를 폐기하자고 주장하지 않았다. 이 경고는 오히려 ‘절반만 완성된 숙제’를 끝내야 한다는 촉구에 가깝다.
규제는 스테이블코인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암호화폐와 은행 사이에 다리를 놓았지만, 그 다리를 건너오는 금융 충격을 통제할 수 있는 유럽만의 난간은 아직 설치되지 않았다. 스테이블코인 준비금을 떠안는 은행의 대규모 무보호 예금을 뒷받침할 어떤 비상 안전판도 마련하지 않은 채, 유럽연합은 자신의 은행 시스템에 감당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리스크를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2023년 단 한 주말 만에 해결했지만, 유럽은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바로 그 격차다.
Comments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