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강경 발언이 공개된 시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을 3일간(5월 27일~29일) 국빈 방문하기 위해 도착한 바로 그날, 이 위협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방문 목적은 러시아 주도의 경제 블록인 EAEU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최고 유라시아 경제 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
크렘린 외교 정책 보좌관 유리 우샤코프는 방문에 앞서 푸틴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의에서 아르메니아의 EU 가입 열망을 거론할 것이며, EAEU 지도자들이 예레반의 블록 탈퇴 가능성을 논의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 이는 아르메니아를 EU 열망과 구소련 경제 블록 잔류 사이에서 양자택일하도록 강요하는 다자간 압박 전략이다
. 특히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아스타나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부총리를 대신 파견함으로써 양국 관계의 깊은 균열을 여실히 보여줬다
.
이번 위기는 명목상 동맹국인 두 나라 사이에 수년간 쌓여온 신뢰가 완전히 붕괴된 결과다. 근본적인 원인은 2023년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에서 비롯됐다. 2023년 9월 아제르바이잔이 신속한 군사 작전으로 분쟁 지역을 탈환했을 때, 아르메니아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상 조약 동맹국인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예레반은 물론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를 러시아의 방위 약속에 대한 심각한 배신으로 받아들였다 .
이 사건 이후 아르메니아는 CSTO 활동 참여를 동결하고, 자국 내에서의 블록 군사 훈련도 거부했으며, 유럽연합, 프랑스, 인도, 미국 등으로 안보 및 경제 파트너십을 적극적으로 다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지정학적 방향 전환이 현재의 EU 가입 추진에 정치적 동력을 제공했다.
아르메니아 국회는 2025년 3월 26일 "아르메니아의 유럽연합 가입 절차 개시"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 법안은 2025년 4월 4일부로 발효되었다 . 파시냔 총리는 이 과정을 진전시키면서도 최종적인 회원국 신청은 국민 투표를 통해 결정될 것이며, EU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 왔다
.
이러한 서방 행보는 2026년 5월에 극적으로 가속화되었다. 5월 4일과 5일, 예레반은 제8차 유럽정치공동체 정상회의와 사상 최초의 EU-아르메니아 단독 정상회의를 잇달아 개최하는 외교적 빅 이벤트를 성사시켰다. 안토니오 코스타 유럽이사회 상임의장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예레반을 방문한 것은 강력한 상징적 노선 전환을 의미했다. 이 정상회의에서 파시냔 총리는 아르메니아가 "EU에 가입하게 된다면 기쁠 것"이라고 말했다 .
이번 공식 위협은 단순한 긴장 고조를 넘어 러시아-아르메니아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Comments
0 comments